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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4: 지구의 산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1-06 


지구의 산화(the great oxidation event, GOE)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남세균의 산소생산능력이 바다의 산소완충능력을 넘어서면서부터일 터인데, 산소가 대기로 방출된 흔적을 추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원시 바다에 녹아있던 철이 산소와 반응하여 층층이 가라앉아 형성된 철광층이 오늘날 종종 발견됩니다. 25-22억년전 만들어진 것으로 그 이후의 암석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지표의 철이 산화된 흔적이 발견됩니다. 호주 서부지역이나 미국 그랜드캐년 등에서 볼 수 있는 광대한 붉은 암석지대가 그것입니다. 따라서 지구과학자들은 과거의 암석에서 철을 포함 망간, 니켈, 구리, 우라늄 등의 산화 상태를 비교 분석하여 지구의 산화시점을 추적합니다. 특히, UCSD의 Farquhar 박사그룹은 지표 산화 이전에 대기 산화가 있었음을 착안하여, 대기 황화수소 산화에 따른 황 동위원소 성분비의 변화를 여러 암석 샘플에서 분석하였고, 결과로 지구의 산화가 시작된 시기는 24-23억년 전일 것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1). 광합성 남세균이 출현하여 산소를 만들어 낸지 무려 10 억년이 지난 후입니다. 그 사이 어떠한 일이 있었을까요?


산소는 전자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또 전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 전자배치에 요동이 일어나 불안정한 활성산소 종들이 만들어지며, 이들이 생화학 반응에 끼어들어 해를 끼칩니다. 이러한 산소의 특성 때문에 남세균은 그간 단조롭지만 조화롭게 지내고 있던 혐기성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로 인해 지구역사에서 첫 번째 생명 대멸종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습니다. 혐기성 생명들은 유기물에서 나온 전자를 철3가 이온(Fe+++) 또는 질산염(nitrate, NO3-)이나 황산염(sulfate, SO4--) 등으로 전달하여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러한 무산소호흡의 다변화를 위한 질산염이나 황산염은 산소가 어느 정도 공급되는 환경에서 만들어지기에, 남세균은 혐기성 세균이나 고균의 다양성을 증가시켰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남세균은 신천지를 찾아나선 개척자였기에 혐기성 생명과 만날 기회도 없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영역에 기존 생명들의 진입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남세균이 빛 가까이로 서식처를 확장할 때 자외선에 의한 직접적인 유전체 손상을 방어하고 복구하는 장치를 개선해야 했으며, 또 자외선의 간접효과 즉, 그의 강력한 에너지 때문에 물이 분해되어 나오는 산소나 활성산소에 대비하는 항산화 기작 역시 갖추어야 했습니다. 사실 항산화 기작은 산소생산 남세균이 등장하기 이전에 자외선에 의한 독성 산소를 방어하기 위하여 진화였습니다. 남세균이 뿜어내는 산소가 대양의 완충능력을 넘어서면서 항산화 기작만으로는 넘쳐나는 자유 산소를 처리하기는 역부족,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했습니다. 생명은 전자를 산소로 보내어 에너지를 얻는 호기성 전자전달과정을 진화시킵니다. 산소호흡은 무산소호흡보다 같은 유기물로부터 무려 16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추출해내며, 여느 진화적 혁신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존 있던 전자전달 장치에 오묘하게 고안된 철-구리 활성부위를 가진 산화효소(oxidase)를 개발하여 덧붙입니다. 이 효소는 거대한 복합장치로 수소이온펌프 기능도 가지고 있어 ATP 생산 효율을 높입니다.


산소호흡은 산소성 광합성 이후에 진화하였다고 생각하지만, 자외선 조사에 의해 생성된 산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광합성보다 먼저 나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광합성 세균이 만들어내는 산소는 호기성 균의 선택적인 증식을 유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산소성 혐기성 광합성 세균들도 광합성 능력을 버리고 호기성 세균으로 탈바꿈을 시도하여 산소가 있는 넓은 세상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남세균이 불모지를 개척하여 거기에 유기물과 산소를 만들어 놓으면 이어서 호기성 균들이 들어와 그 유기물을 산소로 태우면서 자랐습니다. 산소에 관한 한 만들어지면 쓰이는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균형은 지구 곳곳 얕은 바다에 생명이 두루 퍼질 때까지 수 억년간 지속됩니다.


