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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16: 육상진출, 사지류의 진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9-11


경골여류 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방사형(ray-finned) 지느러미류(Actinopterygii) 이외에 잎사귀형(lobe-finned) 지느러미류(Sarcopterygii, sarco = 근육)도 있습니다. 이들은 가슴지느러미(pectoral fins)와 배지르러미(pelvic fin)에 근육층으로 둘러싸인 뼈를 가지고 있으며 방사형 지느러미류와 비슷한 시기인 실루리아기에 나타나 데본기에 번성하였습니다. 강어귀나 해안 습지대를 근육 지느러미를 움직여 헤엄치거나 바닥을 헤집으면서 다녔습니다. 현재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1-2종의 실러캔스류(coelocanths)와 6종의 폐어류(lungfishes)가 남아있습니다. 데본기 중기 3억6500만년 즈음 이들의 조상 어떤 종에서 지느러미를 다리로 바꾼 네발동물 사지류(tetrapods)가 나타났고, 척추동물의 역사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인 육상진출의 주역이 되어 지금의 우리에게 이릅니다. 오늘은 이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물에서 뭍으로 진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지느러미에서 다리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이화석들(transitional fossils)이 꽤 있습니다. 우리 팔뼈를 참고하면, 방사형 지느러미를 가진 사지류 조상은 하나짜리 윗팔뼈만 있고 그 이하 나머지 뼈들은 축소되어 지느러미 안에 박혀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유스테노프테론, eusthenopteron). 그 이후 나타나는 사지류에서는 지느러미에 박혀있던 뼈 중 두 개짜리 아래팔뼈가 도드라집니다(판데리키티스, panderichithys). 그 다음에는 한 개짜리 윗팔뼈, 두 개짜리 아래팔뼈, 그리고 지느러미 사이에 관절이 생깁니다(틱타알릭, tiktaalik). 즉, 팔꿈치과 손목이 진화한 것이죠. 나중에 지느러미 안에 있던 뼈가 손가락뼈로 배열되어 물고기 테를 벗습니다(아칸토스테가, acanthostega). 판데리키티스는 물고기에 더 가깝습니다. 지느러미로 물밑 바닥을 헤집고 다닐 정도죠. 틱타알릭은 네발물고기(fishapod)로 불려질 만큼 물고기와 사지동물의 중간 상태를 보여주는 금세기 최고의 화석입니다(1). 비늘과 아가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허파는 물론 있고요. 머리가 어깨뼈에서 분리되어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비록, 좌우로는 움직이지 못하지만 목이 생긴 것이죠. 이들은 물속에서 지느러미를 페달처럼 움직이며 생활합니다. 가끔은 팔꿈치와 손목을 이용하여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쳐들고 물 밖으로 나갑니다. 아칸토스테가는 발가락까지 가진 대표적인 사지류입니다. 발가락은 다섯이 아니라 여덟 개로 사이 사이에 물갈퀴가 있습니다. 그들의 다리는 부력이 없는 상태에서 중력을 견디며 걸을 수는 없는 역학 구조입니다. 틱타알릭과 마찬가지로 주로 수중생활을 했고 가끔 물가로 나가 먹이사냥을 했을 것입니다. 상기한 화석 증거들은 물고기가 먼저 바깥으로 나온 후 육지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지느러미가 다리로 바뀐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먼저 다리로 바뀌었고 나중에 육상생활에 유용한 쓰인 것입니다. 특히 뒷다리가 그렇습니다. 지난 12번 글에서 소개한 스티븐 굴드 박사가 만들어낸 용어, '창출적응(exaptation)'의 한 예입니다.


사지류가 땅으로 진출한 데본기 중기에는 이들보다 5000만년 전이나 먼저 진출한 식물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각종 절지동물들과 날개 없는 곤충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숲을 접한 얕은 강가 바닥에는 관목들과 각종 낙엽성 식물 잔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서식지는 빨리 헤엄치는 큰물고기가 살기에는 불리하지만 사지동물이나 작은 물고기가 살기 안성맞춤입니다. 관목 사이를 헤집고 바닥을 기는 사지동물의 머리는 평평해지고 눈은 얼굴 위쪽으로 옮겨져 위를 잘 살피게끔 적응합니다. 데본기 중기는 대기 산소농도가 낮았던 시기입니다. 용존산소량이 낮은 번잡한 물속에서 이들은 자주 수면 위로 머리를 세워 공기를 크게 한 입 마십니다. 이때 보이는 물 바깥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물가 숲에 살고 있는 곤충을 처음 맛봅니다. 좀더 멀리 보면 무언가 많이 있어 보이는 푸른 숲이 널려 있습니다. 이들은 육상생활을 위한 형태적 생리적 장치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립니다.


