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열린마당

제목
생명의 역사27: 꽃, 생태계 접수 시나리오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7-02


1.2-1.0억년전 백악기 초에는 속씨식물은 5-10% 정도였다가, 지배종인 겉씨식물을 제치고 0.65억년전 후반에는 80-90%를 차지합니다. 이에는 화분매개자 곤충에 의한 표적 수정과 초식동물에 의한 씨앗의 원거리 분산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본격적인 공진화 관계가 설정되기 이전에 어떻게 겉씨식물이 전부인 숲에서 나타난 소수의 속씨식물들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속씨식물은 꽃 덕분에 겉씨식물에 비해 생식주기가 빠릅니다. 성장도 빠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광합성 용량을 향상시켜 많이 소비하고 많이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겉씨식물에 비해 속씨식물은 비옥한 토양을 요구합니다. 겉씨식물은 생존위주 유지정책, 속씨식물은 생식위주 성장정책을 폅니다. 어느 정책이 진화적으로 유리한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습니다. 각각은 자신에게 알맞은 생태적 최적의 안정상태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겉씨식물은 고위도 추운 지역을, 속씨식물은 열대 우림 지역을 지배합니다. 북방 침엽수림에서 꽃식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겉씨식물 지배 지역에 들어선 속씨식물은 제아무리 높은 생산성으로 생식주기를 빨리 돌리더라도 겉씨식물이 만들어 놓은 안정상태를 깨지 못합니다. 현재의 겉씨식물이 지배하고 있는 숲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생대 백악기에는 소수의 속씨식물 집단이 2-3억년 동안 만들어 놓은 겉씨식물의 안정상태를 점차 깨트리면서 자신들만의 안정상태를 새로이 구축합니다. 이러한 전이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기본 진화적 사고로서, 속씨식물이 가진 특성이 개체의 생존 혹은 생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실 본격적인 화분매개자인 꿀벌이나 나비가 등장하기 이전에 딱정벌레가 수정을 매개했을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초기 속씨식물이 몇 mm도 안되는 보잘것없는 꽃을 피웠다 하더라도, 수정의 확실성 측면에서 바람에 의해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겉씨식물에 비해 유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꽃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수억 개의 작은 꽃가루를 만드는 비용에 비해 덜 들었으면 들었지 더 든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생식에 관한 한 속씨식물은 자연선택될 만합니다.


여러 화석 증거에 따르면, 초기 속씨식물은 생식주기를 빠르게 돌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합성 생산성이 별로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백악기 다양화 과정에 광합성 용량을 향상시키는 혁신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속씨식물이건 겉씨식물이건 광합성에 관한 한 식물은 최적을 추구합니다. 예를 들면, 침엽수는 바늘 잎을, 소철은 큰 이파리를, 속씨식물은 다수의 작은 잎을 만들며 각자의 생리적 형태적 특성에 알맞게 광합성 면적을 늘리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광합성 효율, 광합성 면적, 엽록체 밀도 등을 지표로 생산성 차이를 견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광합성 용량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겉씨식물은 시도하지 않았지만(혹은, 시도할 수 없었지만), 속씨식물이 시도한 전략을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최근 물자 수송 도로(잎맥)나 항만(기공) 같은 SOC 투자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속씨식물이 광합성 생산성 면에서 선택적으로 유리했다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호주 Tasmania 대학의 Brodribb박사와 미국 Tennessee 대학의 Field 박사는 현존하는 504개의 속씨식물과 화석샘플을 가지고 잎맥의 진화 계통도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식물이 진화한 이래 2억5천만년간 잎맥 밀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가 백악기 초기 속씨식물 다양화가 일어나는 시점에 3-4배가 증가하였음을 알아냅니다(1). 그들은 모델링을 통해 단위면적당 잎맥의 밀도증가는 광합성 용량 향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 증가이유를 백악기 초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은 조건에서 식물은 자신의 광합성 용량을 유지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파리 뒷면 가스 흡입구 즉, 기공의 수를 늘려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기공의 수를 늘리면 더 많은 수분손실이 있게 되어 식물은 마릅니다. 손실되는 수분량을 보충하기 위해 잎맥을 늘리면 이파리에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겉씨식물은 구조적 해부학적 제약 때문에 그러한 적응을 할 수 없었고, 그저 견디다가 속씨식물에게 밀려 자리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상항주립대학 Simonin 박사와 예일대학의 Roddy 박사는 속씨식물 이파리에 잎맥이 빼곡하게 들어서면 광합성 세포가 자리할 곳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광합성 용량이 증가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집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합니다. 『줄어든 공간에서 광합성 가능 세포 수를 유지하려면 세포의 크기를 줄이면 된다. 하지만 세포질 내 있는 엽록체 수가 줄어들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핵의 크기를 줄일 수 밖에 없다. 핵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유전체 크기를 줄여야 한다. 그러면 과연 속씨식물에서 유전체의 크기가 줄어들어 있는가? 기존 자료를 보면 그런 것 같다.』 그들은 양치식물, 겉씨식물, 속씨식물 포함 총 393 육상식물의 유전체 크기를 비교하며 진화계통도를 재구성합니다. 여러 통계분석을 동원하여 속씨식물은 과연 유전체 크기를 줄였음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예측했던 대로 유전체 축소가 일어난 시기는 백악기 초반으로 잎맥 밀도와 기공 수가 증가할 때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유전체 축소는 속씨식물 진화초기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다고 추정합니다. 속씨식물은 전체 유전체 중복으로 시작하였지만, 그들에게 부담이 되는 유전체를 계속 버려가며 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겉씨식물은 진화과정에서 늘어나는 유전체 부담을 그대로 안고 갔습니다.


