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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32: 포유류 시대(2)-젖먹이기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8-01


포유류는 젖샘(mammary glands)에서 분비되는 젖으로 새끼를 키웁니다. 다윈 시절 몇몇 학자들은 임신 생리와 밀접하게 엮여 있는 젖이 포유류에서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와 같은 섬세한 수유장치가 우연한 변이의 점진적인 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고 하며 다윈의 진화이론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다윈은 그러한 지적에 곤혹스러워 했지만, 과감하게도 몇몇 물고기나 해양생물의 알 주머니에 있는 분비샘이 젖샘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지금 보면 이러한 선견지명은 놀랍습니다. 그의 추론대로 젖샘은 단궁 포유류 조상인 수궁류(therapsids)의 피하 분비샘(apocrine-like glands)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젖은 포유류의 전유물이지만 그 기원은 포유류 보다 한참 먼저였으며, 젖이 진화되었기에 포유류가 적응방산 할 수 있었음을 이번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땅에 알을 낳는 개구리와 도롱뇽은 한동안 알을 부둥켜 안고 피부 분비물로 적셔가며 알이 건조되는 것을 막습니다. 이러한 분비물에 단백질과 지방 등 영양분이 더해지면 젖과 진배없습니다. 이런 발상에서, 스미드소니안 환경연구소 Oftedal 박사는 포유류의 계통도, 젖샘의 구조, 생식양태 그리고 젖관련 유전자를 비교 분석하여 동물이 육상으로 진출한 시점에 젖이 진화하였다고 추정합니다. 페름기 초기 춥고 건조한 기후에서 파충류는 알의 수분손실을 막고자 두꺼운 가죽으로 알을 쌉니다. 이러한 방수 알은 가스 교환에 문제가 있기에 원시 포유류는 양피지 같은 다공성 껍질로 알을 감싸는 전략을 택하고, 그들의 피부에 분비샘을 진화시켜 수분을 공급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비샘은 알에 수분을 공급하던 원래 목적에서 진일보하여 양분과 항생제 등 여러 유용 물질을 분비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지니 알에 난황을 많이 저장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또한, 갓 부화한 새끼도 분비물에 의존합니다. 포유류 조상은 난황을 줄이고 분비샘을 개량하여 젖샘으로 발달시킵니다. 이러한 초기 포유류의 특징은 현존하는 난생 오리너구리나 가시두더지에서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복부에 젖꼭지 없는 젖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 본격 태생으로 전환한 포유류에서는 젖꼭지가 진화하여, 어미나 새끼가 젖을 통한 감염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이러한 젖의 진화 시나리오는 여러 젖단백질이나 난황단백질 유전자의 진화계통도를 구성하면서 구체화됩니다. 한 예로, 스위스 로잔대학의 Kaessmann 박사 연구팀은 난황단백질 바이텔로제닌(vitellogenin) 유전자의 진화계통도를 분석하여, 동물은 포유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난황 의존도를 줄여 나갔음을 보여줍니다(2). 조류에는 바이텔로제닌 계열 유전자 3개, 즉 6개 유전자로 알의 분화에 필요한 고영양가 난황을 만듭니다. 유대류와 태반류의 경우, 이들 세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는 죽은 유전자(pseudogenes)로 남아있습니다. 거의 2억년 동안 진화과정에서 이들 유전자는 돌연변이 누적으로 점차 기능을 상실한 것이죠. 분자시계 계산에 의하면, 최종적으로 기능을 상실한 시점이 7천만년전에서 3천만년전 사이로 나옵니다. 단공류 오리너구리도 세 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다 망가지지 않고 하나는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로는 난황을 충분히 만들 수 없어, 배아는 알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일찍 깨고 나와 젖으로 살아갑니다. 주요 젖단백질인 카제인(casein) 유전자도 세 개 있으며, 모두가 3억년전에서 2억년전에 살았던 단공류, 유대류, 태반류의 공동조상(MRCA, most recent common ancestors)에서 유래되었음을 알아냅니다. 포유류는 알을 낳기를 그만두기 훨씬 전에 젖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결과로 난황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태생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젖이 포유류의 진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해도 믿을 만합니다.


