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열린마당

제목
생명의 역사17: 육상진출, 행동이 형태의 진화를 견인하는가?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9-24


지난 글에서 맥카이버 박사팀은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하는 과정에서 눈이 커졌고, 커진 눈을 통하여 들어오는 물 바깥 세계의 정보가 그곳으로 나아가려는 행동을 유발하였기에 사지동물이 진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소개했습니다. 일찍이 다윈은 습관이 먼저 변한 후에 형태가 따라오는지, 아니면 형태의 변화가 있은 후에 습관이 변화하는지 알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새로운 서식처로 진출한 모험적인 동물이 일정기간 내에 신체적으로 잘 적응하는 예를 제시하며, 습관이 바뀐 후에 형태의 변화가 따라 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과연 행동이 형태를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해서 행동가소성(behavioral plasticity) 개념을 소개하면서 물고기의 육상진출 사건을 조명해보겠습니다.


전통적 진화이론에 의하면, 진화의 속도는 돌연변이 속도와 자연선택 강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자연선택의 강도는 주로 환경변화에 의존하지만, 그 강도는 한 개체가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새로운 행동으로 적극 대처할 경우 진화는 빨라질 수 있습니다. 한편, 다른 곳으로 이동함으로써 자연선택 압력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행동은 진화를 정체시킵니다. 이와 같이 동물은 환경에 따라 행동을 달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진화의 속도도 결정됩니다. 이를 행동가소성이라 합니다. 특정 유전자형이 환경에 따라 표현형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의미의 표현형 가소성(phenotypic plasticity)의 한 부분입니다. 가소성(可塑性)은 진흙을 빚는 것과 같이 외부의 자극이나 경험, 학습에 의해 형태가 바뀌는 성질로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연성(flexibility)과는 약간 다릅니다.


표현형 가소성은 한 개체가 배아시절부터 일생 동안에 경험할 변덕스런 환경에 잘 대처하게 함으로써 개개인 고유의 형태적, 생리적, 행동적 특징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발달가소성(developmental plasticity)이라고도 하지요. 본 카페 글 15-17(성인병의 태아유래 가설)에서 다룬 내용이 바로 발달가소성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발달가소성은 배아발달에만 한정한 것은 아닙니다. 임신 중 엄마의 영양부족 상태에서 태아는 만약을 대비해 태반에서 공급되는 에너지원을 비축하려 합니다. 이러한 태아의 절약형 생리모드는 출생 이후에도 계속되어 아이는 비만이 되기 십상입니다. 만약 영양이 풍부한 조건에 있었더라면, 태아에게 그러한 생리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영양 부족이라는 환경이 특정 옵션으로 잠자고 있는 유전자 발현 네트워크를 일깨운 것이죠. 가소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유전자 변이 보다는 숨어 있던 유전자(cryptic genes)의 커밍업이나 잠자고 있던 유전자(silent genes)의 후성유전적 활성화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소성을 나타나게 하는 시스템 자체는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것입니다. 자연선택의 대상으로 진화의 결과물입니다. 동물의 행동가소성도 자연선택을 통하여 장착된 것입니다.


