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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6: 진핵세포 같은 원핵세포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4-10


대부분의 과학자는 원핵세포 고균에 세균이 내부공생하면서 진핵세포가 되었다는 가설을 받아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세균이 고균에 자리잡기 시작했을까요? 이에 대해 지난 글에서 두 가설을 소개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복잡한 내부구조를 이미 갖고 있는 식세포 고균에 세균이 먹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진화없이 초기상태의 고균에 대사적 이득을 위해 바짝 붙어 살던 세균이 어쩌다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물리 화학적 원리를 벗어난, 비약을 가정하는, 이 두 가설을 검증하려고 합니다. 비록 현존하는 생명에서 진핵세포화(eukaryogenesis) 과정에 있는 세포를 찾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 있는 가상의 ‘진핵세포 같은 원핵세포’ 유전체를 상정하거나 찾아 분석할 수는 있습니다.


아케조아(archezoa)라는 마이토콘드리아가 없는 단세포 원생생물(protist) 그룹이 있습니다. 핵은 있기에 진핵생명입니다. 1983년 식세포 가설의 대표적인 주창자 토마스 캐빌리어-스미스(T. Cavalier-Smith) 박사는 바로 아케조아가 마이토콘드리아를 갖추기 전 상태의 원시식세포로 살아있는 진화의 흔적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그룹 모두는 한 때 마이토콘드라아를 가지고 있는 온전한 진핵세포였으나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기생생활을 하면서 마이토콘드리아를 버렸거나 축소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84년 UCLA의 제임스 레이크(J. Lake) 박사는 황에 의존하면서 90도가 넘는 온도에서 사는 세균(실제로 고균이지만, 레이크 박사는 그 당시 특별한 성질을 가진 세균이라 판단했음)이 가지고 있는 라이보솜(유전정보를 해독하여 단백질을 만드는 장치)의 모양이 여느 세균이나 고균의 것과는 다르며, 도리어 진핵세포 라이보솜과 닮았음을 전자현미경 관찰로 알아냅니다. 이는 예삿일이 아닙니다. 1977년 칼 보즈(Carl Woese) 박사는 우리의 진핵생명 중심적 편견을 깨는 가설 -- 생명을 두 개의 원핵생명 영역과 한 개의 진핵생명 영역으로 나누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며 포괄적이라는 주장 -- 을 발표했습니다. 보즈 박사는 라이보좀 성분인 rRNA 유전자 계통을 분석해서 내놓은 가설입니다. 생명나무 3영역 가설의 타당성이 여러모로 증명되고 있던 시절에 레이크 박사는 라이보솜 모양만으로 진핵생명에 가까운 이오사이트(eocyte)라 불리는 원핵생명이 있고, 그로부터 진핵세포가 진화했을 것이라고 이오사이트 가설을 제안합니다(1). 나중에 이오사이트는 고균의 한 그룹임이 알려지면서 몇몇 과학자들은 생명을 3영역으로 나누기 보다는 세균과 고균 2영역으로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3영역 가설의 위용에 눌려 있다가 30여년 지난 요즘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2000년 중반부터 진핵세포화 과정에 있는 고균의 존재에 대한 분자계통유전학적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이 고균들은 진핵세포에만 있는 것으로 여겼던 단백질 조상유전자를 가진, 여느 전통 고균(Euryarchaeota)과 다른 크렌고균(Crenarchaeota) 그룹으로 독립됩니다. 그러한 유전자는 세포골격 성분인 액틴(actin)과 내막계 재구성 단백질 성분을 암호화합니다. 크렌고균 이외 다른 고균 그룹에도 세포골격 미세소관 성분인 튜블린(tubulin) 및 여러 진핵세포 표지단백질 유전자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진핵세포와 가까운 고균들을 통틀어 커다란 슈퍼그룹 TACK로 묶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슈퍼그룹이 가지고 있는 유전체나 단백질체를 파악하면 진핵세포로 전환되는 과정을 지금보다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은 극한 조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배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진핵세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고균 단백질들을 ‘미생물 암흑물질(microbial dark matter)’이라고 부릅니다.


