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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 최소한의 유전자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4-26


대장균(Escherichia coli)은 변화무쌍한 장내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와 딴 곳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이들의 유전자 수는 4300여개 입니다. 한편, Mycoplasma genitalium (이하 ‘제니탈리움’)은 요로생식기 상피세포에 붙어서 또는 그 안에 들어가서 삽니다. 이들은 대장균에 비해 고정된 환경에서 살고 있기에 뜻밖의 상황 변화에 대비하는 유전자들을 버려가며 아예 기생체의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들은 525개의 유전자만 가지고 있습니다. 아미노산, 비타민 등 많은 자양분 합성, 심지어 세포벽 합성과정도 없애버려 자연에 존재하는 독립 생명 중 가장 적은 유전자를 보유한 생명이라는 영예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2016년 3월 인공으로 제조된 세포 Mycoplasma mycoides JCVI-syn3.0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JCVI는 Ventor 박사가 주도적으로 세운 연구소, J. Craig Ventor Institute를 나타냄)

최소한의 유전자를 가진 인공세포의 개발 역사는 20년이 넘습니다. 1995년 Ventor 그룹이 제니탈리움 전체 유전자를 파악하고 난 후부터 시작됩니다. 제니탈리움 유전체 정보에 근거하여 본격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유전자는 도대체 몇 개이며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도전합니다. 처음에는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죠. 단지 525개뿐인 제니탈리움 유전자를 하나씩 망가뜨리면서 생존 여부를 확인하면 되니깐요. 그러나 살아있느냐 죽었느냐는 ‘예-아니오’의 결정이 아니라 생화학적으로 연속적인 과정이기에 필수유전자 카테고리를 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필요없는 유전자는 얼추 정할 수 있었고, 2006년이 되어서야 Ventor 그룹은 광역 전이인자** 삽입(global transposon insertion) 기술을 이용하여 제니탈리움의 생존에 그다지 필요가 없는 유전자가 150개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325개는 독립적인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로 등록합니다.

Ventor 그룹은 이러한 유전자녹아웃(gene knock-out) 접근법과 병행하여 아예 유전체 전체를 실험실에서 합성한 인공세균을 만들고, 그로부터 유전체를 최소화시켜 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이는 화학적 측면에서, 백만 개 정도의 DNA 염기쌍(base pair)을 에러없이 합성해야 함은 물론, 그렇게 큰 유전체를 시험관에서 다루면서 하나의 환형고리 DNA에 담아야 하는 난제가 있었습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큰 인공유전체를 원하는 세포에 집어넣는 유전체이식(genome transplantation) 기술과 이식된 유전체를 가동시키는 기술 즉, 부팅(booting-up, 컴퓨터에 운영프로그램을 깔고 가동시키는 것과 유사)기술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전체 부팅이 안될 경우 원인을 찾아내고 수정하는 작업 역시 큰 문제입니다. 2010년 JCVI 과학자들은 이러한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여 백만 개 정도의 염기쌍을 가진 마이코이디스(M. mycoides)의 유전체를 모두 실험실에서 합성하였고, 이를 카프리콜럼(M. capricolum)에 이식하여 마이코이디스로 바꾸는데 성공합니다***. 인공유전체로 세균의 종을 바꾼 것이며, 인류최초의 인공세포 JCVI-syn1.0가 무대에 올라섭니다. (마이코이디스 유전자는 901개로 제니탈리움보다는 많지만 실험실에서 훨씬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유전자 최소화를 위한 모델 인공세균 개발 대상으로 선택되었음)

그 이후 6년에 걸쳐 Venter 그룹은 JCVI-syn1.0 유전체 다이어트 작업을 실시합니다. 우선 그간 불필요한 유전자로 등록된 것을 뺀 나머지 484,000 염기쌍으로 구성된 가상최소유전자세트(HMG, hypothetical minimal gene set, 471개 유전자)를 합성합니다. 그러나 HMG를 이식받은 세균은 살지 못하였습니다. 불필요유전자에 대한 판단의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두 개의 다른 유전자가 같은 필수기능을 수행할 때, 각각 하나씩을 망가뜨리면 세포의 생존에는 별로 영향이 없기에 둘 다를 필수유전자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둘 다 망가뜨리면 세포는 생존할 수 없게 됩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필수유전자 카테고리로 분류했어야 했죠. 이러한 미심쩍은 부분을 Venter 그룹은 개선된 전이인자 삽입기술을 이용하여 해결하였습니다. 최종 이들은 JCVI-syn1.0의 유전자를 필수유전자, 준필수유전자, 불필요유전자 세 그룹으로 확실하게 정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HMG를 재편성하여 우여곡절 끝에 카프리콜럼 세균에 이식하여 부팅이 가능한 마이코이디스 JCVI-syn2.0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더 다이어트를 감행하여 최종 JCVI-syn3.0을 완성합니다. JCVI-syn3.0은 심한 다이어트 결과로 성장속도는 syn1.0에 비해 180분으로 세배 정도 느려졌지만, 전체 유전자 수는 473개로 천연의 최소세포 제니탈리움보다 52개가 줄어든 지존의 최소세포로 등극합니다.

생명 최소한의 유전자 473개에 대한 기능별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정보처리 및 발현에 관련하여 41% (195개)로 제일 많고, 이어서 세포막 구조와 기능 유지에 18% (84개), 세포질에서의 에너지 대사에 17% (81개), 그리고 유전체 복제와 유지에 7% (36개)의 유전자가 할당되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JCVI과학자들이 아주 열심히 알아보려고 했지만 149개(이중 70개는 위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지만 나머지 79개는 완전 모름)의 유전자에 대해서는 무슨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생명의 최소 유전자 473개 중 31%는 무엇을 하는 것이지 모른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겁니까? 분자생물학이 본격 궤도에 들어선 이래 50여년간 생명의 기본 원리를 알고자 그렇게 노력했고 또 충분히 공부했다고 했는데 겨우 69점 받는 정도의 성적입니다.

세포의 최소한을 결정하는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Hutchison CA et al. Design and synthesis of a minimal bacterial genome. Science. 2016 Mar 25; 351(6280): aad6253

**전이인자(transposon)는 움직이는 DNA 조각으로, 개개 유전자에 끼어들면 그 유전자가 파괴됩니다(전이인자 삽입 돌연변이). 전이인자가 좀더 진화하면, 두 전이인자 사이에 있는 유전자를 유전체의 다른 곳, 심지어 다른 개체나 다른 종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Gibson, DG et al. Creation of a Bacterial Cell Controlled by a Chemically Synthesized Genome. Science 329: 52–56,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