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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 문과의 학문 전통

지금의 연세대학교 사학과는 연희전문 문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17년에 설립된 사립 연희전문학교는 일제하에 유일하게 문과를 가진 국학연구의 요람이자 민족사학의 최고 중심축이었다.

일제의 감시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공개적으로, 때로는 강의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민족정신과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진력하였다.

특히 역사학과의 정인보, 백낙준, 손진태 등은 일제의 식민사학에 맞선 민족사학의 중심이었으며, 이에 상과의 백남운 등이 연전의 역사연구에 힘을 더해주면서 민족사학의 지평은 더욱 넓어졌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되었으며, 민족사학의 요람인 연희전문은 직접적인 탄압대상이 되었다.

이에 반일성향의 교수들은 강제로 퇴직당하거나 검거되었는데, 1937년에는 백낙준ㆍ백남운, 1938년에는 최현배ㆍ이윤재가 학교를 떠나야 했다.

정인보도 1938년부터 휴직하였으며, 보성전문으로 자리를 옮긴 손진태는 1941년까지 강사로 출강하였다.

1940년 이인영ㆍ이홍직 등이 강사로 출강하여 국학연구의 맥을 이었지만 1941년 태평양전쟁에 즈음한 일제의 탄압으로 한국사연구와 강의는 불가능해졌다.

다만 조의설만이 전공인 서양사 이외에도 일본사ㆍ사학개론 등을 담당한 전임교원으로 고군분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