사지류 육상진출은 진화역사에서 워낙 중요한 사건인 만큼 진화학자들은 그에 대한 인과성(causality)을 정확히 하려고 합니다. 수동적으로 밀렸을까? 아니면 능동적으로 올라 갔을까? 지금까지 육상진출은 네다리가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사실 지느러미에서 네다리가 나오게 된 것은 발생관련 유전자의 변이 때문입니다. 그러한 변이는 해변 갯벌, 늪지대, 숲에 근접한 강가 서식지에 살기에 유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네다리를 가지는 것과 땅으로 진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들이 땅으로 진출하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풍부한 먹거리 유혹 때문일 거라는 가설이 있지만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최근 노스웨스턴 대학 신경생물학자이면서 공학자인 맥카이버(MacIver) 박사 주도로 이루어진 연구 결과는 새로운 관점 즉, 다리 보다는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게 된 눈이 수생 사지류를 물에서 벗어나 뭍으로 이끌었음을 제시합니다(2). 맥카이버 박사는 화석학자 슈미츠(Schmitz) 박사와 함께 육상진출 전후의 사지류 59종(지느러미 사지류 18종, 다리로 전이과정에 있는 사지류 3종, 발가락까지 진화한 사지류 6종, 그리고 육상생활에 적응하는 또는 적응한 사지류 32종)의 두개골 화석에서 머리 크기 대비 눈 크기를 비교해 보고, 초보적인 다리에서 발가락을 가진 다리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눈은 3배 정도 커졌음을 알아냅니다. 눈의 크기와 생태환경을 고려한 시력을 분석한 수학모델에 따르면, 눈이 세배 커지면 물속에서는 6m 떨어진 것을 보던 시력이 7m로 늘어나는 정도로 미미하지만, 수면 밖 공기를 통해서는 200 m에서 600 m로 늘어나 물속에서 보다 70배나 시력이 증가합니다. 결국, 육상으로 진출한 사지류는 대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백만 배나 늘어남을 보여줍니다.


사실 화석학자들은 육상생활을 하는 사지류에서 눈의 크기가 증가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맥가이버 박사팀도 그러한 증가는 공기를 통해서 볼 때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지류가 육상생활에 정착한 후에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눈은 주로 수생생활을 하는 사지류에서 그것도 지느러미에서 다리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뇌가 쓰는 에너지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이 시력을 유지하는 데에 쓰이기에 전이과정에 있는 사지류가 에너지를 더 소모한 만큼의 이득을 얻으려면 물 밖을 봐야 합니다. 맥가이버 박사는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막대한 바깥 ‘정보’가 육지로 진출하려는 행동을 유발하고, 그 행동이 좀더 걷기에 합당한 발을 가진 동물의 점진적인 진화를 견인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시력이 좋아지면 그에 따르는 비용이 들지만 먹이사냥을 하거나 포식위협을 피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네발 달린 악어는 물속에서 눈만 내밀고 가만히 목표를 주시하다가 사냥합니다. 초기 사지류도 이러한 생활방식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그 중 일부가 아예 바깥으로 나갔고, 육상생활에 알맞은 해부학적인 혁신을 시도해 완전 걷는 용도의 다리를 가집니다.


눈의 크기 증가는 동물의 인식과 행동에 지대한 변화를 주었습니다. 물고기는 먹이를 사냥하거나 포식자로부터 도망갈 때 어떤 판단이나 결정없이 즉각적으로 행동합니다. 육지에 생활하는 동물은 넓은 시야를 가진 좋은 시력 덕분에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워 행동에 옮깁니다. 이 모두 육상진출 전이과정에 있었던 사지류 조상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정보의 증가는 진화를 촉진시킵니다. 지느러미에서 발로 전이는 불과 1200만년에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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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 B. Daeschler et al. A Devonian tetrapod-like fish and the evolution of the tetrapod body plan. Nature. 440: 757–763 (2006)

(2) M. A. MacIver et al. Massive increase in visual range preceded the origin of terrestrial vertebrates. Proc. Natl. Acad. Sci. USA 114: E2375–E2384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