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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14: 척추동물의 진화, 두번의 유전체 중복 사건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8-13


캄브리아기 초기 대부분의 동물들은 고착생활을 하며 부유물을 섭취하거나 바닥을 파고들어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가운데, 유유히 헤엄을 치며 다니는 동물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눈다운 눈, 근육다운 근육이 없었습니다. 입과 소화기관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들은 곧 뇌와 순환계를 갖추고 표적 사냥을 할 수 있는 척추동물로 진화합니다. 포식자들은 발톱과 이빨로 먹이를 찢고, 피식자들은 딱딱한 겉껍질과 가시를 가집니다. 군비경쟁을 통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진화적 힘은 복잡성을 만들어냅니다. 이들은 현재 6만여 종에 이릅니다. 비록 백만여 종에 달하는 곤충에 비해 종의 다양성(diversity)은 떨어지지만 종들 사이의 엄청난 상이성(disparity)은 어떤 동물문(phyrum)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의로움입니다. 크기에 있어서 멸치부터 160톤에 달하는 지구에서 가장 큰 긴수염고래, 1년만 사는 카멜레온에서 200년 이상을 사는 거북이, 동물은 종마다 모습, 생활사, 행동에서 극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척추동물이 무척추동물에서 진화할 수 있게 된 주요 사건을 다루겠습니다.


좌우대칭형 동물에서 척추가 있기 전, 몸 앞뒤를 관통하는 탄력적인 척삭(notochord)을 지닌 척삭동물(chordates)이 있었습니다. 척삭은 사람 배아 발생과정에서 잠시 나타나다가 척추 마디 사이 디스크로 편입됩니다. 척삭동물의 특징은 척삭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외에 척삭 위 등쪽으로 속이 빈 신경다발이 앞뒤로 뻗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신경다발은 우리의 뇌와 척수의 원형입니다. 그리고 입에서 장으로 연결되는 관 양 옆에 인두열(pharyngeal slits)이라고 부르는 틈이 십여 군데에 일렬로 있습니다. 입으로 들인 물이 나가면서 건더기 플랑크톤이 걸러지는 장치입니다. 나중 물고기에서는 아가미열(gill slits) 가스교환 장치로 됩니다. 또 다른 특징은 척삭에 지탱된 근육 꼬리가 발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척삭동물에는 창고기(lancelets)가 있습니다. 흔히 양쪽이 뾰족한 동물이라는 의미의 앰피옥서스(amphioxus)라고도 합니다. 유생시기에는 빛을 향해 헤엄쳐 올라간 후 자연히 가라앉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물속의 플랑크톤을 먹습니다. 다 자라면 6 cm에 이르고, 꼬리를 꿈틀대며 모래바닥을 파고 몸을 은신합니다. 창고기보다 한 단계 진화한 척삭동물은 피낭동물(tunicates)입니다. 멍게나 바다물총(sea squirts)이 여기에 속합니다. 성체는 말 그대로 가죽주머니 형태로 창고기와 무척 달라 보이지만, 유생시기에는 올챙이 모양으로 척삭동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집니다. 이들은 빛을 감지하는 세포로부터 신호를 받아 꼬리근육을 움직이면서 헤엄치다가 적당한 곳에 착지합니다. 이후 모습을 급격하게 바꾸어 고착생활을 하게 되면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꼬리, 척삭, 신경계는 없어지거나 퇴화됩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찍찍이 물총으로 들이킨 바닷물에서 플랑크톤을 걸러내 소화하고, 주머니를 조이는 근육으로 과량의 물을 짜내는 단조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척삭동물은 정주형 생활에 맞게 진화한 동물입니다. 움직일 필요가 거의 없으니 심혈관계의 핵심기관 심장이 없습니다. 인두(아가미)열은 부유물을 거르는 장치이지 산소를 얻기 위한 호흡기관이 아닙니다. 머리도 당연히 없습니다. 다만 신경관 앞쪽에 부풀어진 영역이 있어 빛을 감지하여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원시적인 뇌는 있습니다. 포식자의 등장으로 척삭동물은 더 이상 고착생활을 즐길 수가 없어 움직여야 했고, 그 상황에서 번식과정에 오류가 일어나 전체 유전체 한 벌을 더 가진 애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유전체 중복이 한 번 더 일어나 척추동물로 진화합니다. 일찍이 1970년 Susumu Ohno 박사는 동물의 진화과정에서 유전자 중복을 통한 진화적 도약의 중요성을 간파했습니다(1). Ohno 박사 가설은 창고기의 유전체를 파악하면 확실히 증명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척추동물의 공동조상(last common ancestor of all vertebrates)은 창고기와 비슷할 것이고, 그의 유전체를 읽음으로써 척추동물의 진화적 기원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마침내 2008년 미국, 영국, 일본, 스페인, 스위스 등 30여 기관의 공동연구로 창고기 유전체 정보가 해독됩니다(2, 3). 그리고 그들은 감탄합니다. 1970년 Ohno 박사의 말대로 유전자 중복 사건을 통해 우리가 여기까지 왔구나! 개념확인(proof of concept) 연구의 결정체입니다.