이제 물고기의 육상진출 행동에 대해 알아보죠. 네덜란드의 동물행동학자(ethologist) 틴버겐(Tinbergen) 박사는 동물행동과 관련하여 네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1) 행동을 불러일으킨 자극은 무엇이며, 행동반응을 전달하는 생리학적 기작은 무엇인가? (2) 동물이 성장과 발달을 하는 동안 환경, 학습, 경험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3) 행동이 생존과 생식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4) 그 행동은 어떤 진화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행동의 근접원인에 대한 처음 두 질문에 답해봅니다. 첫 번째, 육상으로 나가려는 자극은 눈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물 바깥 세상 정보입니다. 동물이 먹이를 찾고 정보를 분석하고 먹는 행동 모두를 섭식활동(food foraging)이라 합니다. 눈을 통해 입력된 정보가 뇌에서 처리되어 근육으로 출력되는 과정 전부를 말합니다. 색다르고 맛있는 것을 먹어보면 동물은 그 먹거리를 탐하게 됩니다. 신경전달물질 도파민(dopamine)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신경 회로망과 신호전달 메커니즘은 이미 창고기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지동물 공통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46번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번에 걸친 전체 유전체 중복 사건으로 도파민 처리 시스템은 복잡해졌습니다. 먹고 행복해지는 감정 이외에 먹이를 본 순간 그 행복감을 기대하는 감정까지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도파민 기대보상 신경망이 물고기를 집요하게 물 밖으로 나가도록 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행동가소성으로 어느 정도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신경자극이 근육으로 전달될 때 초기 사지류 조상은 지느러미로 헤엄도 치고 바닥을 길 수 있습니다. 가소성 행동을 보이는 것이죠. 육상 환경에 의해 강제되는 행동을 반복하면 지느러미 형태도 그에 적합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표현형 조화, phenotypic accommodation). 자연선택은 몸을 뒤틀어 배밀이 하며 물 밖으로 나가는 행동가소성을 보이는 개체를 선호합니다. 이때 그러한 행동을 조금이나마 뒷받침하는 잠재하고 있던 변이나 새로운 유전적 변이(예, 팔목관절)가 나타나 선택되면 동물의 모습은 점차 바뀝니다(유전적 동화, genetic assimilation). 이러한 변화는 사지발달 관련 유전자 조절네트워크의 조그만 변화로 가능합니다. 사실 지느러미가 사지로 진화하는 과정에는 소닉 헤지호그(Sonic Hedgehog)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신호 단백질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최근 배아발생 초기 좌우대칭 뇌구조 및 눈의 위치와 크기에도 소닉 헤지호그가 관여함이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지느러미에서 사지로 전환되는 때에 맞추어 눈이 머리 옆에서 얼굴 앞쪽으로 몰리며 커지는 이유는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의 발현 위치나 발현 양에 조그마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최근 캐나다 오타와 대학의 에밀리 스탠든(Emily Standen) 박사팀은 물고기에게 바닥을 기는 행동을 강제하면 지느러미가 걷기에 적합한 형태로 변한다는 실험적 증거를 발표했습니다(1). 연구팀은 허파를 가지고 있으며 또 가슴지느러미를 움직여가며 어느 정도 육지에서 견딜 수 있는, 즉 지느러미 운동에 관한 한 발달가소성을 보이는 물고기 폴립테루스(Polypterus)를 선택하여 8개월동안 육상적응 훈련을 시킵니다. 이들은 지느러미를 좌우로 바닥을 지치며 머리를 들고 배밀이 하며 땅 위를 움직입니다. 이러한 훈련은 지느러미 근육에 변화를 유도하였을 뿐 아니라 가슴지느러미와 아가미를 지지하는 흉대(pectoral girdle)의 모양도 변하게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뼈 모양은 초기 사지류인 유스테노프테론(Eusthenopteron)에서 아칸토스테가(acantosteaga)로 진화할 때 모양 변화와 아주 비슷했습니다. 이는 특정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형태의 변화가 발달가소성 때문이며, 그것이 육상 척추동물로의 진화를 이끌었을 것임을 처음으로 제시한 연구입니다. 그리고 발달가소성을 가진 동물은 진화 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발달가소성을 나타내지 않는 동물은 진화 여력이 소진되었음을 아울러 제시합니다. 근육 지느러미를 가진 폐어나 실러켄스는 지느러미를 헤엄용으로만 씁니다. 이들은 헤엄치기로 유전적 동화가 이미 진행된 것이죠. 스탠든 박사팀의 실험 성공은 초기 사지류의 조상으로 간주되는 물고기에서 계통적으로 좀더 오래되고 멀리 떨어진, 지느러미 운동에 관한 한 유전적 동화가 일어나지 않은 폴립테루스를 선택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리해 봅니다. 새로운 육식행동이 턱을, 육상진출행동이 사지를, 하늘로 비상하려는 행위가 날개를 진화시켰습니다. 새로운 행동은 동물을 새로운 자연선택 압력에 노출시켜 진화를 촉진합니다. 데본기와 페름기 멸종 위기를 넘겨 적응방산 기회를 맞은 물고기는 머리가 먼저 바뀌고 나중에 몸체가 바뀌는 경향이 있음을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섭식행동이 체형의 변화를 유도한 강력한 증거입니다. 척추동물 육상진출은 정보의 홍수에서 시작된 자극에 대한 반응과 육상진출을 시도하려는 행동이 양성되먹임되어 불과 1200만년 사이에 척추동물 역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사건의 물꼬를 틉니다.

---------------------------------------------------------------

(1) E. M. Standen, et al. Developmental plasticity and the origin of tetrapods. Nature 513, 54–58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