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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 제2의 뇌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6-08 


지난번 장내미생물의 변화가 각종 정신질환의 원인임을 보여주는 실험 증거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어떻게 미생물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메커니즘을 제시하는 연구들이 폭발적으로 진행되어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장내미생물에 의한 대사산물이 (i) 직접 장에 분포한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뇌로 정보를 준다. (ii) 혈관을 타고 가다가 뇌혈관장벽(blood brain barrier, BBB)을 넘어서 뇌로 들어가 영향을 준다. (iii) 장에 있는 내분비세포(enteroendocrine cell)에게 펩타이드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여 뇌와 소통한다. (iv) 장은 자체적으로 세로토닌(serotonin), 도파민(dopamine), GABA,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등 여러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는데, 이러한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 생산에 관여하여 뇌와 소통한다. (v) 이밖에 장내미생물은 면역계를 자극하고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여러 면역조절물질이 BBB에 영향을 주어 뇌활동을 조절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장에서 뇌로 보내는 정보가 생각보다 많고 그 방법이 다양함을 말해줍니다. 뇌는 우리 몸의 모든 움직임을 관장하는 중추신경계(central nervous system, CNS)의 총사령관으로서 장의 활동을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 ANS)를 통하여 관리합니다. 자율신경계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자발적인 움직임(숨쉬기, 심장박동, 소화운동)을 관리합니다. 평상시 이런 움직임은 일정 속도로 안정되어 있지만, 생존을 압박하는 상황에서는 숨쉬기나 심장운동은 빨라지며 소화운동은 정지되는 등 움직임 속도는 달라집니다. 이러한 조율은 뇌가 자율신경계 중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교감(sympathetic) 신경계와 이를 원상태로 되돌리는 부교감(parasympathetic) 신경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먹는 것에 관련된 소화운동은 동물의 생존에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뇌의 지휘권 아래 마냥 놔두기가 불안합니다. 동물은 뇌의 지휘체계를 벗어나는 장신경계(enteric nervous system, ENS)를 따로 운용합니다. ENS 신경세포는 식도에서 항문까지 촘촘히 분포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뻗어 나와 CNS의 교감 및 부교감 입력 및 출력 신경망을 간섭합니다. 뇌의 의도와는 다르게 장운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들 세포 수는 1-5억개에 달하며(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수의 200분의 1에 해당), 척추에서 나오는 신경세포 수만큼이나 많습니다. ENS는 뇌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기에, 자율신경계 가지에서 독립시켜 중추신경계와 동급으로 치려는 흐름이 있습니다. 심지어 식도에서 대장까지의 위장관(gastrointestinal track)을 제2의 뇌라고 부릅니다.


배가 고프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심리적으로 긴장하면 위가 뒤틀립니다. 제2의 뇌, 장은 먹거리를 잘 찾도록 제1의 뇌를 조종합니다. 애초 뇌는 장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 졌으며, 나중에 먹히지 않기 위한 그리고 짝을 찾기 위한 행동에 특화된 영역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드라(hydra)는 입과 항문을 같이 사용하는 호리병 모양의 동물로서 바위에 붙어 살고 있습니다. 뇌는 없고 신경이 촉수를 비롯 온몸에 분포하여 물의 흐름이나 닿는 어떤 것을 감지하여 잡아먹고 소화시킨 후 같은 구멍으로 부산물을 내보냅니다. 이보다 좀더 진화된 동물은 좌우대칭 튜브 모양으로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을 따로 씁니다. 튜브형 동물의 바깥정보는 피부에 분포된 신경망을 통해서, 또 다른 하나는 입에서 항문으로 연결된 위장관 신경망에서 처리됩니다. 그리고 전자에 포식자의 위협을 느껴 피하는 장치가 탑재됩니다. 두 가지 경로의 외부정보가 교차되는 장소에서 먹이를 찾아 잘 움직이도록 하는 뇌가 발달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CNS가 진화하여 뇌는 바깥세계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하여 먹이찾기, 위험피하기, 짝찾기 등 세가지 생존생식에 중요한 운동을 아주 잘 조종할 수 있게 됩니다. 이중 제일 근본적인 것은 먹고 소화하고 다음 먹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이를 관장하는 ENS를 내재신경계(intrinsic nervous system)라고도 부릅니다. ENS를 기본으로 깔고, 거기에 두려움 회피와 그에 따른 공격 장치, 그리고 짝찾기 장치가 추가되어 CNS가 구성된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동물은 일정 부분 먹기에 관한 한 뇌의 조종에만 맡기지 않습니다. 장은 음식물로부터 추려낸 정보를 감지하고 더 먹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사이클을 스스로 돌립니다. 제2의 뇌라고 할만합니다. 그러면 뇌를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 보다 두 개 가지고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까요?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살아갈 수 있으니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치매 환자에서 볼 수 있듯이 뇌기능 손상 때문에 ENS가 제어가 풀려 식탐이 늘어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두 뇌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장치가 잘 돌아갑니다. 이 장치는 우리의 조상이 수렵채집을 할 때에 흔히 먹었던 음식물에 맞추어 진 것입니다. 음식물에 대한 정보는 장내세균을 통하여 가공 처리됩니다. 현대인의 고칼로리 음식은 구석기 시대 음식과 많이 달라 장내미생물의 동요를 유발하고, 그로 인해 뇌로 전달되는 음식물 발효 대사물질이 달라집니다. 장에서 만들어진 이러한 물질이 뇌를 교란시켜 ENS가 우세해 지거나 CNS의 지배력이 약화되면 비만이 되고, 더 나아가 당뇨, 정신질환 등의 문제가 생깁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구석기 식단인 식물성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면 위나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은 성분이 대장에서 오랜 기간 체류하면서 세균에 의해 발효되어 여러 짧은 사슬 지방산(short chain fatty acid, SCFA)을 만들어집니다. 여기에는 acetate, propionate, butyrate가 있습니다. 이들은 (i) 후성인자 표지물질로 작동하여 유전자 특히 뇌세포 성장에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을 도모하고, (ii) 에너지 생산물질로 작용하여 ATP를 만들고, (iii) 포도당 생합성 경로를 밟아 뇌에게 에너지 충만 신호를 보냅니다. 또한 굶을 때에는 지방산 분해 산물인 2-OH butyrate 는 (iv) 교감신경계를 다스려 마음을 평온하게 하며, 정신도 맑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솔깃해지지 않나요?


우리가 ENS의 진화과정을 살펴보았듯이, ENS는 디폴트로 작동하며 CNS 보다 우선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부르더라도 먹는 것입니다. 뇌를 교란시키면 살이 빠지는 수도 나올 법한데 대체로 살이 찌는 쪽으로 갑니다. 내가 제어하기 힘든 또 다른 나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