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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29: 백악기 말 대멸종(1)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7-15


공룡(비조류 공룡)은 삼첩기 후반 2.3억년전에 나타났다가 0.66억년전 우주에서 날라온 에베레스트산 규모의 소행성(혹은 유성) 충돌로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1.7억년 동안이나 지구를 지배했으니 삶의 흔적이 세상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거대한 크기, 이상한 신체비율, 기묘한 장식, 때론 무시무시한 괴수로 우리를 매료시켰던 공룡들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지만 재난을 무사히 넘긴 생명도 있습니다. 왜 하필 공룡이 그토록 심하게 당했는가? 대부분의 양서류와 파충류, 그중 덩치 큰 악어도 살아남았습니다. 암모나이트 포함 얕은 바닷가 해양생물은 다수가 사라졌지만, 많은 심해생물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종의 상어와 거대 해양파충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포유류, 큰 탈없이 무사히 넘겼습니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소행성 충돌만으로 지구 육상 및 해양 생명 통틀어 75%가 사라진 백악기(Cretaceous, K)와 신생대 초입 팔레오기(Paleocene, Pg) 사이에 일어난, 소위 K-Pg 생명 집단멸종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1980년 캘리포니아 대학 지질학과 Walter Alvarez 박사는 백악기에서 팔레오기로 넘어가는 지층 사이에 회색 빛깔의 얇은 층이 있음을 이상히 여깁니다. 지각에는 거의 없는 원소 이리듐(Ir)이 거기에 집적되어 있음을 알아내고 K-Pg 생명 집단멸종이 소행성 충돌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을 제기합니다. 30년후 일련의 과학자들은 멕시코 칙술룹(Chicxulub) 지역에 소행성 충돌흔적이 물에 잠긴 채로 남아있음을 알아냅니다. 크레이터는 폭이 200 km 깊이는 40 km 정도로,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직경 10km 소행성이 초속 60 km로 날아와 파인 자국입니다. 지각이 파편으로 터져나가 맨틀이 드러날 정도였으니 그 충격은 대형 원자폭탄 백만 개 정도로 굉장했습니다. 이로써 소행성 충돌이 공룡을 멸종시킨 주범일 것이라는 가설이 인정됩니다. 지질학자들은 인정을 넘어 거의 열광하는 수준이었으며, 소행성 충돌 증거를 여타 대멸종 사건에서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일부 고생물학자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가집니다. 『화석 증거에 의하면 K-Pg 이전에 생명은 죽어나가고 있었다. 소행성 충돌 장소와 반대편 인도 데칸 지역에 겹겹이 층을 이룬 용암지대가 발견된다(Deccan traps). 그리고 여러 증거는 화산폭발은 K-Pg 생명멸종 이전부터 시작해 수십만 년에 여러 번 있었음을 말해준다. 화산폭발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 대양 산성화, 지구 온난화 등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사건이 서서히 생명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백악기 중반부터 판게아에서 떨어져 나온 인도대륙이 아시아로 향해 돌진했다. 해수면 상승이 있고, 대륙 내부 많은 곳이 물에 잠긴다. 전지구적 기후의 요동이 있게 된다. 충돌은 생명을 짧은 기간 안에 파국적 종말로 유도하는데, 폭발은 점진적으로 유도한다. 충돌이 있기 전 생명은 앓고 있었다. 소행성 충돌은 멸종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아니라, 관에 못박기 마무리 작업이다.』


