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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5: 진핵세포의 진화, 우연 중의 우연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4-05


지구의 산소화는 유기물에서 에너지 ATP를 추출하는 최고의 장치를 진화시켜 호기성 세균의 번성을 이끌었습니다. 그 장치는 세포막에 있으면서 세균 정도의 작은 부피만큼만 감당할 수 있을 뿐입니다. 21억년전 산소 농도가 현수준의 40%에 이르렀던 특정 지역에서 진핵세포가 진화하였다고 봅니다. 진화라기 보다는 차라리 출현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단순 작은 세포에서 복잡한 큰 세포로 변한 극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진핵세포는 원핵세포에 비해 길이가 평균 25배, 표면적은 625배, 부피는 대략 15,000배나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공간을 채우는 내부 구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합니다. 우선 유전물질 DNA를 감싸고 있는 핵이 있습니다. 직경은 원핵세포 자체보다 10배 정도나 더 커 유전자의 수에 제한이 없이 유전체를 키울 수 있습니다. 이중으로 된 핵막의 바깥 막이 작은 낭(vesicle)으로 솟아나오면서 얇고 넓게 불연속적으로 세포에 두루 퍼져 내막계(endomembrane system)를 이룹니다. 결국 핵막은 세포막과 소낭을 통해 연결되어 세포 내부 물질을 외부로 배출할 수 있고 또 세포 바깥의 신호를 핵까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내막계는 진핵세포의 커진 부피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표면적을 제공합니다. 핵막과 세포막 사이 세포질에는 마이토콘드리아를 포함한 여러 소기관들이 있습니다. 또한 진핵세포 내부에는 세포모양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세포골격(cytoskeleton)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들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엮이고 풀리는 구조물로서 세포의 모양변화와 움직임, 그리고 내용물 순환에 관여합니다. 다양한 모터단백질들도 있어 세포골격을 따라 소기관이나 소낭을 곳곳에 운반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물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는 원핵세포에 비해 5000배나 더 많이 듭니다. ATP 생산 장치가 진핵세포 세포막에 있게 되면 625배 정도 ATP 생산을 늘릴 수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15,000배나 커진 영역에 에너지를 공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구나 세포막에는 외부와 소통에 필요한 단백질로 꽉 차있어 ATP 생산장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다행히 진핵세포는 내부에 천여 개의 마이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어 넓은 공간 곳곳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극적인 진화가 이루어졌을까요? 자연선택 같은 표준 진화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박사는 복잡세포는 단순세포들이 서로 공생(symbiosis)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기존 주장을 구체화하여 진핵세포는 핵, 마이토콘드리아, 퍼옥시솜, 편모 등을 세균으로부터 단계적으로 흡수하여 만들어진 합작품이라는 연속 세포내부 공생이론(serial endosymbiosis theory)을 내놓습니다. 논문은 출판이 번번이 거절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론생물학회지(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1967)에 실립니다. 1970년대 후반 마이토콘드리아나 엽록체 유전자가 세균과 유사함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핵심 아이디어, 본래 독립적으로 살던 세균이 숙주세포로 들어온 후 마이토콘드리아나 엽록체로 진화했다는 내부공생설이 받아들여집니다. 마굴리스 박사는 ‘진화는 점진적인 변화와 경쟁 보다는 도약과 협력의 산물’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진화학계에 던져주었습니다. 점진적 진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리챠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박사는 ‘내부공생설은 20세기 진화학계에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라고 실토합니다.


과학자들은 앞서 언급한 진핵세포 특이 구조물을 가지고 있는 가상의 조상세포 레카(LECA, last eukaryotic common ancestor)를 상정하고, 현존하는 단세포 원생동물, 곰팡이, 식물, 동물 모두는 레카로부터 진화했다고 가정합니다. 문제는 세포끼리의 협력을 가정한다 하더라도 어떤 단계를 거치지 않고 유지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복잡한 레카로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 가는 중간과정의 세포는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과정을 밟아 레카가 되었을까요? 현존하는 원핵세포와 진핵세포의 유전체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진핵세포에만 있는 표지단백질(eukaryotic signature proteins)를 정하고, 원핵세포 유전자 산물과 비교해봄으로써 그들의 기원을 추적하였습니다. 그들 중 2/3는 20억년의 세월에서 너무나 달라지는 혁신과정이 있었기에 원래 모습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1/3의 경우는 원핵세포 시절의 아미노산 서열이 보존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단백질의 3차 모양이 보존되어 있어 유전자 진화계보를 밝힐 수 있었습니다. 족보가 밝혀진 진핵세포 표지단백질 유전자 중에서 3/4은 세균에서 1/4은 고균에서 유래했고, 그들의 기능을 분석해보니 고균이 숙주 역할을 하였고 그 안으로 세균이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서 마이토콘드리아로 되었음은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보다 정교하고 고도화된 분자계통분석은 이러한 융합이 진화적 견지에서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일어난 단 한번의 사건이었음을 말해줍니다(1).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융합이 일어났는가? 숙주세포는 어떤 상태였기에 세균을 안으로 들일 수 있었는가? 그 결과로 생긴 융합세포는 각각의 세포보다 생존이나 자손 수를 불리는 데에 어떤 유리한 면이 있었기에 선택될 수 있었는가?