창고기는 19개 염색체, 5억2천 염기쌍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는 22000개입니다. 사람의 23개 염색체 30억 염기쌍 DNA와 비교해 보니, 창고기 유전체의 흔적이 사람 염색체 17 군데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원형이 많이 달라져 있지만, 그 17 개 창고기 염색체 단위 4벌이 우리 염색체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로써 과학자들은 5.4억년 전에 있었던 창고기와 사람의 공통조상은 17개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고, 17개의 조상 염색체가 통째로 중복이 두 번 일어나서 척추동물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척추동물은 5억년에 걸친 진화과정에서 중복되는 핵심 구조유전자(housekeeping genes) 대부분을 하나만 남기고 버립니다. 남은 중복 유전자는 수천여 개인데, 이들은 새로운 용도 혹은 새로운 기능을 서서히 찾아가면서 창고기를 우리 인간으로 바꾸는데 기여합니다. 이들은 어떤 유전자들일까요? 지난 번 생명의 역사 12번 글에서 소개한 유전자 발현조절 네트워크(GRN)을 구성하는 전사조절인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머리-꼬리 몸설계 GRN인 혹스(Hox) 유전자 세트가 창고기에는 1세트, 척추동물 물고기에는 4세트가 있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GRN 전사조절인자들 이외에 발생과정에서 세포와 세포 사이의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도 다수 포함됩니다. 또 유전자 발현 조절부위가 달라진 유전자도 있습니다. 한편, 심장이나 내분비계가 없는 창고기이지만 유전체에는 이들의 발달에 관련된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뇌발달 관련 유전자도 물론 있고요.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생명의 복잡화 과정이란 중복 변이과정에서 GRN 전사조절인자 구성품이 더 생겨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창고기 유전체 파악은 이제 시작입니다. 새로운 종(species), 과(classes), 목(orders)의 탄생과 관련된 이보-데보 관련 연구가 급물살을 탈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척추동물이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하면서 놀라운 상이성을 가지게 된 것은 새로운 유전자의 발명보다는 기존 유전자들을 섞어 새로운 조합을 구성하거나, 시간과 위치에 따라 쓰임새를 달리하거나, 혹은 직접적인 돌연변이 누적을 통하여 새로운 용도와 기능을 창출했기 때문입니다.


창고기 유전체와 사람 유전체를 비교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 또 있습니다. 단일염기 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이라 하여 사람의 유전체는 개인별로 1000 염기 중 1개 정도 다릅니다. 하지만 창고기는 개인별로 16개 마다 1개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사람보다 유전적 변이(genetic variation)가 심합니다. 창고기는 유전적 변이가 매우 심한 경우입니다. 개체별로 6% 정도 차이가 나니깐요. 창고기는 번식속도가 느리고 집단 구성원 수도 적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해지는 자연선택의 힘이 약합니다. 즉, 개체마다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기에 많은 유전적 변이를 보이는 것이죠. 반면, 사람의 유전체가 개인별로 차이가 많지 않은 이유는, 과거 어느 시점 우리의 조상은 거의 멸종에 이르는 단계에 있었고, 그 유전적 병목을 통과한 소수로부터 우리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상기한 사실로부터 생명의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진화 메커니즘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연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척추동물이 진화하여 우리가 여기에까지 온 것은 연이은 두 번의 우연으로 일어난 유전체 중복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화의 동력인 자연선택은 복잡성보다는 단순함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자연선택의 힘이 강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어두운 동굴에 사는 동물의 눈은 퇴화합니다. 바다물총도 성체 단계에서는 필요없는 뇌를 퇴화시켰습니다. 성게와 불가사리도 마찬가지, 그들의 조상은 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버렸습니다. 반면 자연선택의 힘이 약할 때, 생명의 복잡성은 증가됩니다. 특히 소수집단에서 유전자 부동이 작동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러한 복잡성 진화개념을 가지고, 전체 염색체 세트를 하나 더 가지게 된 창고기가 진화하는 과정을 추측해 보죠. 이들 돌연변이 창고기는 정상에 비해 유전체 복제 부담이 늘어났기에 생존에 불리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큰 집단에 소속해 있으면, 자연도태의 힘이 강하게 작용해서 곧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돌연변이 개체가 작은 집단의 구성원이며 또 번식속도도 느리면, 자연도태의 힘이 약하게 작동하기에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포식자가 나타납니다. 개체수가 적은 집단이기에 정상 개체가 거의 다 잡혀 먹히는 상황이 생깁니다(유전자 부동). 이때 요행히 살아남은 돌연변이 개체는 경쟁이 한결 느슨해진 상황에서 집단을 채워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분의 유전자를 버리거나 또 생존에 유리한 변이유전자를 만들어내면, 그 개체는 자연선택됩니다. 그 변이유전자가 발생과정에 있는 GNR의 신규 구성원이면 선택된 개체는 좀더 복잡해진 모습을 가질 것입니다. 생명은 적응방산의 기회를 맞아 복잡한 눈, 두뇌, 심혈관계 등을 갖추게 됩니다.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서 자연선택의 힘은 강해지고, 그 선택은 향상된 구조만을 대상으로 삼기에 복잡구조는 계속 유지됩니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진화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복잡한 동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강조하는 부분은 복잡성 증가의 1차 요인은 유전자부동입니다. 자연선택은 2차적으로 작동합니다. 우연한 사건과 그 이후로 우연한 유전자부동과 자연선택이 점철되면서 생명은 복잡성을 갖추어갑니다. 그러면 진화는 복잡함을 추구하느냐? 이에 대해 많은 진화이론 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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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hno S. Evolution by gene duplication. Springer-Verlag. ISBN 0-04-575015-7 (1970)

(2) Putnam, N. H. et al. The amphioxus genome and the evolution of the chordate karyotype. Nature 453: 1064–1071 (2008)

(3) http://www.berkeley.edu/news/media/releases/2008/06/18_lancelet.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