충돌론자로 지칭되는 과학자들은 소행성 충돌이 생명 집단멸종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를 확실히 알아내고 싶어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K-Pg 생명멸종 시나리오는, 『그만한 크기의 운석이 충돌하면 직접 화염과 함께 충격파가 쓰나미를 유발하여 반경 1500 km 내에 있는 초목이 쓰러진다. 열을 품은 수증기, 그을림(soot), 그리고 독성 황산가스가 하늘을 덮고 두꺼운 구름 층을 형성한다. 지구 평균 온도는 생명을 열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올라가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느냐가 관건이다. 나중에 식으면, 대기권에 머물렀던 유독물질은 산성비가 되어 쏟아져 산림 황폐가 가속되고 얕은 바다 생명이 죽어나간다. 사실, 불연소 탄화수소 그을림 분진이 대기권을 넘어 성층권까지 침입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성층권에 머물러 햇빛을 장기간 차단하여 어둠의 혹한과 심한 가뭄이 있게 된다. 그 기간이 몇 년이고 지속된다면 식물 종은 물론 대부분의 동물 종도 사라진다. 여기에다 충돌 충격으로 인해 화산활동이 증가되면 지구는 그야말로 곳곳이 지옥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 의하면, 공룡같이 덩치가 커서 많이 먹어야 하는 동물들은 당연히 사라지지만, 물에서 생활하는 악어나 양서류는 부유물 쓰레기나 사체로 견딜 수 있습니다. 최근 증거에 의하면, 땅에 사는 생명은 12% 정도만이 살아남았고, 반면 민물에 사는 동물은 90% 정도까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2015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지질학자들이 소행성이 충돌이 수십만 년 동안 분출한 데칸 지역 화산활동을 가속시켰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1). 그들은 충돌 전 25만년에서 이후 50만년 사이에 분출된 용암을 채취하여 천년 단위로 정밀한 연대측정을 합니다. 그리고 충돌이 있고 난 후 마그마 분출 속도가 빨라졌고 또 분출량도 많아졌음을 알아냅니다. 이러한 전환은 충돌 후 바로, 지질학적 시간으로는 순간적인 5만년 이내에 일어났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소행성 충돌 여파가 지구 반대편 데칸 지역까지 영향을 주어, 꿈틀대는 지각내부 여러 군데 흩어져 있던 마그마를 한 곳으로 모이게 했기 때문에 폭발이 빠르고 커졌다고 추론합니다. 그들은 충돌 전에는 소량의 마그마가 자주 분출되었지만, 충돌 후에는 단속적으로 많은 양이 분출되었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합니다. 더욱 다음 화산 폭발이 시간 차이를 두고 대형으로 일어난 이유 역시, 충돌 충격으로 거대해진 마그마 방이 다시 채워지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스멀스멀 자주 터지는 화산보다는 간헐적으로 세게 터지는 화산이 생명에 치명적입니다. 충돌 이후 화산활동이 50만년 동안 가속되었는데, 그 때 토해낸 용암이 트랩의 70%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버클리 과학자의 연구는 소행성 충돌과 화산 폭발이 생명 대멸종에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결과입니다. 이를 펀치 두 방을 연거푸 맞아 지구 생명이 넉다운되는 ‘원-투 펀치 가설’이라 합니다.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소행성 충돌이 멸종의 주범입니다. 페름기 멸종의 인과관계도 화산폭발 이후의 사건 순서를 천년 단위로 정확하게 밝힘으로써 가능했음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생명의 역사 22).


충돌이 아무리 컸더라도 지구 반대 편까지 충격 여파가 가겠느냐며 원-투 펀치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 과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논문 두 편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다국적 연구팀이 칙술룹에서 한참 떨어진 남극 셰이무어(Seymour) 섬에 남겨진 6000점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 충돌이 있기 전에는 생물상이 온전한데 충돌 이후 급격히 70%나 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충돌의 효과가 남극까지 미쳤다는 이야기이며, 화산폭발은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Nature Comm., 2016). 한편, 중국 베이징 대학 지질학과 연구팀은 데칸 화산폭발 지역에 가까운, 백악기말에는 호수였던 북중국 한 지역의 침전물을 분석했습니다. 소행성 충돌이 일어나기 25만년전에 화산폭발 시작과 함께 온도가 급상승하였고 곧이어 생물 70%가 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데칸 지역 화산폭발이 직접 생명멸종을 유발했다는 증거입니다(Geology, 2018). 충돌이냐 폭발이냐 아니면 둘 다냐? 과학자들은 K-Pg 경계가 노출된 지역을 찾아 다니며 생명멸종의 주범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하려고 합니다.


K-Pg 생명멸종의 주범에 관한 한, 일본 도호쿠 대학 지질학자 Kaiho 박사와 Oshima 박사는 칙술룹 지역 퇴적암 사이에 매장되었던 석유의 양이 K-Pg 대멸종의 중요한 변수였다고 주장합니다(2). 충돌 시나리오대로, 충돌로 묻혀있던 석유가 타버리고, 그을음 입자와 유황성분이 대기권, 더 나아가 성층권까지 진입합니다. 산성비에 이은 극한 한파와 가뭄으로 생명은 죽어나갑니다. 그들은 석유 매장량과 충격 정도, 그에 따른 그을음 생성량, 그리고 성층권 진입 여부를 모델링하여 생명멸종을 가져오는 석유 매장량을 추정합니다. 생명 집단멸종을 이르게 하는 칙술룹 정도만큼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얕은 바다지역은 지구 전체 13% 정도뿐입니다. Kaiho 박사는 만약 소행성이 이러한 13%에 해당하는 지역을 조금만 비껴났더라도 공룡 멸종은 없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 인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룡의 불행은 우리의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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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 R. Renne, et al. State shift in Deccan volcanism at the Cretaceous-Paleogene boundary, possibly induced by impact. Science 350: 76–78. 2015

2. K. Kaiho and N. Oshima. Site of asteroid impact changed the history of life on Earth: the low probability of mass extinction. Scientific Reports 7: 14855.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