우선 숙주세포 상태를 추측하는 원시식세포(primitive phagocytes) 가설이 있습니다. (i) 이 세포는 세포벽이 없는 좀더 커진 원핵세포로, (ii) 부피 대비 상대적으로 줄어든 표면적을 늘리려고 세포막이 안으로 함입되기 시작하여 내막계가 만들어진다. (iii) 결국 핵막까지 만들어져 유전체를 감싸 핵이 만들어진다. (iv) 내막계가 만들어지려면 세포골격이 있어야 하며, 세포골격이 들어서 있다면 식세포 활성을 가진다. (iv) 따라서 이 원시식세포는 마이토콘드리아의 조상이 될 호기성 세균을 삼킨 후 공존을 모색하며 레카로 진화한다. 최근 세포벽이 없는, 세포골격 유사 유전자를 지닌 고균 그룹이 존재함이 밝혀지면서 가설이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렇지만 원시식세포가 복잡성을 갖추기까지 어떻게 에너지가 조달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또 식세포 작용은 다른 어떤 생물학적 과정보다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세균을 포획할 때 세포막 주변의 세포골격이 재구성되면서 기계적인 힘이 만들어지고, 그 힘으로 세균을 통째로 안으로 끌어 들입니다. 원시식세포 내에 마이토콘드리아가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에너지 조달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마이토콘드리아가 먼저 들어섰고 나중에 핵을 포함한 구조물이 만들어졌다는 가설이 등장합니다. 대사적 공생(metabolic symbiosis) 가설 또는 수소가설로 불리는데, (i) 진핵세포 진화는 수소에서 에너지를 얻어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메탄생성 고균이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만드는 세균 옆에 붙어 같이 살면서 시작된다. (ii) 이들은 혐기성 균이며,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 수소와 이산화탄소 기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 근접 공생은 생존에 유리하다. (iii) 숙주인 고균은 수소를 좀더 원활히 공급받기 위해 세포막을 늘려가며 더 많은 세균과 접촉하다가 아예 흡수한다. (iv) 한편 수소생성 세균은 선택적 무산소세균(facultative anaerobe)이다. 따라서 산소가 있는 조건에서는 산소성 호흡도 할 수 있어 ATP를 훨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v) 산소가 있는 세계로 들어서는 모험을 감행하면, 융합세포는 크기와 복잡성을 제약하는 에너지 장벽을 넘을 수 있어 온갖 구조물을 가진 레카로 진화한다. 빌 마틴(W. Martin) 박사와 미클로스 뮐러(M. Muller) 박사가 수소 의존적인 메탄생성 고균이 수소를 만드는 세포 내 소기관 하이드로게노솜(hydrogenosome)에 바짝 붙어 공생하는 생태계을 발견하고 1998년 nature에 발표한 가설입니다(2). 그 이후 하이드로게노솜은 고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그 유전자는 마이토콘드리아와 같은 기원을 두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수소가설은 힘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수소생성 세균이 식세포 활성이 없는 고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입니다. 특별한 환경에서 세균 안에 세균은 아주 드물게 발견됩니다. 따라서 아주 불가능한 사건은 아닙니다.


진핵세포 진화는 세균이 고균 안으로 들어가는 우연한 사건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한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지구는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생명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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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iergart T, Landan G, Schenk M, Dagan T, Martin WF (2012) An evolutionary network of genes present in the eukaryote common ancestor polls genomes on eukaryotic and mitochondrial origin. Genome Biol Evol. 4: 466-485.

(2) Martin W and Müller M (1998) The hydrogen hypothesis for the first eukaryote. Nature 392: 3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