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열린마당

제목
미생물과 정신질환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5-31


지금까지 각종 비전염성 질환의 증가는 『환경변화 à 장내미생물변화 à 면역조절이상 à 질환발생』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질환에는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 불안증(anxiety), 자폐증(autism) 등 정신질환이 포함됩니다. 불과 5년전만해도 대부분의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은 ‘장내 미생물이 우리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또는 ‘우리의 심리상태는 세균에 의해 결정된다’, 더 나아가 ‘세균이 우리를 조종한다’로 귀결될 수 있는 『장내 미생물 à 정신질환』이라는 인과성(causality)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최근 장내미생물이 일정 부분 정신질환 발생의 원인이 됨을 제시하는 동물실험 및 역학 증거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인과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물리적 혹은 심리적 스트레스는 대표적 정신질환인 우울증의 한 원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00년이 되면서 스트레스가 염증을 일으키는 면역학적 메커니즘이 밝혀졌고, 또 심한 우울증이나 자폐증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염증지표가 증가한다는 연구 보고가 쏟아져 나옵니다. 과학자들은 정신질환을 생물학적 염증질환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고, 『스트레스 à 염증 à 정신질환』의 관계성을 확실히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안되고 복통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생리적 반응입니다. 우울증이나 자폐증을 앓는 사람 대부분은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70% 이상은 지난번 소개한 염증성장질환(inflammatory bowel disease, IBD)를 앓고 있습니다. 이를 동반질환(comorbidity)라 합니다. 여기서 『장내미생물 à 염증 à 정신질환』 관계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장 관심사인 『장내미생물 à 정신질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절실해집니다. 2011년 스웨덴 카로린스카(Karolinska) 연구소 과학자들이 무균상태(germ-free)의 생쥐는 정상 생쥐보다 불안증세를 덜 보이며 용감해짐(less anxious and dare)을 잘 고안된 실험을 통하여 보여줍니다(1). 동물의 행동에 장내 세균이 관여한다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실험결과입니다. 항생제 주사로 장내세균을 거의 없앤 생쥐 역시 조심스럽지 못하게 됨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도 비슷한 시기에 나옵니다. 여기서 진화적 색채를 가하여 세균 측면에서 해석해 봅니다. 약간의 불안감은 동물의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위협적인 상황에 무모하게 행동하다 보면 죽기 십상이죠. 이때 세균은 숙주의 무모한 행동을 삼가게 함으로써 서식처를 안전하게 합니다. 한편, 상황이 좋아지면 세균은 숙주를 보다 무모하게 또는 보다 사교적이게 조종하여 다른 숙주로 옮겨 갈 수 있는 기회를 늘렸을 것입니다. 진화의 개념을 넣은 설명으로 아주 그럴듯합니다. 그리고 소심, 적극, 사교적, 은둔 등 사람의 성격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장내 미생물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확대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겠죠.


2013년 12월 엄마의 임신초기 과도한 면역활성 때문에 생기는 자폐 생쥐모델을 이용하여 『장내세균 à 염증 à 정신질환』 관계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논문이 Cell에 발표됩니다(2). 그리고 장내세균이 어떻게 숙주의 두뇌활동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즉, 연구자들은 자폐생쥐 장내세균이 만들어내는 특정 대사물질이 뇌로 들어가 염증을 일으켜 자폐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습니다. 우울증 역시 장내세균의 리모델링에 의하며, 그로 인한 탄수화물이나 아미노산의 대사물질의 변화가 우울증 발병에 관여한다는 논문이 올해 6월에 발표되었습니다(3).


자폐증 환자의 장내세균 조성은 태어날 때부터 달라지지만, 우울증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스트레스에 의해 장내세균 조성이 변합니다. 『스트레스 à 염증』 관계성은 이미 정립되어 있기에, ‘염증이 오고 장내세균의 조성이 변하냐?’ 아니면 ‘장내세균 조성변화가 염증을 유발하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 à 염증 à 장내세균변화』 혹은 『스트레스 à 장내세균변화 à 염증』 인과관계에 대해선 지금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여기에 답이 될 것 같은, 그렇지만 한동안 무시되었던 창의적인 연구를 소개하고 글을 맺습니다.


1985년 스트레스가 면역기능을 낮추어 병을 악화시킨다’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시기입니다.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무모하기도 한 Lyte박사는 수컷생쥐 한 마리를 전혀 친족 관계가 없는 수컷생쥐의 집에 넣습니다. 수컷끼리 동거조치를 당한 생쥐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집주인이 그를 물어 뜯을 것은 뻔한 사실, 상처를 통한 감염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Lyte는 낯선 환경에 놓인 생쥐는 생존본능으로 면역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추측하였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감염되고 병에 잘 걸립니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과학자는 ‘스트레스가 동물의 면역력을 어떻게 낮추는가?’를 궁금해 할 터인데 Lyte는 엉뚱하게도 ‘스트레스가 세균을 강하게 만들어서 병에 취약해지는가?’를 질문합니다. 답을 얻기 위한 실험, 스트레스 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을 넣은 혈청 배지에서 세균을 키워봅니다. 완전 예상 밖의 놀라운 결과, 노르에피네프린이 있으면 세균의 성장이 빨라집니다(4). 스트레스를 받은 숙주에서 세균은 더 잘 자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Lyte는 또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세균이 숙주에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가? 생쥐에 해가 되지 않는 양의 세균을 감염시켰더니 생쥐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불안 초조해졌습니다(5). 아까 소개한, 13년 후 카로린스카 연구소의 실험 결과와 일맥상통합니다. 그 당시로서는 이상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결과였고 동물행동 및 신경생물학계에서 무시당했었지만, 요즘에는 그의 연구의 중요성이 인정되고 빛을 보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장내세균에 영향을 주고 세균이 염증을 부추기고 결과로 정신활동의 변화가 나타난다는 『스트레스 à 장내세균변화 à 염증 à 행동변화』 인과성이 이미 20년전에 한 독창적인 과학자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

-------------------------------------------------------------------------

(1) Diaz Heijtz R, et al. Normal gut microbiota modulates brain development and behavior. Proc Natl Acad Sci 2011 108:3047-3052.

(2) Hsiao EY, et al. Microbiota modulate behavioral and physiological abnormalities associated with neurodevelopmental disorders. Cell. 2013 155:1451-1463.

(3) Zheng P, et al. Gut microbiome remodeling induces depressive-like behaviors through a pathway mediated by the host’s metabolism. Molecular Psychiatry 2016 21:786-796.

(4) Lyte M and Ernst S. Catecholamine induced growth of gram negative bacteria. Life Sci. 1992. 50:203-212.

(5) Lyte M, et al. Anxiogenic effect of subclinical bacterial infection in mice in the absence of overt immune activation. Physiol Behav. 1998 65:6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