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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25: 공룡, 외온성 혹은 내온성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3-20


삼첩기는 페름기 말 대재앙을 딛고 오늘날 육상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진화적 혁신을 이루어 낸 시기였습니다. 대륙은 판게아 하나로 뭉쳐 있었고, 기후는 산 정상과 극지방에 만년설이 없을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빠르게 오래 걷기를 할 수 있는 공룡은 지구 곳곳 널리 퍼져 우월적인 생태적 지위를 누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땅덩어리가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애써 이룬 생태계가 무너집니다. 삼첩기 말 멸종사건은 페름기 말에 있었던 사건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같은 원인인 거대한 화산폭발에 따른 이산화탄소 증가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재앙을 가까스로 넘긴 동물들은 쥐라기에 생활 터전을 마련합니다. 삼첩기 때보다 생태계 질서는 더욱 공룡 편향적으로 되어 그들의 우월적인 지위는 6천5백만년전 극적인 외부 충격으로 멸종될 때까지 무려 1억3천만년 동안 유지됩니다. 포유류는 왜 그 오랜 기간 동안 공룡의 생태적 지위를 넘보지 못했을까? 공룡이 지닌 생리적 혹은 구조적 우월성 때문이 아님을 지난 글에서 언급했습니다. 그렇다고 멸종과정에서 운이 작용한 결과 더 큰 공룡이 더 많이 살아남아 빈 생태계를 선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려 해도, 생태계 초기설정이 그리 오랫동안 포유류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사실 포유류는 호흡 면에서 또 척추 및 기타 골격구조 면에서도 공룡보다 운동에 관한 한 더 적합한 체형입니다. 그리고 포유류는 진화과정에서 열을 자체 생산하여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내온성(endothermy) 대사전략을 획득하여 체력을 향상시켰습니다. 따라서 생태계 지위 확장에 있어서 공룡에 밀릴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공룡에게 우월적 지위를 내어준 조건에서 포유류의 내온성 대사전략은 하나의 덫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자체로 열을 생산하지 않고 주변 온도에 체온을 맞추는 외온성(ectothermy) 동물에 비해 내온성 동물은 같은 몸무게 기준 10배 내지는 30배 정도를 더 먹어야 하는 생활방식이 문제였습니다. 이는 스테미너 향상을 가져와 먹이 획득과 서식지 확장에 도움을 주지만, 먹이자원을 빠르게 고갈시켜 동물들을 심한 경쟁으로 내몹니다. 이 때문에 내온성 동물은 몸집을 마냥 키우거나 자식 수를 한껏 늘릴 수 없습니다. 생태적 지위를 다투는 상황에 있는 동물은 더욱 그렇습니다. 진화적 견지에서 내온성은 아주 불리해 보입니다. 그러나 포유류는 주변 온도가 변하더라도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내온성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진화적 불리한 국면을 벗어납니다. 포유류는 공룡의 등살을 피해 밤낮의 기온 변화를 견디는 야행성 생활을 택하고, 체온 손실을 감수하며 몸집을 줄입니다※. 소형화 전략은 먹이소비를 줄여 고비용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게 했으며, 뇌 발달이라는 부수적인 이익도 얻게 됩니다. 예를 들면, 동물이 전체 에너지 10%를 뇌에 투자한다면, 같은 크기의 몸집을 가진 내온성 동물은 외온성 동물보다 절대량으로 10배 이상을 뇌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야행성이기에 시각에 할당된 에너지를 청각, 후각, 대뇌피질 발달로 돌릴 수 있어, 공룡시대 포유류는 작지만 똑똑했습니다.


생리학자들은 자체 열생산 여부에 따른 ‘내온-외온’ 구분 이외에, 체온유지 여부에 따라 ‘항온(homeotherm)-변온(poikilotherm)’으로 동물을 구분합니다. 좀더 애매한 ‘온혈-냉혈’ 구분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을 탐탁히 여기지 않습니다. 대부분 내온동물이 항온동물이자 온혈동물이지만, 자체로 열을 생산하지 않는 외온동물이라도 주변 온도보다 더 따뜻한 온혈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몸집을 크게 하여 열손실을 줄임으로써 가능한데, 이를 수동적으로 관성적으로 체온을 유지한다 하여 관성적 항온(inertial homeotherm)이라 합니다. 대형 초식공룡은 이러한 전략을 선택하여 체온을 높게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공룡은 외온성이라 할지라도 온혈동물이었으며 또 항온동물이었습니다.


