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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21: 아놀 도마뱀, 진화는 반복될 수 있다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1-31


카리브해에 있는 쿠바, 히스파뇰라,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 섬에 서식하고 있는 아놀(anole) 도마뱀은 진화학자에게 진화의 양상을 연구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동물입니다. 4천만년전 이들 섬은 연결되어 있었으나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서식했던 단일 아놀 집단이 격리되어 다양한 종으로 분화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4개 섬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풀섶을 뛰어다니는 긴 다리를 가진 놈, 앞 발로 잔가지를 움켜잡는 짧은 다리를 가진 놈, 나뭇잎에 잘 달라붙도록 넓은 발바닥을 가진 놈 등등이 모든 섬에서 발견됩니다. 시작은 달랐다 하더라도 비슷한 환경에 접한 생물은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합니다(수렴진화, convergent evolution). 또 새로운 환경에 들어선 동물은 다양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s)를 차지하면서 빠르게 종분화가 일어납니다(적응방산, adaptive radiation). 적응방산하여 진화한 대부분의 종이 비슷하다면, 종분화 자체도 수렴될 수 있다(반복적응방산, repeated adaptive radiation)는 이야기지요. 진화의 ‘반복성’ 혹은 ‘예측 가능성’은 오랫동안 진화학자들의 관심 주제였습니다. 일찍이 Gould 박사는 ‘진화 역사에서 리셋 버튼을 눌러 진화를 다시 시작할 경우, 본질적으로 이전과 똑같은 종이 출현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생명의 역사 20). 아놀 도마뱀은 이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동물입니다.


사실, 카리브해 각 섬에서 아놀의 적응방산은 자연이 설계한 네 번의 반복 실험으로 보면 됩니다. UC Davis 박사과정 학생 Luck Mahler는 수천만년에 걸친 진화실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아놀 100종을 선택하여, 비슷한 모양을 가진 놈들끼리 그룹 짓고 어떤 면에서 어떻게 비슷한지를 정합니다. 형태와 서식지 별 분포 양상과 적합도, 환경과의 상관성 등을 찾습니다. 수학적 모델링을 통하여 적합성 지형도(adaptive landscape)를 완성하여, 아놀도마뱀이 섬 곳곳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분화한 양상이 거의 같음을 보여줍니다(1). 2012년 Mahler 의 지도교수 Jonathan Losos가 내놓은 적응방산 양상도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하게 수렴된다는 ‘반복적응방산(repeated adaptive radiation)’ 진화가설을 증명한 셈이죠. 4천만년동안 4개의 섬에서 아놀에게 가해지는 자연선택 압력이 아무리 비슷했다 하더라도 유전적 변이는 무작위로 일어나고, 형태의 변화는 대체로 여러 유전자의 변이가 누적되어 이루어집니다. 독립적으로 진행된 진화에서 어떤 두 종이 비슷한 모양으로 수렴했다면 돌연변이 표적은 물론 발생 순서도 비슷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 유전자와 환경과의 상호작용, 유전자와 표현형과의 관계 등도 고려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하여간 Mahler의 연구결과는 ‘진화는 어떤 경향성을 보인다’와 같은 결정론적인 시각이 과연 이단적인 사고인지를 묻게 합니다.


풀보다 나무가 많은 곳에 방목한 아놀은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도시에 방목한 아놀은 유리나 시멘트 벽을 타기 좋도록 넙적한 발바닥을 가집니다. 게코(gecko) 도마뱀은 큰 덩치의 먹이를 먹게 되면 머리가 커집니다. 아놀도마뱀은 환경에 빠르게 대처하는 동물로 유명합니다. 하바드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 Campbell-Staton은 파충류가 추위에 적응하는 기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행운이 다가옵니다. 2013-14년 겨울에 텍사스 지역에 유래가 없는 한파가 닥칩니다. Campbell-Staton은 TV뉴스에서 추위를 못 이겨 쓰러져 있는 녹색아놀(green anole)을 보고 유레카를 외치며 ‘자연적인 한파를 거친 아놀의 유전체는 어떻게 변했을까?’를 연구주제로 정합니다. 그는 이른 봄에 아놀을 수집해서 그들이 추위에 얼마나 견디는지를 보려고 간단한 실험을 합니다. TV에서 본대로 아놀은 너무 추우면 자빠져 일어나지 못합니다. 신경계와 근육계가 정지된다는 것이죠. 그는 녹색아놀이 쓰러지지만 몸을 뒤집을 수 있는 졸도 직전의 온도를 정합니다. 실험해 보니, 멕시코 경계 텍사스 남부에서 잡은 아놀은 11도가 되면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합니다. 북부에서 잡은 아놀은 어느 정도 낮은 온도에 적응했기에 6도에 이르러야 졸도합니다. 2013-2014년 혹한을 넘긴 남부지방 아놀은 6도까지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한달 간의 한파가 텍사스 남쪽 아놀을 북쪽 지방에 적응 진화한 아놀과 같은 추위 저항성을 가지도록 바꾼 것이죠. 당연히 그 녹색아놀의 유전체와 단백질체를 분석하였고, 신경-근육 전달에 관계된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있음을 밝힙니다(2). 야생에서 자연선택이 일어남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연구들 중의 하나입니다. 유전적 수준에서 일어난 변화까지 보여준 충실한 연구였고, 무엇보다도 주목을 끌었던 것은 그러한 진화가 수개월만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빠른 진화’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아놀의 유전체를 분석하면, 왜 이들이 그렇게 빨리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하바드와 MIT 부설 브로드 연구소(Broad Institute) 주도 25개 연구소 연구팀은 녹색아놀 Anolis carolinensis의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을 Nature에 발표합니다(3). 이번 글 주제에 맞는 주목할만한 사실은 그들 유전체의 30%가 전이인자(transposable element)이며, 여전히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유전체 43% 정도도 전이인자 혹은 유사 전이인자이지만, 대부분 움직이는 능력이 상실되었거나 또 활동이 억제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전이인자 100여개는 아놀의 것과 비슷합니다. 초기 파충류에 있었던 어떤 전이인자는 포유류 그리고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명맥을 유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현재의 아놀에서는 뛰고 있지만, 사람에서는 붙박이로 고정되어 일정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1-2억년의 진화역사에서 그들을 남겨둘 이유가 없겠지요. 아마도 초기 파충류도 아놀과 같이 활동적인 전이인자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일부는 포유류나 조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정 기능을 하게끔 이용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현생 도마뱀은 여전히 활동적인 전이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전체 변이가 쉽게 일어나 빠르게 주변에 적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마뱀이 날쌔게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전이인자도 날쌔게 움직여 자연선택 시험에 대비합니다.


그리고 브로드 연구소 연구팀은 아놀의 수렴진화나 적응방산의 결과를 유전체 수준에서 분석하고자, 카리브해 섬에 사는 아놀 91종에서 유전체 일부 20,000염기쌍을 비교 분석하여 임시적인 진화계통도를 그렸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각 섬에서 아놀은 독립적으로 진화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좀더 충실한 계통도가 완성되면, 진화는 반복될 수 있음이 --적어도 특정 종에서-- 증명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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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hler D. L., et al. Exceptional convergence on the macroevolutionary landscape in island lizard radiations. Science. 341:292-295 (2013)

(2) Campbell-Staton S. C. et al. Winter storms drive rapid phenotypic, regulatory, and genomic shifts in the green anole lizard. Science 357:495-498 (2017)

(3) Alföldi J., et al. The genome of the green anole lizard and a comparative analysis with birds and mammals. Nature 477:587–59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