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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출현, 알칼리성 열수분출공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9-29


모든 생명의 공통조상세포 루카(LUCA)의 유전체를 가정하면서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를 추측하였습니다. 오늘은 생명 이전(prebiotic)의 지구에서 생명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던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생명 아니 좁혀서 단순 세포 하나가 살아있다고 할 때의 조건을 생각해보면서 생명출현 과정을 짐작해봅니다. 첫째, 세포는 잘 정돈된 구조를 갖추고 내부 환경을 안정되게 유지할 막(membrane)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세포는 에너지원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 주변에 마땅한 먹거리가 없는 경우에는 주변에 흔한 단순 물질과 가용한 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 만들어 먹어야 하고 그로부터 에너지를 추려내어 쓰면서 자기 몸집을 키워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 소위 합성과 분해의 에너지대사(energy metabolism)과정은 온화한 조건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그 반응을 도와주는 촉매인 단백질이 필요합니다. 셋째, 스스로 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제 대상은 정보물질 DNA이며, 복제 역시 단백질이 담당합니다. 루카는 이러한 세가지 기본 조건들을 어느 정도 갖춘 상태일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 이전에는 화학의 세계였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생명에 이르는 각 과정을 담당하는 화학반응은 단계별로 단순 무질서에서 복잡 조직화 방향으로 일어났을 것입니다. 생명 이전의 화학과 관련하여, 원시지구에는 원형세포(protocell)의 출현에 필요한 기초물질인 물, 이산화탄소, 메탄, 수소, 질소, 암모니아, 황화수소, 인산 포함 각종 아미노산과 심지어 지방산 등이 꽤 있었고, 혹독한 환경에서 이들이 농축·축합되어 여러 다른 유기물 유도체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조금 더 복잡해진 물질에서 핵산 RNA의 구성성분이 있으면 생명탄생의 화학이 성큼 한 발자국 나간 것입니다. RNA는 DNA와 같이 정보를 담을 수 있고 단백질처럼 촉매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RNA사슬들은 각각이 독특한 모양을 형성할 수 있으며, 다른 모양의 RNA는 다른 대사반응을 매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RNA가 원시지구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찾아내면 생명출현의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습니다. 2015년 Cambridge 대학의John Surtherland 박사는 시안산(HCN)과 황화수소(H2S)를 재료로, 자외선 조건하에, 그리고 특정 지구광물 금속이온에 의한 촉매반응으로 RNA 구성 염기 A, U, G, C 염기 모두를 만들어냈습니다. 더욱, 이를 바탕으로 몇몇 아미노산 그리고 세포막 구성성분인 지질이 합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1). 생명의 기원에 관하여 핵심이 되는 화학문제 1번을 풀어낸 쾌거로 받아들여집니다.


RNA의 구성물질들이 어떻게든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이들이 결합하여 촉매로 작동할 수 있는 RNA사슬로 되려면 일정한 구획(compartment)과 지속적인 에너지공급(energy metabolism)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알칼리성 열수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968년 『Energy Flow in Biology』의 저자 Herold J. Morowitz의 생명관을 소개합니다. “어떤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에너지는 그 시스템을 보다 잘 조직하여 질서를 만든다. 생명이라고 다를 바 없다. 생명의 출현은 화학과 물리 법칙에 따라 결정되며, 주어진 환경상수(environmental constants)에서 한 유기체가 최적화된 조직을 갖추게 하는 자연선택 진화과정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는 생명출현을 결정론적인 관점(deterministic view)에서 바라보았으며, 특히 에너지 대사적으로 생명출현은 피할 수 없다고 하며 그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피력합니다. (i) 크거나 작거나, 복잡하거나 단순하거나 모든 생명은 구연산회로(citric acid cycle)를 중심에 두고 생명의 모든 구성물질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DNA, RNA를 만든다. (ii) 구연산회로에서의 핵심반응은 생성된 물질이 다음 반응을 가속시킬 수 있는 자동촉매(autocatalytic) 반응이며, 그 반응의 원료물질, 중간물질, 생성물 등은 세포 없이도 만들어진다. 즉, 세포가 생기기 이전에 구연산회로는 존재한다. (iii) 놀랍게도 그 핵심반응은 거꾸로도 진행될 수 있다. 즉, 에너지가 공급되면 이산화탄소와 수소가스를 받아들여 새 유기물질 초산(acetate)을 만든다. 초산은 생명화학의 시발물질로 구연산회로의 자동촉매반응이 돌아가게 하는 유기물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쓰인다. 에너지는 초산인산염(acetyl phosphate) 형태로 공급되며 알칼리성 열수공에서 만들어진다. (iv) 알칼리성 열수공에서 구연산회로의 역반응이 시작되기만 하면 구연산회로의 자동촉매반응을 출발시킬 수 있고, 그 구연산회로의 작동은 세포가 있기 전, DNA 복제과정이 있기 전, RNA가 생기기 전에 무질서에서 질서가 창조되는 즉, 생명출현의 출발점이다.