공룡의 온혈성은 쥐라기 생태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같은 크기의 포유류 보다 덜 먹기 때문에 쥐라기 생태계는 대형 초식공룡을 생각보다 많이 수용할 수 있었고, 한동안 햇빛을 받아 몸을 덥혀야 활동을 개시하는 냉혈 도마뱀과 다르게 아무리 큰 공룡이라도 언제든지 행동에 나설 만큼 활동적이었습니다. 한편, 초식공룡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육식공룡은 어떠했을까요? 공룡학자들은 조류가 내온성이니 혹시 수각류 육식공룡도 내온성 생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추울 때 몸을 떨면서 열을 생산하듯이, 공룡도 근육을 움직여서 열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공룡은 필요에 따라 내온성 생리를 작동시킬 수 있었고, 거대 육식공룡의 빠른 몸놀림과 오래 달리기에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여느 내온동물과 같이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1). 공룡 오디세이(dinosaur odyssey)를 쓴 Scott Sampson 박사는 이와 같은 공룡의 대사생리를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중온성(mesothermy)이라 정의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공룡이 중온성 대사전략을 채택하였는지? 공룡새(dino-bird)와 같이 조류로 진화하는 공룡은 아예 내온성 대사전략을 채택하였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최근 연구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공룡화석을 현존하는 동물과 비교하여 백악기 공룡은 이미 내온성을 진화시켰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아무튼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은 공룡이 포유류에 비해 저비용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매우 활동적이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덩치 큰 공룡들은 얼마나 먹었을까? 육식이건 초식이건 몸집이 크면 많이 먹어야 합니다. 현생 육상동물 중 가장 큰 코끼리는 일생의 3/4을 먹이를 찾는 데에 씁니다. 이보다 몇 배나 더 큰 초식공룡은 엄청나게 먹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막대한 양의 먹이가 있어야 했고 또 넓은 활동영역이 필요했습니다. 중생대 식물의 양을 추산하면 그때 살았던 공룡의 수를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쥐라기는 온실 기후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높았고, 이는 식물의 성장을 촉진했을 것을 보아, 쥐라기 1차생산량은 대략 지금의 두 배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식물이 있었고, 식물은 더 많은 초식공룡을 먹여 살렸고, 초식공룡은 더 많은 육식공룡을 부양했을 것으로 봅니다. 중온성 대사생리를 가진 공룡은 내온성 동물보다 덜 먹기 때문에, 중생대 생태계는 생각보다 많은 공룡들로 우글거렸습니다. 쥐라기에 판게아는 느린 속도로 쪼개지고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륙을 연결하는 많은 육지다리가 존재하였을 것입니다. 이 육지다리 덕분에 공룡은 지구 곳곳으로 활동범위를 넓혀 퍼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중생대 특히 쥐라기에 공룡은 생태적 제약없이 마구 확산하며 번성하였습니다. 공룡은 포유류에게 어떤 생태적 지위확장을 위한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백악기에 대륙들의 격리가 진행되면서 육지 동식물상도 분리되어 새로운 진화의 기회를 창출합니다. 엄청나게 긴 목을 가진 용각류 대형 초식공룡은 작고 현란한 머리 장식을 지닌 뿔공룡과 오리주둥이공룡으로 대치됩니다. 육식공룡도 먹고 먹히는 관계가 복잡해져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합니다. 오늘날보다 훨씬 따뜻한 기후가 백악기 내내 지속되었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높았습니다. 식물상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고사리류, 속새류 등 포자를 만드는 양치식물들이 소철류 은행류 같은 겉씨식물들과 나란히 살고 있던 백악기 초기에 단조로운 파스텔 톤의 지구를 총천연색 지구로 바꾸는 속씨식물, 즉 꽃 피는 식물이 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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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 M. Grady et al. Dinosaur physiology. Evidence for mesothermy in dinosaurs. Science. 344:1268-1272 (2014)

※ 몸집이 커지면 체적 대비 피부 면적이 줄어 듭니다. 계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변이 2cm인 정육면체의 표면적은 (2cm X 2cm) X 6 = 24cm2이며 부피는 2cm X 2cm X 2cm = 8cm3입니다. 표면적/부피 = 3이 됩니다. 각 변이 두 배로 늘어나면 표면적은 96cm2, 부피는 64cm3, 표면적/부피 = 1.5가 되어 상대적 표면적이 반으로 줍니다. 따라서 피부를 통한 열손실이 줄어들겠죠. 반대로 덩치가 작아지면 체적 대비 피부 면적이 커져 열손실이 늘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