지구의 산화는 광합성에 의한 산소생성이 산소호흡에 의한 소비보다 높아지면서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지질학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이 혼재되어 있지만, 최근 영국의 Bristol대학의 과학자들이 현존하는 남세균 107종의 유전체 계통을 분석하여 지구의 산화가 일어나기 2-3억년 전에 남세균이 다세포를 형성하는 세균으로 진화하였음을 밝혔습니다. 그들은 다세포 형성능력은 남세균에게 다른 호기성 균에 비해 우월한 생태적 지위를 누리게 하여 산소의 공급이 소비를 추월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2). 단세포가 모여 다세포를 이루면 각 세포는 필요에 따라 노동을 분담할 수 있습니다. 광합성 남세균은 탄소를 고정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유기물을 만들어 쓸 수 있어 어떤 불모지라도 진출할 수 있지만, 항상 질소원 확보가 걸림돌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세균은 대기 중 질소가스를 고정하여 필요한 질소를 자체 조달하도록 진화하였지만, 다른 걸림돌이 생깁니다. 질소고정은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동일 세포에서 호기성 산소생성 광합성과 함께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를 남세균은 다세포 연합체 형성으로 해결합니다. 즉, 남세균 연합체 중 일정 빈도의 남세균은 광합성을 포기하고, 전체 구성원에게 질소를 공급하는 질소고정 전문세포로 분화합니다. 다세포 연합체를 이루면 이동이 수월해 서식지 확장에도 커다란 이점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햇빛을 쫓아가거나 피할 수 있고, 미끄러운 암석에 부착하기도 쉽고, 강한 물살에 씻겨가지도 않는 등 생태 범위를 넓히는데 아주 유리합니다. 24억년 GOE 이전 남세균은 해변가 바위로 그 영역을 넓혀 나중에는 민물에서도 살게 됩니다. 지구는 온통 남세균 매트로 덮이고, 산소는 대기로 뿜어 나와 현재 지구 산소 농도의 10-15%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그 보다 더 많이 현수준의 40% 정도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산소가 대기에 쌓이면서 지구환경에 극적인 변화가 있게 됩니다. 우선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산화되어 없어집니다. 보온담요가 거두어지는 꼴이니 지구온도는 급격히 떨어져 지구역사 첫 번째 휴론 대빙하기(Huronian glaciation)에 들어섭니다. 대략 23억년전에 시작되어 1-2억년간 지속된 지구역사상 가장 긴 빙하기로 지구 전체가 눈에 쌓여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가 됩니다. 생명은 적도 부근에서 어석 어석한 얼음물에서 근근이 살고 있었습니다. 광합성 남세균의 활동이 줄어드니 산소의 대기 농도는 현수준의 40%를 정점으로 더 이상 증가하지 않습니다. 빙하기가 풀리는 과정에서, 어떻게 풀렸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활발한 지각 움직임에 따른 화산활동 증가가 일정 역할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이 노출되는 지표는 풍화작용을 거칩니다. 이때 철이온이 대기 중 산소를 대거 흡수하여 산소농도는 지역에 따라 GOE 이전 수준까지 떨어집니다.


산소농도가 높았던 GOE 당시에 생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화석 증거에 의하면 21억년전에 핵을 가진 진핵세포가 진화하였다고 합니다. 진핵세포의 출현은 생명진화역사에서 생명의 출현만큼이나 아주 큰 미스터리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GOE 이후 18억년전부터 8억년전까지 산소농도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학자들은 이 기간을 지루한 10억년(boring billion)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GOE 당시에 진화했던 진핵세포는 낮은 산소 조건에서 더 이상의 진화는 없었고 그냥 단세포 상태를 유지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지루한 10억년은 그냥 지루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생명의 새로운 번식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즉, 단세포 진핵생명에서 성(sex)의 진화가 있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지루한 10억년에서 벗어나게 된 일련의 사건은 또 다른 빙하기의 시작과 지각의 요동, 그리고 광합성 진핵생명 조류의 진화와 번성에 따른 산소의 급격한 증가입니다. 산소 농도는 현 수준으로 증가하여 지구는 두 번째 산소화 과정을 밟습니다. 8억년전에서 5억 4천만년전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광합성 생명이 만들어낸 산소가 지구를 산화시켜 다양한 광물자원 형성은 물론 지구의 활동과 환경에 변화를 줍니다. 그러한 지구의 변화는 다시 생명에 영향을 주어 진핵세포와 같은 획기적인 진화를 이끕니다. 지구 산소화 사건에서 비롯된 생명과 환경과의 거대한 공진화의 결과는 현재 지구의 모습과 현재 생물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광합성 세균은 창조적인 독재자이며 지구 역사상 제일가는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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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 Farquhar et al. (2000) Atmospheric Influence of Earth's Earliest Sulfur Cycle. Science 289: 756-758.

(2) BE Schirrmeister et al. (2013) Evolution of multicellularity coincided with increased diversification of cyanobacteria and the Great Oxidation Event.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0: 1791-1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