알칼리성 열수공은 바다 깊은 곳, 지각이 벌어지는 해령 부근에 있습니다. 1977년 발견된 화산활동으로 검은 연기와 300-400℃ 정도의 액체를 뿜어내는 산성 열수분출공(acidic blacker smoker)과는 다르게 알칼리성 열수공은 암석광물과 바닷물의 화학반응의 결과로 형성된 것입니다. 지각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그 아래 맨틀층에 숨어있던 감람암(olivine)은 스며드는 바닷물과 화학반응을 하여 사문암(serpentinite)으로 바뀝니다. 이러한 과정(serpentinization)에서 열과 수소가소 그리고 수산화(OH-) 이온이 만들어져 알칼리성 온수(pH9-11, 50-80℃)가 수소가스와 함께 뿜어 오르고, 이산화탄소가 녹아있는 산성 바닷물과 반응하여 독특한 굴뚝구조를 만듭니다. 구조 내부에는 가스와 액체가 통과하는 구불구불 미로가 있으며, 10-100μm의 미세구획에는 메탄, 암모니아, 소량의 황화수소 등 화학성분들이 일정기간 머무를 수 있어 메탄생성 고세균(methanogen)이 득실거립니다. 2000년에 대서양 해령에서 발견된 이러한 알칼리성 열수공이 만들어낸 생태계를 ‘잃어버린 세계(Lost world)’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알칼리성 열수공에서 생명이 출현하였다고 가정하면 여러 면에서 설명이 쉬워집니다(논문 2 참조). (i) 지구의 열에너지가 구연산 역회로 반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ii) 미세구획에서 유기물이 농축되고 생명화학의 원재료를 공급하는 구연산회로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iii) 미세구획의 무기질벽(inorganic wall)은 알칼리성 온수와 산성의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있기에 수소이온 농도 차이가 적어도 1000배 정도 납니다. 이는 에너지 자체입니다. (iv) 지금과는 다르게 초기 지구의 바닷물에는 철, 니켈, 구리 등이 녹아 있었기에 미세구조벽에 이들 금속성분이 있을 것이며, 이들은 화학반응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v) 금속촉매반응은 수소의 환원력을 충분히 도출하여 구연산 역회로를 통한 이산화탄소 고정을 가속화하고, RNA 세계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동시에 무기질벽에서 유기질 세포막으로 전환이 일어나 LUCA의 원형세포(protocell)로의 진화를 촉진합니다. (vi) 최종 세포막 사이에 수소이온 농도 차이에서 에너지를 추려내는 장치가 세포막에 장착되면서 암석에 붙어있던 반생명에서 온생명으로의 도약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생명탄생의 시나리오는 전편에서 언급한 Bill Martin, Nick Lane, Michael Russell 박사 그룹의 집단가설(collective hypothesis)를 단순 요약한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Nick Lane 박사의 저서 『Life Ascending』에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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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H Patel, et al. Common origins of RNA, protein and lipid precursors in a cyanosulfidic protometabolism (2015) Nature Chemistry 7, 301–307

(2) V. Sojo, et al. The origin of life in alkaline hydrothermal vents (2016) Astrobiology 16, 181-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