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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소한의 생명: 기대 반, 두려움 반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5-03


2010년 인류 최초의 합성생물(synthetic cell) JCVI-syn1.0의 등장은 여러 기술적인 난제를 극복한 획기적인 성과이며, 생명을 정보처리 장치로 물질화함으로써 생명의 신생합성(de novo synthesis)으로 나아가는 큰 걸음마였습니다. 동시에 생명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연구결과 발표 직후 Obama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직속 생명윤리위원회에 생명윤리적 문제와 위험성, 기대이익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6년 후 운용프로그램을 한참 가볍게 한 새로운 버전인 JCVI-syn3.0가 등장하면서, 최소생명의 과학적 측면에서의 확장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응용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인공최소세포의 등장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이번 최소유전자 세트의 결정은 우리에게 생명의 기본원리를 확인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전자의 31%에 대해서는 이들이 왜 있어야 하는지 아직 모릅니다. 우리의 무지는 생명을 주로 우리의 관점으로 해석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균과 같은 작은 개체로 살아가는 데에 요구되는 핵심유전자를 간과했을 수 있죠. 부피로 따지면 우리의 진핵세포보다 1000-10000분의 1정도 밖에 안되는 세균 원핵세포는 진핵세포가 경험하지 못하는 물리화학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진핵세포에 비해 한참 큰 표면적 대 부피 비율이 부담이 됩니다. 특히 세포벽이 없는 ‘마이코이디스’에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부피 대비 표면적이 넓으면 세포는 양분, 이온, 노폐물 등 물질 출입관리, 특히 물분자의 유입과 배출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작기 때문에 물분자는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며, 이들이 상대적으로 넓은 세포표면에 수소결합을 하려고 끊임없이 치댈 것입니다. 그야말로 부담스런 물분자입니다. 또 세포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물분자끼리의 수소결합을 깨는 어떤 물질이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얼음을 가르면서 나아가는 쇄빙선을 그려보면 이해하기 쉽죠. 세포의 크기는 세포표면에서의 물질의 출입과 표면장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실제로 JVCI-syn3.0의 세포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다양합니다. 이 부분의 조절이 정교하지 않고 임의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기능파악이 안된 핵심유전자 중 일부는 물분자를 포함한 물질의 출입을 관리에 관여하는 유전자이거나, 물분자의 응집과 부착 문제를 해결하는 유전자일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둘째, 최초인공세균 JCVI-syn1.0 제조가 생물학 연구에서 흔히 사용하는 재구성(reconstitution) 실험방법의 성공이라면, 그의 다이어트 버전3.0은 환원주의(reductionism) 접근방법의 완결편입니다. 환원주의는 ‘전체를 잘게 쪼개어 각 부분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사고의 틀입니다. 전체는 부분으로 환원되고, 부분의 합이 전체라는 관점이 환원주의의 골격입니다. 생명체와 같은 복잡계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며,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생물학 정보는 환원주의 방법을 통해 얻었습니다. 환원주의의 맹점은 각 부분에서 얻어진 정보를 종합해도 전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위단계의 구성원과 그들 사이의 관계성에서 자발적으로 불쑥 출현하는 특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떠오름 특성, emergent properties). JCVI 연구팀은 환원주의 연구기법으로 생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핵심부품 전부를 망라하였으며, 이들은 한데 모아서 처음으로 생명의 떠오름 현상 즉, 자발적으로 복제 가능한 세균을 실험실에서 만들었습니다. 비록 최소유전자 세트를 빈 세포에 이식하였기에 부분적인 성공이지만,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부분들이 연결된 순서는 전체를 구현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아울러 보여주었습니다. 즉, 유전체 내에서 유전자의 배열을 심하게 바꾸어도 살아있는 세포로 부팅되는 데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최소세포 JCVI-syn3.0을 만드는 과정에서 JCVI 과학자들은 핵심유전자 중에는 준필수유전자(quasi-essential gene)의 존재를 인정해야 했으며, 또한 유전자 수를 줄이면 성장속도를 희생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생명의 떠오름 특성이 말 그대로 돌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것임을 암시합니다. 추후 정체 불분명 부품의 기능과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밝혀가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더욱 확실해 질 것으로 봅니다.


셋째, 38억년전 원핵세포가 출현한 이래 지금까지 세균은 크기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유전체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될 수 밖에 없기에, 세균은 주변으로부터 유전자를 받아들이거나 버리는 작전으로 그때 그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여 지구 어느 곳이든 (잘)살고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러한 세균의 진화과정을 최소인공세균 JCVI-syn3.0를 기반으로 유전자 세트를 넣어 주거나 뺌으로써 재현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단숨에 종(species)을 넘어서 속(genus)이 다른 세균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예를 들면, 대장균은 4백6십만 염기쌍의 유전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JCVI-syn1.0 유전체 반을 트림하여 syn3.0을 만들었습니다. 대장균에서도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유전체 누더기를 정리하면 반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JCVI 과학자들이 2백만 염기쌍 정도의 유전체를 환형 고리DNA로 다룰 수 있는 기술에 도달한다면, 현재의 인공 마이코이디스 JCVI-syn3.0을 대장균으로 바꾸는 대진화(macroevolution)의 현장을 실험실에서 목격할 것입니다. 더 확장한다면 대부분의 세균을 더 홀쭉해진 상태로 그리고 인류의 목적에 맞게 향상된 기능을 가진 인공세균으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광합성 효율이 개선된 인공 광합성세균이 만들어지면 이산화탄소 대기누적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어떤 세균이든 그들 고유의 떠오름 특성이 유전자의 합으로, 그리고 그들의 배열 순서에 상관없이 나타난다면, JCVI-syn3.0은 우리가 직면한 생태, 환경오염, 의약품 생산, 에너지 등 제반 분야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미생물을 만들까? 상상은 마음대로지만, 진짜 문제는 인류가 조만 간에 여러 기술적인 제한을 극복하여 원하는 바를 거의 다 이룰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대감 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또한, JCVI는 20년 넘는 연구 개발과정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혁신을 이루었습니다. 이들만이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게 된다는 것 역시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