빅데이터 생물정보학 시대에 초고속 분석기술과 새로운 분석알고리즘으로 무장한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을 파헤치는 방법을 강구합니다. 메타제놈(metagenome) 분석방법이 그것입니다. 이는 특정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 전체의 유전체를 통째로 읽어내고 그 혼합 DNA 염기서열 정보로부터 생명을 디지털 상으로 복원하는 방법입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 티스 에테마(Thijs Ettema) 박사팀은 TACK 계열 고균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스웨덴 인접 북극 바다 3300 m 밑 로키캐슬(Loki’s Castle)이라 불리는 열수분출공에서 해양침전물을 채집합니다. 그 채집물에서 무작위로 수백 수천 종의 생명체 DNA 정보를 읽고, 메타제놈 분석 알고리즘을 통하여 신규 고균 3종을 디지털 상으로 찾아냅니다. 그 중 하나는 거의 완벽하게 유전체 92%를 복원했습니다. 에테마 그룹은 이들을 로키고균(Lokiarchaeota)이라 하였고, TACK 슈퍼그룹에 속한 고균보다 한층 더 진핵세포에 가까운 종임을 밝힙니다(2). 로키고균에는 세포골격과 내막계 재구성에 관계하는 유전자는 물론 다른 여러 진핵세포 표지유전자 RabGTPase, 유비퀴틴화 관련 유전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유전자가 열수분출공 퇴적물에 있던 진핵세포 사체에서 나온 것을 고균의 것이라고 잘못 판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이들 결과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습니다. 일년 반 후 올해 1월 nature에 발표된 후속 연구는 그러한 과학자들의 염려가 괜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즉, 진핵세포화 과정에 있는 고균이 로키캐슬 분출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태계에 다양하게 존재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에테마 박사의 스웨덴 팀을 위시로 미국, 덴마크, 뉴질랜드, 일본 등의 국제 공동 연구팀이 바다와 접하는 강 밑바닥, 엘로스톤 국립공원 포함 여러 지역 열수분출구에서 새로운 고균 유전체를 다수를 복원했습니다. 이들을 노르웨이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따서 로키(Loki-)고균, 토르(Thor-)고균, 오딘(Odin-)고균, 헤임달(Heimdall-)고균이라 불렀고, 이들 그룹 전부를 아스가르드(Asgard, 노르웨이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거처) 슈퍼그룹으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TACKà 오딘à 로키à 토르à 헤임달à 레카’ 순으로 진핵세포에 가까워진다고 하였습니다(3).


에테마 연구팀은 최소한의 식세포 활성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고균 집단에 산재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세트 모두를 가진 고균만이 식세포로 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과정을 원시식세포 가설에 맞추어 설명하면, (i) 원핵세포인 고균은 복제사이클이 빠르기 때문에 특정 유전자가 자연선택되어 집단에 고정될 확률이 높다. (ii) 그러한 고정이 반복되면 모든 유전자 세트를 가진 식세포 고균으로 진화한다. (iii) 종합유전자세트를 가진 고균은 진화의 시간개념에서 아주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가 세균을 흡수하여 진핵세포가 되었고, (iv) 나머지는 아스가르드 소속 고균으로 분화하면서 유전자 세트가 뿔뿔이 흩어졌다. 문제는 '어떤 자연선택이 있었느냐?'입니다.

한편 대사적 공생 즉 수소가설에 비춰보면 어떨까요? 수소가설의 주창자 빌 마틴 박사와 그의 절친 닉 레인 박사는 로키고균 유전자 중 대사에 관련된 유전자들을 분석하여 그들은 혐기성이며 수소의존성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또 형광염색 증거에 의하면 로키고균의 크기는 늘어나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막계나 세포골격을 갖출 필요가 없었기에, 식세포로 활성을 보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고균이 보유한 복잡성 관련 유전자는 20억년전에는 다른 기능을 하다가 세균이 편입되어 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되는 상황에서 내막계나 세포골격을 구성하는 데에 채용되었다고 주장하며, 에테마 연구팀의 결과는 원시식세포 가설 보다는 자신의 수소가설에 더 잘 맞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새로이 등장한 아스가르드 계열 고균이 진짜로 진핵세포화 과정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가설이 더 설득력을 가질지는 그들의 실제 모습을 보지 않고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연구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진핵생명과 비슷한 원핵생명을 찾으려는 과학자들의 부단한 노력은 진핵세포 진화 미스터리에 좀더 접근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한 노력은 보수적인 과학계가 생명을 고균과 세균 2영역으로 나누는 가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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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ake, JA, Henderson E, Oakes M, Clark MW (1984). Eocytes: A new ribosome structure indicates a kingdom with a close relationship to eukaryotes. PNAS 81: 3786–3790.

(2) Spang, A. et al (2015) Complex archaea that bridge the gap between prokaryotes and eukaryotes. Nature 521: 173-179.

(3) Zaremba-Niedzwiedzka, K. et al (2017) Asgard archaea illuminate the origin of eukaryotic cellular complexity. Nature 541, 353-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