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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18: 육상진출, 새로운 흔적화석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1-16


나뭇잎을 모방하는 곤충의 날개가 건조기에는 갈색, 우기에는 초록색을 띠는 것과 같이 어떤 가소성은 아주 빠르게 표출되지만, ‘발달가소성’은 동물발생 초기에 신호를 접수하고 나중 단계별로 표현형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 표현형이 행동으로 표출될 경우 ‘행동가소성’이라 하죠. 발달가소성은 한 개체가 새로운 환경에 접했을 경우, 개인별 시행착오로 습득된 행동이 구성원 전체로 퍼질 수 있게 합니다[집단 반응평균(reaction norm)의 변화]. 요동치는 환경 조건에서 분명 행동가소성을 가진 동물이 유리합니다. 환경이 안정되면 가소성은 유전적인 동화가 일어나 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생명의 역사 17).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가소성 유지 혹은 폐기는 손익계산에 따른 자연선택의 결과입니다. 선택과정에서 다른 가소성 형질과 절충이 있을 것이며, 어떤 경우 그러한 선택이 나중에 부담으로 다가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정된 환경에서는 가소성이 만들어져 다음 진화를 대비할 수도 있습니다(진화력, evolvability).


Gould 박사는 동물의 형태화석을 분석하여 ‘동물 종의 진화 양상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큰 변화 없는 안정기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속한 종분화가 이루어지는 분화기로 나뉜다’는 단속평형이론(punctuate equilibrium)을 내놓았습니다(생명의 역사 12). 최근 영국 포츠머스 대학의 Minter 박사는 5.4억년전 에디아카란 후기에서부터 2.6억년전 고생대 페름기에 이르기까지 알려진 동물의 흔적화석(tracing fossil)을 분석하였습니다. 흔적화석은 동물이 어디에서 살았는지 어떻게 움직였는지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주었고, Minter 박사는 여기에 화석화 당시의 환경정보를 추가하였습니다. 그 체계화된 정보로부터 Minter 박사는 동물의 생활방식이나 행동양상의 다양화는 거의 같은 패턴 즉, 이동 초기에는 빠른 다변화 폭발이 있다가 상대적으로 긴 기간의 안정기를 가진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놀라운 점은, 진화의 양상에 관련하여 동물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도 Gould 박사가 형태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죠. 특히, 고생대 이전의 지구역사에서 동물이 새로운 서식처로 이동할 때마다 거의 매번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급격한 분화기 동안에도 행동에 의해 형태의 변화가 먼저 오고 나중에 종의 분화가 따라오는 양상을 보입니다(disparity first, diversity later). 이는 동물의 적응방산 시기에 가소성 행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고, 이후 가소성이 양성 혹은 음성으로 정리되는 단계를 거쳐 종의 분화가 이루어짐을 제시합니다. 물론 종 분화 후 안정기에 접어들면 다음을 대비한 가소성 잠재력이 만들어지겠죠.


물고기 육상진출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를 새로운 흔적화석을 아울러 소개합니다. 바르샤바 대학 학부생 니쯔비쯔키(Niedzwiedzki)는 폴란드 남동부 이회암(모래에 진흙이 덮쳐 이루어진 침전암) 지대에서 동물의 발자국 흔적을 발견합니다. 첨단장비를 동원해 분석해 보니, 3.95년전 데본기 중기에 새겨진 자국으로 그 주인공은 발가락을 가진 2 m 정도의 사지동물임이 드러납니다. 이들은 살라만더 도롱뇽처럼 어기적거리며 걸었던 것 같습니다. 기존 알려진 사지동물 화석을 다시 정리해 보면(생명의 역사 16), 발가락이 있는 발을 가진 그렇지만 주요 생활 터전이 물속인 수생사지동물 아칸토스테가(acanthosteg)는 3.6억년전 동물입니다. 물고기와 사지동물 중간 전이단계에 있는 판데리키티스(panderichithys)나 틱타알릭(tiktaalik)은 3.8-3.86억년전 동물입니다. 이들은 지느러미로 바닥을 짚고 윗몸을 일으킬 수 있는 물고기로 사지물고기(fishapod)라 합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당연히 사지물고기에서 수생사지동물로 진화하였으며, 화석이 발견된 장소에 근거하여 수생사지동물은 강이나 연못에서 살다가 땅으로 진출하는 모험을 강행했을 것으로 여겼습니다(생명의 역사 16, 17).


니쯔비쯔키가 발견한 발자국 화석은 이러한 시나리오에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발자국 주인공은 수생사지동물 아칸토스테가에 비해 1800만년 먼저, 사지물고기 틱타알릭보다 1000만년이나 먼저 있었던 동물이죠. 그렇다면, 물고기 육상진출 사건을 2천만년이나 뒤로 돌려 놓아야 했고, 전이단계의 사지물고기와 수생사지동물이 천만년 이상을 공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그들은 강이나 호수가 아니라 얕은 바닷가에 살면서 밀물과 썰물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갯벌에 놓여졌을 것입니다. 그 수생사지동물은 해변가를 배회하면서 떠밀려 온 물고기 시체나 갯벌에 사는 동물을 간식으로 즐겼겠죠. 이러한 추측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입니다. 기존 강가나 호수에서 땅으로 오르게 되었다는 시나리오에서는 건조기에 이르면 수생사지동물이 다른 물 웅덩이를 찾으려고 땅을 기게 되었으며, 조금씩 더 멀리 반복적으로 나가는 훈련 끝에 걸을 수 있게 되어 육상 먹이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육상 이동을 위한 골격구조의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음식을 먹는 턱이나 입천장 구조가 나중에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련 화석은 육상 이동에 필요한 구조와 섭식 구조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났음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생명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지난 두 글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정보가 물 바깥으로 나가게 했을 것이라는 가설에 비중을 두어 설명했습니다. 다른 가설도 있습니다. 수중 자신의 알을 탐하는 포식자를 피해 안전하게 알을 낳는 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땅으로, 혹은 데본기 말기 산소 부족 때문에 물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는 주장입니다. 새로이 발견된 흔적화석은 이러한 육상진출 시나리오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합니다. 어떤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한 녀석이 의지를 가지고 물 바깥으로 나갔을까요? 아니면 그냥 파도에 밀리다 보니 나가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단편의 지식들을 조합하여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더 많은 일들이 과거 3억8천만전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 논문의 교신저자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화석학자 Alhberg 박사는 말합니다. “니쯔비쯔키가 발견한 흔적화석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이 내 일생에서 가장 흥분된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전문가도 2천만년이나 더 오래된 지역에서 그러한 화석이 나오리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한 학부생의 열린 사고가 사지류의 육상진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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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icholas J. Minter, et al. Early bursts of diversification defined the faunal colonization of land. Nature Ecology & Evolution 1, Article number: 0175 (2017)

(2) Grzegorz Niedźwiedzki, et al. Tetrapod trackways from the early Middle Devonian period of Poland. Nature 463, 43–48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