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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2: 진보적 세균과 보수적 고균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11-28


루카(LUCA)가 알칼리성 열수분출공을 떠날 무렵에는 원핵생물(prokaryotes)의 두 부류인 세균(bacteria)와 고균(archaea)으로 진화한 상태였습니다. (2013년 한국미생물학회는 ‘고세균’으로 부르던 archaea를 ‘고균’이라 부르기로 하였음.) 사실 세균과 고균은 세포막과 세포벽 구성 성분에서 그리고 단백질 합성과정과 유전체 복제과정의 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둘 다 지구 어느 곳이든 자리잡고 잘 살고 있습니다. 특히 고균은 수온이 100°C를 넘는 간헐천(초고온성, hyperthermophilic), 바닷물 보다 4-6배의 염농도를 가진 호수(내염성, halophilic), 황산이 녹아 있는 동굴 물구덩이(내산성, acidophilic) 등 극한 환경에서 세균보다 더 많이 발견됩니다. 우리 소화기관을 포함한 일반 환경에 살고 있는 고균도 있습니다. 세균과 고균은 온화한 알칼리성 열수분출공을 떠나 에너지 및 물질 불균형이 존재하는 역동적인 산성 열수분출공인 블랙스모커 근처에 처음 서식지를 잡고 초고온성 생활 양식에 적응합니다. 루카의 딸로 추정되는 메탄생성균(methanogen)에서 초고온성, 내산성, 내염성 고균들이 태어났으며, 그 자손들은 황을 산화시킬 수 있는 초고온성 고균을 비롯 다양한 종류로 번성하여 지금에 이릅니다. 세균도 마찬가지죠.


고균은 세균과 더불어 지구의 물질순환을 담당하여 현재의 지구를 가능하게 한 주역입니다. 생명진화 초기단계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고균은 지구의 탄소순환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바다 밑 지하 깊은 곳에 매장된 메탄은 대부분 고균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대기로 방출되는 메탄의 5분의 1은 소나 양 같은 되새김질하는 가축의 장내에 살고 있는 혐기성 고균이 만듭니다. 온실가스라고 하면 먼저 이산화탄소를 떠올리지만 단위 분자당 온실효과는 메탄이 28배나 더 큽니다.


질소순환에 있어서도 고균의 역할은 지대합니다. 질소가스(N2)는 대기의 5분의 4를 차지하지만 암모늄(NH4+), 아질산염(nitrite, NO2-), 질산염(nitrate, NO3-)으로 바뀌어야만 질소원으로 쓰임새가 있게 됩니다. 질소고정(nitrogen fixation, N2 à NH3)과 질산화작용(nitrification, NH3 à NO2- à NO3-)을 거쳐야 하는데, 이 두 과정 모두 세균 또는 고균이 담당합니다. 생명진화 초기단계에서는 천둥번개나 금속에 의한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진 질산염이나 암모늄염을 쓸 수 있었지만, 그 양이 고갈됨에 따라 생명 스스로가 대기 질소를 고정해서 써야 했습니다. 따라서 초기 생명에는 질소고정에 필요한 유전자는 없었고 나중에 장착된 것입니다. 질소고정 혐기성 세균의 진화의 가지가 고균에 비해 훨씬 무성한 것으로 보아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을 갖추는데 있어서는 고균보다는 세균이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암모니아를 산화시켜 질산을 만드는 질산화과정에 있어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사실 이 과정이 호기성 세균에 의한 것임을 100년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2006년 호기성 암모니아 산화 고균(ammonia oxidizing archaea, AOA)이 있음이 밝혀졌고 그의 암모니아 산화능력은 세균의 능력을 한참 압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1). 특히 토양에서는 AOA는 수적인 면에서도 우세종이며, 양적인 면에서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미생물로 칩니다. 그리고 AOA는 산소가 있는 조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독립영양생명임이 최근 밝혀졌습니다(2). 이러한 AOA의 생리적 특성은 영양분이 제한된 환경 조건에서도 잘 자랄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종속영양생명에게 필요한 유기물을 제공할 수 있어 복잡한 생태계의 조성과 생명의 진화에 일정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계통분류에 의하면 고균의 조상형은 초고온성이었으며 진화하면서 세균으로부터 유전자를 받아들여 중온성(mesophilic)생활 패턴을 가지게 되었음을 제시합니다. 이에는 여러 부분에서 즉, 유전체 구조나 복제, 단백질 접힘 및 세포막 유동성 등에서의 적응이 필요합니다. 그 중 낮은 온도에서는 산소가 더 많이 보다 효율적으로 녹아 있을 수 있기에 호기성 고균으로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봅니다. AOA도 중온성입니다. 아무튼 세균과 고균은 서로의 유전체를 교환하면서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그들이 가진 유전적, 형태적, 생리적 특성에 따라 각자의 길을 밟았을 것입니다. 중온성 고균 중 아주 보수적인 어떤 균은 처음 자리잡은 열수분출공 블랙스모커 근처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 진핵세포로의 도약의 기회를 가집니다. 2015년 스웨덴 Uppsala 대학 연구진은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의 전환 과정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고균을 보고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한편, 열수분출공에서 어떤 진보적인 세균은 모험의 길을 택합니다. 빛에너지를 이용하는 세균으로의 진화입니다. 현존하는 광합성(photosynthetic) 세균에는 자색황세균(purple sulfur bacteria, PSB), 자색비황세균(purple non-sulfur bacteria, PNSB), 녹색황세균(green sulfur bacteria, GSB) 등이 있으며, 혐기성 세균으로 산소를 생성하지 않는 무산소성(anoxygenic) 광합성을 합니다. 이들 중 GSB에 속하는 광합성 세균이 2005년 태평양 멕시코만 근처 해저 2.7 km햇빛이 미치지 않는 열수분출공에서 발견되었습니다(3). 빛 대신에 분출구에서 나오는 600-1000 nm 파장을 가진 열복사에너지를 사용하여 황화수소(H2S)에서 탄소고정 환원력을 추려내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PSB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PNSB는 황화수소 대신에 수소가스를 이용합니다. 지난 25번 글에서 37억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PSB일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를 보아 광합성 세균은 그들의 처음 서식지 블랙스모커에서 생각보다도 일찍 진화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그 이후입니다. 광합성 능력을 보유한 세균들은 심각한 자외선 피폭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좀더 강한 빛을 쫓아 얕은 곳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며, 햇빛이 드리우는 곳에서 물분자(H2O)를 빛에너지로 쪼개어 양성자와 전자를 꺼내 쓰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장치를 갖추게 됩니다. 이로써 산소성(oxygenic) 광합성 세균으로의 도약이 일어나고,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산소가 생명역사의 대변혁을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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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eininger S. et al. (2006) Archaea predominate among ammonia-oxidizing prokaryotes in soils. Nature 442: 806–809

(2) Könneke M. et al. (2014) Ammonia-oxidizing archaea use the most energy-efficient aerobic pathway for CO2 fixation. Proc. Natl. Acad. Sci. USA. 111: 8239–8244

(3) Beatty JT. et al. (2005) An obligately photosynthetic bacterial anaerobe from a deep-sea hydrothermal vent. Proc. Natl. Acad. Sci. USA. 102: 9306–9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