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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루카(LUCA), 생명의 여정을 시작하다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10-14


루카(LUCA)는 알칼리성 열수공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생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화학 중심으로 진행되어 어떻게 정보물질과 반응촉매 물질이 비누방울 같은 막에 싸여 생명의 원형이 되었는지를 추리했고 또 괄목할만한 진전도 있었지만, 생명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는 한발 비켜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럴듯하고도 점검 가능한 가설을 제공한 사람은 젯트추진연구소의 Michael Russel 박사입니다. 지질학자(geologist)인 그는 ‘생명은 온갖 유기물질이 담겨있는 국그릇 같은 무질서 상태에서 출현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화학에너지와 열에너지가 공급되는, 지구의 물리화학 작용이 만들어낸 특정 질서를 갖춘 구조물에서 출현하였다’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1983년에 발표합니다(1). 그는 바다 밑 지반이 갈라지는 해령 부근, 미세 무기질 박막을 사이로 형성된 열에너지와 화학에너지(수소이온 농도차이)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곳에서 생명이 움텄을 것이라고 예측하였는데 그러한 알칼리성 열수공에서 형성된 생태계 ‘잃어버린 도시’가 있음이 2000년에 드러났으니 참으로 선경지명이 있는 과학자입니다.


모든 세포는 막 사이에 형성된 수소이온 농도차이를 이용하여 ATP를 만듭니다(ATP는 높은 에너지 화합물로 음식물을 대사하여 만들어 놓고 필요에 따라 쓰는 에너지 화폐로 보면 됨). ATP의 합성은 잘 고안된 회전식 나노기계인 ATP synthase가 매개합니다(동영상 참조: https://youtu.be/b_cp8MsnZFA). 세포막에 박혀있는 로터가 수소이온이 안으로 밀려드는 힘에 의해 돌게 되면 ATP가 만들어지고, 거꾸로 ATP를 사용하면 로터를 돌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ATP synthase를 ATP 분해효소(ATPase)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효소는 유전자 복제기구나 단백질 합성기구와 같이 생명의 기본 장치로 진핵세포의 골지체, 마이토콘드리아, 엽록체, 세균, 고세균을 망라한 모든 세포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효소는 루카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합니다.


ATP synthase는 루카의 무기질막에 장착되어 막 바깥에 있는 수천 배나 많이 있는 수소이온이 안으로 들어올 때 그의 잠재에너지(potential energy)를 추려내어 ATP를 만듭니다. 마치 수소이온 농도차이를 이용할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 같지만, 잘 들여다 보면 이미 있던 장치의 우연한 조합이 만들어낸, 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한 신기능을 발휘하는 효소입니다. ATP synthase의 대표격인 F0/F1 ATPase는 F0회전모터, F1모터, F0와 F1을 연결하는 중심축, 그리고 장치고정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전자 족보를 추적한 결과, F0회전모터는 본래 세포막을 관통하는 통로단백질(transporter)이었습니다. 둥근 막대형 단위체 9-14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둥글게 모이면 중심부에 통로가 만들어 집니다. 이 통로로 RNA나 단백질이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루카 안팎의 수소이온 농도차이는 통로단백질을 회전하게 하여 물질 수송을 수월하게 했습니다. 한편, F1모터의 원형은 6개의 단백질로 구성된 RNA helicase입니다. 여기에도 중앙 통로가 있으며, 이중가닥의 RNA나 DNA가 통과하면서 단일가닥으로 풀어집니다. 이때 ATP가 사용됩니다. 이 단백질은 ‘RNA 세계’ 단계에 있었던 초기 루카에서 크게 활약을 했을 것입니다. 어느 시점 루카에서 이러한 통로단백질과 RNA helicase가 합쳐져 F0/F1 ATPase의 원형이 만들어집니다. 이는 흔한 수소이온을 이용하여 아주 소중한 ATP를 만들 수 있게 함으로써, 생명 출현의 중대 사안인 에너지 공급 문제가 마침내 해결됩니다. 화학에서 생명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이렇듯 루카가 수소이온 농도차이를 이용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그 농도차이를 만들어내는 수소이온 펌프를 갖추어야만 열수공을 떠나 독립할 수 있습니다. 2012년 12월 Nick Lane 박사와 Bill Martin 박사는 루카가 어떻게 자체 에너지 생산장치를 갖추어 독립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가설을 발표합니다. (i) 루카의 무기질막을 사이로 산성 바닷물과 알칼리성 열수가 흐르기 때문에 루카 안팎으로 수소이온 농도 차이는 계속 유지된다. 따라서 ATP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ii) 루카의 무기질막에는 여러 금속이온들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구멍이 있었지만, 유기세포막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구멍이 좁아져 나트륨이온을 포함한 금속이온이 통과할 수 없게 된다. (iii) 이때 루카는 수소이온 농도차이를 이용하여 나트륨이온을 내보내는 Na+/H+ 역수송체(antiporter)를 만들어 세포막에 장착한다. (iv) 이 역수송체는 ATP synthase가 나트륨이온의 농도차이도 이용할 수 있게 하여 ATP 합성 효율을 증가시킬 수 있었고, 나중에 수소이온 펌프의 일부가 되어 루카가 열수공에서 만들어지는 수소이온 농도차에 의존하지 않고도 ATP를 만들 수 있게 한다. 이 가설은 알칼리성 열수공에 살고 있는 메탄생성균(metanogen)과 아세트산생성균(acetogen)의 에너지 대사 시스템에 근거를 두었으며, 실제로 이들은 ATP synthase와 Na+/H+ antiporter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Nick Lane 박사는 자신의 가설을 지지하는 실험적 증거를 2014년 PLOS Biology에 발표합니다(2).


수소이온펌프는 생명이 살아있는 한은 항상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한 동력은 ‘높은 에너지를 보유한 전자(high energy electron)’에서 얻습니다. 그 전자는 음식물 대사과정에서 나옵니다. 최근 수소이온 펌프의 한 종류 특히 복합I(Complex I)로 불리는 기계의 정체가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단백질 50여개와 황화철(FeS) 등 여러 무기질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며, 여기에 복합II, III, IV 장치가 추가되어 전자전달계(electron transport chain)를 구성합니다. 전자전달계를 따라 높은 에너지 전자가 최종 산소분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유리되는 에너지가 수소이온을 막 바깥으로 펌프질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진핵세포의 발전소인 마이토콘드리아 내막에서 일어나며, 호기성 세균은 세포막에서 일어납니다. 혐기성 세균은 전자전달계 구성 성분이 덜 복잡할 뿐 대동소이합니다. 큰 차이점은 전자의 최종 목적지가 산소가 아니라 철이온이나 기타 무기질입니다. 루카에 장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Na+/H+ antiporter가 복합I 장치에서도 발견되며, 높은 에너지의 전자가 잠시 머무는 곳이 루카의 무기질막에 흔히 있었던 황화철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루카는 이와 같이 원시 형태의 전자전달시스템과 ATP synthase를 갖춘 후에 드디어 기나긴 생명의 여정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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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J Boyce, et al., Formation of fossil hydrothermal chimneys and mounds from Silvermines, Ireland (1983) Nature 306 (5943), 545-550

(2) V Sojo, et al., A Bioenergetic Basis for Membrane Divergence in Archaea and Bacteria (2014) PLOS Biol. 12, e100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