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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1: 루카(LUCA)의 여정에 앞서서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11-13 


40-37억년 전 루카(LUCA)는 참으로 긴 시간여행을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러 그의 후예들은 지구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떤 생명은 모습과 크기를 바꾸지 않은 채 고루하지만 묵묵히 지구의 물질 순환을 담당하고 있고, 어떤 생명은 현란하게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적재적소 각자의 기량을 뽐냅니다. 그 중 한 무리, 호모 사피엔스는 정보처리기관의 비약적인 도약으로 주변에 보이는 삼라만상이 도대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살아있는 유기체에 대해서 더욱 그러하여, 생명은 누군가가 불어 넣어준 힘이며, 그 힘이 스며있는 몸체는 그에 알맞게 고안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에 따라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고안한 그 누구는 누가 만들었으며, 그 누구의 누구는 누가 만들었느냐?’와 같이 의문은 계속됩니다.


다윈은 일상의 스쳐가는 질문 ‘생명은 그리 다양한데 각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듭니다. 광범위한 독서와 관찰을 통하여 ‘생명 스스로가 세대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종으로 되면 가능하다’라는 의외로 간단한 답을 내놓습니다. 어떻게 새로운 종으로 되느냐? 여기서 다윈의 통찰력이 엿보입니다. 『같은 종을 들여다 보면 각 개체는 조금씩 다 다르다. 이러한 다른 특성들 중 어떤 것들은 유전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그 중 어떤 특성은 개체가 주변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게 하여 즉, 살아가는 데 또는 자식을 낳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시간이 지나면 그 종 구성원 모두가 그 특성을 갖게 된다. 새로운 변이는 집단에 계속 유입되고, 자연이 이러한 변이를 솎아내는 과정, 즉 자연선택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반복되면 종이 다른 종으로 변할 수 있다.』 1859년 다윈의 이론이 집대성된 책이 발간되었고, 그의 생각은 ‘우리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고 진화된 것으로 유인원이 우리의 조상이다’라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가 꺼림칙한 개념으로 다가갔습니다. 사실 그의 이론을 곱씹어 보면 우리의 사고의 틀을 바꾸게 하는 위험스러우면서 혁명적인 발상입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복잡한 유기체는 오롯이 물리화학적 과정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루카의 시간여행 즉, 생명의 역사를 이러한 다윈주의적 사고에 근거를 두고 살펴 볼 것입니다. 생명의 진화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룬 사건들에 대해 진화학자들은 잘 정리하였습니다. 특히 John Marynard Smith와 Eors Szathmary는1994년 진화의 주요전환가설(major transition theory)을 발표하였고(1), 최근 Eors Szathmary는 그 이론을 재정비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일반생물학 교과서에서도 취급하고 있으며, 척추동물에서 우리에 이르기까지의 형태, 생리, 행동 부분에서의 전이과정을 이해하려는 학문이 동물학입니다. 이러한 광범위한 부분을 어떻게 소개할지 좀 난감하지만, 아래와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너무 전문적인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면서 생물학을 전공한 학부학생이 알아두어야 할 핵심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첫째, 무작위성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진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우연입니다. 한 집단의 개체에서 나타나는 돌연변이는 유전자 복제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실수 때문이며, 진화의 동력인 자연선택과정에서 자연환경의 변화 역시 무작위적이니 모든 것이 우연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작위적인, 즉 적응적 선택이 가능한 고정 환경조건에서도 얼마든지 무작위성이 작동될 수 있음을 다루겠습니다.


둘째, 환경(생물적 또는 무생물적)과의 상호작용 부분입니다. 다윈주위적 적응진화론자들은 진화는 점진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환경이 진화의 속도에 영향을 주고 생명 역시 환경에 영향을 주는 양성되먹임(positive feedback) 작용이 있으며, 이에 따라 생명은 스스로의 진화 동력을 얻고, 주요 전이과정에서 일정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Bernard Crespi 박사의 논문(2)을 참고하여 소개하겠습니다.

셋째, 생명의 주요 전이과정에서 유전체의 혁신에 대해 조명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방사형 동물에서 좌우대칭형 동물로 진행되는 과정에 있어서 몸설계를 관장하는10개 미만으로 구성된 혹스(Hox) 유전자 도구모음(genetic toolkit) 세트가 만들어지는 혁신이 있었습니다. 동물이 복잡해 짐에 따라 그 세트는 2개로 늘어났고, 최종 4개로 늘어 났습니다. 이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기보다는 유전체의 중복돌연변이가 생명의 진화를 유도한 측면이 강합니다. 다윈주의적 진화이론은 돌연변이는 진화의 원재료일 뿐 진화의 동력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주요 전이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진화의 동력이고 자연선택은 이차적으로 따라온 것이라는 Nei 박사의 주장(3)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넷째, 복잡성의 증가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을 유전적으로 가볍게 하는 것이 자식을 퍼뜨리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생존에 커다란 변수가 없을 경우 자연선택은 단순화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의심할 것도 없이 많은 경우, 진화는 생명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복잡성은 진화의 경향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론적인 근거나 실험적인 증거는 빈약하지만 진화하는 계열은 점점 복잡해집니다. 동물의 경우 주요 전이과정에서 유전적 혁신을 통해 모양과 행동에서 복잡해졌습니다. 일단 크기의 제약을 벗어난 생명은 유전체의 복잡성이 증가되면서 진화한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다섯째, 진화에 있어서 필연적인 부분에 관한 것입니다. 생명은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추구하고 그에 따른 에너지 수급에 있어서의 물리적 제약을 거스를 수 없어, 몸설계에 관한 한, 프랙탈 또는 좌우대칭형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형태적 발달은 유전적 초기설정에 크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세포 초기 생명에 유전적으로 장착된 배아발달 경로는 나중에 등장하는 생명에서도 거의 변하지 않고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 생명은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지구 환경 제약에서도 크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명은 예측할 수 있는 모습과 그에 따는 비슷한 기능을 가지게끔 진화할 수 있음을 다루겠습니다.


일찍이 Dobzansky는 생물학에서 진화적 사고를 제쳐두면 그 어떤 것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윈의 진화이론은 우리에게 아주 먼 과거를 들여다 보게 하여 현재의 우리를 좀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수단인 DNA의 정체와 속성을 알고 있는 유일한 생명입니다. 가까운 과거 생명은 화석에서 추출한 DNA를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며, 아주 먼 과거의 생명은 현존하는 루카의 후예에 기록된 DNA 문서를 비교 해독함으로써 어느 정도 실체화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알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향력이 있는 우주 시민으로 등장하는 계기를 준 것은 바로 다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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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 Szathmary and J. Maynard Smith. (1994) The major evolutionary transitions. Nature 374: 227 – 232

(2) B. J. Crespi. (2004) Vicious circles: positive feedback in major evolutionary and ecological transitions. Trends in Ecology and Evolution 19: 627–633

(3) M. Nei. (2007) The new mutation theory of phenotypic evolution (2007) PNAS 104: 12235–1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