더 이야기해보면, 포유류는 공룡시대에 몸집을 줄였습니다. 어떻게 몸집을 줄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젖이 진화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젖 때문에 난황 의존도가 줄어들면, 알의 크기도 줄어듭니다. 작아진 알에서 새끼는 성숙이 덜된 상태로 나옵니다. 幼形이 몸집 축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생명의 역사 28). 그리고 幼形은 두개골 확장 여지를 남겨두기에 뇌발달이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포유류는 내온성도 획득하여 체온을 높게 또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배아를 몸 안에 들여 안정적이고 확실한 배아 발달을 추구합니다. 나중에는, 태반을 진화시켜 몸 안의 배아에 영양을 직접 공급하는 전략을 채택합니다. 알을 몸 안에 간직하여 체내에서 부화하는 난태생(ovoviviparity) 전략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현존하는 포유류에는 난태생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전략을 취했던 포유류는 사라진 것 같습니다.


유대류는 태반을 통한 영양공급 기간을 한참 줄여 미성숙 배아를 출산합니다. 왈라비(wallaby) 캥거루는 다 자라면 6-9 Kg 정도까지 나갑니다. 그러나 갓 태어난 새끼는 불과 크기 2.5cm 무게 1g 정도입니다. 이 심한 조산아는 거의 1년 동안을 육아낭에서 젖을 먹으며 자랍니다. 따라서 왈라비 임신기간은 28~29일 정도로 무척 짧습니다. 유대류는 태반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때 생각했으나, 사실 임신 끝 무렵에 태반이 만들어져 태아는 잠시나마 자궁에서 양분을 공급받습니다. 이후 젖으로 배아 발달을 마칩니다. 따라서 유대류의 젖은 태반류 태반의 몫을 해야 하는데, 최근에야 스탠퍼드 대학의 Baker 박사팀이 유대류의 젖은 태반과 기능적으로 연장선에 있다는 증거를 발표합니다(3). 그들은 왈라비 태반과 젖샘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와 쥐나 사람의 태반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를 비교합니다. 왈라비 태반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는 쥐의 배아 발달 초기 태반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와 거의 같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유대류 젖샘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는 배아 발달 후기 태반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와 많은 부분 같았습니다. 유대류는 초기에는 태반이 배아발달을 담당하다가 후기에는 젖이 담당합니다. 태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는 엄마 자궁에서 오래 머물면서 양분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빨아들입니다. 태아는 좋지만 엄마는 무척 힘듭니다.


젖의 진화가 포유류의 적응방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정리해봅니다. 첫째, 젖을 통해 새끼에게 영양가가 높은 먹이를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은 포유류 생태적 지위 확장에 상당히 유리했습니다. 많은 동물들의 서식지는 새끼의 먹이 때문에 제한을 받지만, 포유류는 기후가 바뀌거나 먹이가 부족한 상태에서 유연성을 가지고 견딜 수 있어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방산합니다. 둘째, 항생제를 포함한 여러 면역 방어에 관련된 단백질을 공급하여 새끼의 생존을 돕습니다. 셋째, 수유는 포유류 새끼의 뇌 발달과 그에 따른 생존기술을 어미로부터 배울 수 있게 합니다. 특히, 젖빨기는 새끼의 혀와 입 주변 안면 근육을 사용하게 하여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게 했으며, 언어발달과 상호소통도 가능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태반의 진화를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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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T Oftedal. The evolution of milk secretion and its ancient origins. Animal 6:355-368. 2012

(2) D Brawand, et al. Loss of Egg Yolk Genes in Mammals and the Origin of Lactation and Placentation. PLOS Biol. 6(3): e63. 2008

(3) MW Guernsey, et al. Molecular conservation of marsupial and eutherian placentation and lactation. eLife 6: e27450.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