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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생명의 공동조상 루카(LUCA)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9-18


가장 오래된 생명의 증거는 37억년된 광합성 세균집단 스토로마톨라이트 화석입니다. 최초 생명의 화학흔적은 41억년전까지 올라갑니다. 45억년전 지구가 만들어진 이후 생명이 어떻게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출현하였는가는 자연과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입니다. 오늘은 최초 생명이 어떤 모습일까를 짐작하게 하는 논문을 소개합니다. 뒤셀도르프 대학교(Heinrich-Heine-Universität Düsseldorf)의 William Martin 박사 그룹은 소위 루카(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라고 알려진 현존하는 모든 생명의 공동조상 유전자에는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고 7월말 nature microbiology에 발표합니다(1). 그리고 그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추측하여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사실 루카는 다윈이 제안한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에서 가장 밑 기둥에 해당하는 가상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루카의 실체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게 한 것은 생명을 분류하는 Carl Woese 박사의 혁명적인 가설 덕분입니다. 그는 1977년 생명은 세 영역, 즉 두 개의 원핵생물인 세균(bacteria)과 고세균(archaea) 영역,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진핵생물(eukaryota) 영역으로 나눌 수 있음을 제안하였는데, 기본 아이디어는 대대손손 전달되는 유전자의 변화궤적을 추적하여 족보를 따지는 것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생명의 유전자가 계통 별로 변화한 과정을 분석하여, 가지치기한 분기점을 따라가면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생명이 얼마나 많은 가지치기 단계를 거쳤는지는 종 마다 다르겠지만 현존하는 생명 종 모두는 하나의 근원을 가지는 단일 종족(monophyletic)으로 간주합니다.


현존하는 모든 생명은 루카에서 분기되었기에 루카에는 모든 생명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유전자가 있을 것이며 그것이 어떤 것이냐를 알면 그의 정체가 드러날 것으로 쉽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비교유전체학 접근법으로 2000년대 초반에 최소유전자세트(minimal gene sets)를 정하였고(제7회 『생명 최소한의 유전자는?』 참조), 대충 500-600개의 유전자가 루카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최소유전자세트 유전자 중에서 단백질 합성과 관련된 유전자 30-100개 정도만이 루카가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기본적으로 부모세대에서 자식세대로 수직전달(vertical gene transfer)되어야만 조상 유전자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진화초기에는 주변에서 유전자들을 서로 주고 받는 수평 또는 측면전달(horizontal or lateral gene transfer)이 흔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유전자의 근원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이 공통으로 소유한 최소유전자세트의 유전자 중 많은 경우 선후관계를 따질 수가 없기 때문에 공동조상 루카의 유전자를 알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Martin 박사팀이 빅데이터와 계통분석학적(phylogenetic) 방법을 접목하여 해결함으로써 가상의 루카 유전자를 정합니다. 첫째, 생명의 나무는 3영역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균과 고세균 두 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최근 가설을 따른다(2). 둘째, 루카는 세균과 고세균으로 분기했기 때문에 세균에만 있는 유전자와 고세균에만 있는 유전자가 루카의 유전자다. 셋째, 루카에서 분기되는 생명 종은 모두 단일 종족이라고 가정하면 루카에서 유래한 유전자는 현존하는 세균이나 고세균 모두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에 따라, Martin 박사팀은 1,847 종 세균의 유전체와 134종 고세균의 유전체에서 610만개 유전자의 족보를 추적합니다. 610만개의 유전자를 같은 계보를 가진 비슷한 유전자로 한데 묶은 286,514개의 계보모음(cluster)으로 나누었으며, 각 모음에서의 유전자 유사성과 선후관계를 따집니다. 이중 세균과 고세균 둘 중 하나에만 기원을 두고 있으며, 현존하는 세균이나 고세균에 면면히 존속하고 있는 355개 유전자 계보가 있음을 알아냅니다. 이들은 루카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다행히도 355 유전자 중에서 294개의 유전자에 대해서 기능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Martin 그룹은 루카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294개 유전자의 기능으로부터 루카의 정체를 다음과 같이 유추합니다. 루카는 산소를 무척 싫어하는 절대혐기성(obligate anaerobic) 원핵생물로, 수소가스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를 환원시킴으로써 자신에게 필요한 유기물을 만들며 살아가는 자가영양생물(autotroph)이다. [미생물 대사의 전문용어 WL(Wood-Ljungdahl) 경로로 여러 탄소 유기물을 합성하는 미생물임.] 질소원은 질소가스를 고정하여 충당하고,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세포막 사이에 형성된 양성자 이온 농도차이에서 추려낸다. 고온에서 살며, 많은 생화학 반응은 철이나 니켈 등의 금속촉매에 의존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루카는 바다 밑 지표가 갈라지는 부근, 특히 지반 암석에 스며드는 바닷물과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지는 메탄가스와 수소가스 그리고 약간의 황화수소가스가 분출되는 알칼리성 열수공(alkaline hydrothermal vent) 내에서 살았을 것이다. 생명활동에 관한 많은 부분은 암석과 연관된 금속무기촉매가 충당하기에 루카는 엄밀한 의미에서 반만 살아있는 상태이다(이 주장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355개 루카유전자 계보의 선후 관계를 따지면 현존하는 세균영역에서는 초산생성균(acetogen)에 속하는 클로스트리디아(clostridia)로 귀착되며 고세균 영역에서는 메탄생성균(methanogen)으로 귀착됩니다. 이들은 생명의 나무 계통분류에서 기저부에 자리한 원핵생물입니다. 둘 다 절대 혐기성 균이며 WL경로로 이산화탄소를 고정하여 유기물을 만듭니다. 이때 수소가스가 공급하는 전자가 중요합니다. 지구 지각층에 많이 존재하는 미생물들로 루카의 생활과 아주 비슷합니다.


Martin 박사와 함께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런던대학교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의 Nick Lane 박사, 그리고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젯트추진연구소의 Michael Russell 박사는 루카의 유전자로 예측되는 초기 생명이 알칼리성 열수분출공에서 태동했다는 주장을 이미 피력한 바 있습니다. 이는 무생물에서 생물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음 주에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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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C Weiss, et al., The physiology and habitat of the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2016) Nature Microbiology 1, Article number: 16116

(2) K Raymann, et al., The two-domain tree of life is linked to a new root for the Archaea (2015) Proc. Natl. Acad. Sci. USA. 112: 6670–6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