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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생물 전성시대: 옛친구가설과 조절T세포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5-17


위생가설에 따르면 면역계는 어린 시절부터 감염성 미생물을 접하면서 실전 훈련을 거쳐야만 심각히 다루어야 할 침입자와 무시해도 좋을 침입자를 구별할 수 있게 되며, 그러한 실전을 경험하지 않은 어린이는 나중에 앨러지를 비롯하여 여러 자가면역질환에 잘 걸린다고 합니다. 이 가설은 상호견제 TH1/TH2 반응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될 수 있으나, 특정 미생물 노출이 없어짐에 따른 면역반응의 다양한 결과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미진한 부분을 메꾸어 줄 ‘옛친구 가설(old friends hypothesis)’을 소개하겠습니다.


1995년 한동안 미스터리였던 도움T세포의 기능을 억제하는 조절T세포(regulatory T cells, Treg)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경찰하는 감시하는 경찰 역할을 하는 Treg 세포는 TH1 및 TH2의 과잉활동을 제어하여 자가면역질환이나 앨러지 반응을 막습니다. 또한 Treg는 자기 항원이나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외래 항원에 대해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면역관용(immune tolerance)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옛친구가설의 주창자 Graham Rook박사는 선진국에서 앨러지나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이 증가하는 이유를 Treg 세포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i) 우리는 주변에서 우리를 넘보는 미생물의 감염을 피할 수 없기에 그들의 침입을 허용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ii) 이러한 숙주와 미생물 간의 공진화(coevolution) 전략에 따라 우리 몸은 흔히 접하는 미생물에 대하여는 면역관용을 보이는데, 침입 미생물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숙주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Treg 세포를 만들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iii) 침입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Treg은 숙주에게도 도움이 된다. Treg세포는 자기항원에 대해 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특정 병원성 미생물 감염시 그 감염을 제압했던 TH1 또는 TH2세포의 무장을 해체시킬 수 있어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의 발생을 막는다. (iv) 산업혁명 이후에 위생시설과 감염성 미생물 퇴치로 이러한 숙주의 진화전략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한다. 즉, 우리와 같이 지냈던 미생물 친구들이 없어진 현 상황에서는 Treg 세포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앨러지와 천식 등 여러 자가면역질환이 빈번히 발생한다. (v) 우리 곁을 떠난 옛친구는 20만년전 우리가 수렵채집 생활을 할 때부터 흔히 접했던 미생물로서 촌충, 편충, 십이지장충 등 여러 기생충, 장내세균을 포함한 여러 공생세균, 가축이나 주변 환경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미생물들이 있다.


옛친구가설은 우리 몸을 항시 감염했던 미생물들이 담당했던 필수적인 면역조절기능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여러 면역질환들이 발병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특정 미생물에 대한 노출 제한이 앨러지 또는 여러 자가면역질환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Treg 세포의 항원특이성이 질환 발병의 특이성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장내 기생충(윤충, helminths)을 대상으로 옛친구가설을 적용시켜 봅시다. 이들은 창자 벽에 주둥이를 박고 양분을 빨아먹으면서 살고 있으며 TH2 면역반응을 활성화시킵니다. 그 TH2 반응의 활성화로 분비되는 화학물질은 대부분의 병원성 기생충들을 장벽에서 떨구어 몸 밖으로 제거합니다. 그러나 윤충은 Treg 세포를 만들어 내어 숙주의 TH2 반응을 제한할 수 있기에 장에서 근근이 살아갑니다. 윤충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숙주와의 공진화(coevolution) 때문입니다. 서로의 성질을 조금 죽여가며 조화롭게 살고자 타협한 것입니다. 그러한 기생충이 우리 몸에서 사라지면 Treg세포가 만들어지지 않게 되고, 그 결과로 TH1세포의 과잉반응을 제어하지 못해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이 발병합니다. 이 예측은 다방면의 실험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여러 자가면역질환 환자나 동물모델에서 기생충 자체 또는 성분을 투여하면 Treg 세포가 증가함과 동시에 자가면역질환 증세가 호전됨을 볼 수 있습니다.


Treg는 외래 물질 접촉이 잦은 곳에 많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특히 소장 상피세포층 아래에 많이 분포합니다. 이들은 도움T세포에서부터 만들어지며 몇몇 장내세균이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이 이들의 분화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익한 장내세균이 없어지거나, 병원성 세균이 대신 자리를 틀거나, 전체적인 미생물총집단의 다양성이 줄어들게 되면 Treg 세포의 생성에도 문제가 생겨 여러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의 증가됩니다. 여기서 미생물총집단 가설이 나옵니다. 옛친구 가설 보다 더 포괄적이며, 앨러지와 자가면역질환의 증가뿐만이 아니라 비만 당뇨 등 여러 대사성질환과 심장병, 그리고 자폐증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의 급격한 증가를 설명하는 가설입니다. 다음 주에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