최근 스웨덴 자연사박물관 Friis 박사 연구팀은 또 다른 측면에서 초기 속씨식물의 생태계 확산과정을 짐작하게 하는 논문을 발표합니다(3). 그들은 첨단 X-선 토모그래피 현미경을 사용하여 백악기 초기 250개 씨앗 화석의 내부 3차원 모양을 들여다 봅니다. 이중 50개 화석에서는 수정된 배아가 잘 보존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크기가 0.25 mm 정도로 무척 작았습니다. 씨앗의 전체 크기도 기껏해야 2.5 mm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배아 크기와 비교하여 씨앗이 간직한 영양조직의 부피는 꽤 컸습니다. 그리고 모든 배아는 발아되지 않은 휴면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연구팀은 초기 속씨식물의 씨앗은 『(i) 대체로 작았기에 널리 퍼질 수 있었고, (ii) 씨앗 속의 배아는 오랜 기간 휴면상태로 존재하며, (iii) 배아는 너무 작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양분이 있었기에 환경이 허용되면 그 양분을 십분 이용하여 장기간의 휴면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추론합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초기 속씨식물은 기회주위자(opportunistic)입니다. 씨앗이 휴면상태로 수백 수천 년을 견디다가 나중 조건이 허락하면 그간 묻혀있던 씨앗이 한꺼번에 발아한다고 보면, 백악기 이전에 서식했던 속씨식물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와 백악기 후반 속씨식물이 급팽창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마침내 다윈을 괴롭혔던 미스터리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이는 신크로트론 가속 X-선 빔을 이용하여 원시 씨앗의 생생한 3차원 영상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첨단 장비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이제 초기 속씨식물 자구 생태계 접수 시나리오를 구성해봅니다. 겉씨식물은 초식공룡 등쌀에 기둥 목질화를 촉진하여 키를 키워 이파리를 높이 답니다. 수분과 영양분을 줄여 잎사귀를 뻣뻣하고 맛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바늘 잎을 만들어 수분 손실을 막고 전체 표면적을 늘림으로써 광합성 양을 늘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습니다. 소위 생존 위주의 전략을 폅니다. 토양이 비옥할 필요가 없습니다. 겉씨식물 숲 척박한 토양에서 속씨식물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속씨식물은 황폐화된 지역이나 늪지대 혹은 극건조 지역에서 나타났을 것으로 봅니다. 공룡이 훝고간 지역, 허리케인이나 산불로 초토화된 지역이 속씨식물이 움틀 후보지입니다. 산불지역 같이 토질이 좋아진 곳에 자리잡으면 더욱 좋습니다. 일단 자라나기 시작하면 속씨식물은 영양가 높은 그리고 잘 분해되는 자식을 자주 많이 만들고, 이들의 사체는 토양을 비옥하게 합니다. 2009년 네덜란드의 Wageningen 대학의 Berendse와Scheffer 박사가 내놓은 ‘속씨식물과 토양과의 양성 되먹임 작용이 속씨식물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왔다’는 가설입니다(4). 초기 속씨식물의 작은 씨앗, 그 안에 오랜 휴면상태를 견딜만한 아주 작은 배아가 서식지 확산과 분화에 큰 몫을 합니다. 공룡이 휩쓸고 간 빈자리나 새로이 드러나는 자연재해 지역으로 씨앗이 분산되면서 속씨식물은 종분화 과정을 밟습니다(disruptive process). 이 과정에서 꽃식물은 불필요한 유전체를 줄이고, 관개시설 건설에 열중하여 광합성 용량을 증진시킵니다. 속씨식물은 생식, 성장, 분화에 있어서 선순환, 멈출 수 없는 과정에 들어 섭니다(runaway process).

----------------------------------------------------------

1. Tim J. Brodribb and Taylor S. Field. Leaf hydraulic evolution led a surge in leaf photosynthetic capacity during early angiosperm diversification. Ecology letters 13: 175–183, 2010

2. Kevin A. Simonin and Adam B. Roddy. Genome downsizing, physiological novelty, and the global dominance of flowering plants. PLOS Biol. 16: e2003706, 2018

3. Else Marie Friis, et al. Exceptional preservation of tiny embryos documents seed dormancy in early angiosperms. Nature 528: 551–554, 2015

4. Frank Berendse and Marten Scheffer. The angiosperm radiation revisited, an ecological explanation for Darwin's 'abominable mystery'. Ecology Letters 12: 865–872,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