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열린마당

제목
선천적 감정과 학습된 감정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4-05



동물들은 온갖 종류의 감각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특정 감각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나? 유리하냐 혹은 불리하냐? 어떤 부분에 있어서 그러하냐? 생존 혹은 생식? 끊임없이 점검하였을 것입니다. 어떤 감각은 너무도 생존에 중요하기에 그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생략하고 곧바로 특정 행동과 연결하여 처리과정을 단순화시킵니다. 이러한 즉각적인 행동을 부르는 감정을 ‘선천적(innate) 감정'이라 합니다. 어린 아기들도 뱀이나 거미를 아예 본적이 없었는데도 무서워합니다. (요즈음은 엄두도 못 내지만 70년대에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결과입니다.) 쥐는 고양이를 보거나 그의 배설물 냄새만 맡아도 겁에 질려 꼼짝못하고 얼어붙습니다. 이러한 동물의 선천적 행동을 분석하면서 과학자들은 감정의 정체를 개체의 생리적 측면에서, 기관이나 세포의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서 밝힐 수 있었습니다.

선천적인 감정은 장구한 세월을 거쳐 자연선택으로 학습된 것입니다. 단기간에도 개체 수준에서 감정의 학습이 가능합니다. 동물들은 살아가면서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입력 감각 중에서 '어! 이 감각은 이러한 결과를 나오게 하는구나!'에 대한 경험을 기록합니다. ‘어떻게? 어디에?’를 밝히는 것은 신경과학 연구의 핵심이며, 실험동물을 이용하여 풀어낼 수 있습니다. 감정의 조건화(conditioning)라고도 하는 과정으로 특정 감각에 특정 경험(아픔 또는 쾌락)을 연결시켜 그로부터 형성되는 뇌회로망을 분석합니다. 예를 들면 생쥐에게 별 의미가 없는 과일향인 체리향과 함께 발에 전기쇼크를 주면 ‘체리향à아픔’이라는 방어적 공포 신경회로망이 만들어 집니다. ‘종소리à행복감’을 훈련을 받은 개는 종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침을 흘립니다(파블로브 조건화). 이러한 연합 학습(associative learning)은 동물들이 다가올 위험이나 보상을 예측하거나 기대할 수 있게 합니다. 감정이 있어야 목표지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됩니다. 감정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전무후무의 막강한 뇌를 가지고 있는 인간만이 아주 먼 미래를 예측합니다*.

감정이 학습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생쥐가 고양이 똥냄새를 맡을 때 느끼는 선천적 공포반응을 단계별로 따라가보면; (i) 냄새분자는 그에 특이한 수용체를 가진 후각상피세포(olfactory epithelial cell)만을 자극합니다. (생쥐의 코 안쪽 천장에는 천여 종류의 후각상피세포가 있으며 이들 각각은 한 종류의 후각수용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ii) 냄새로 활성화된 후각상피세포는 후각망울(olfactory bulb, 뇌의 일부임)에 있는 뉴런과 그리고 곧 이어서, 변연계(limbic system)의 편도체(amygdala) 겉부분에 있는 뉴런과 연결됩니다. (iii) 편도체 뉴런은 뇌의 다양한 부위에 있는 신경세포와 시냅스를 이루어 일련의 공포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선천적 공포감의 특징은 감각세포에 의해 활성화된 후각망울 뉴런이 감정유발 편도체 뉴런과 직방으로 연결되어 있어 뇌의 의식적인 감정평가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학습되는 공포감, 생쥐에게 무미건조한 체리향이 공포감으로 연계되는 과정은 (i) 체리향 분자도 그에 특이한 수용체를 가진 세포를 자극합니다. (ii) 그 후각상피뉴런은 후각망울뉴런과 연결되며 이들의 액손다발은 측두엽(temporal lobe)의 후각처리영역(olfactory cortex)에 있는 신경세포와 시냅스를 이룹니다. 편도체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형성되는 고양이 똥냄새 시냅스와는 다르게 후각처리영역에서의 체리향 시냅스는 수도 많고 널리 분산되어 있습니다. 시냅스 형성은 무작위로 일어나며, 또 개인마다 다릅니다. 그저 생쥐는 체리향 냄새를 맡은 것으로 그칩니다. (iii) 이때 체리향과 함께 발바닥에 가벼운 고통을 주면,

후각정보처리 장소에 넓게 무작위로 연결된 신경세포에서 골라내기 작업이 일어나며 이때 체리향은 의미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iv) 선택된 신경세포는 편도체 특정 부위에 있는 뉴런과 시냅스를 이루면서 공포반응이 체리향에 대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 위협에 대처하는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갑니다. 편도체의 뉴런이 시상하부(hyperthamus) 뉴런과 연결되면 심장이 두근거리며 스트레스 호르몬이 만들어집니다. 내장으로 가는 후주시경(vagal nerve)과 연결되면 소화가 안되며, 기도로 가는 신경(parabronchial nerve)과 연결되면 호흡이 빨라지고 거칠어집니다. 뇌간(brain stem)으로 가면 얼어붙은 듯 꼼짝않고(freezing)있거나 별 의미없는 자극에도 쉽게 놀랍니다(startling). 이는 실험동물이 공포에 질려있음을 쉽게 가늠하는 행동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즉각적인 신체 반응이기에 공포반사(fear reflex)라고도 합니다.

다음 주에는 연속된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로, 한 개체가 짧은 기간에 학습을 통해 배운 공포감이 자식세대를 넘어 손자세대까지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똑똑한 새들은 미래를 대비해 식량을 숨겨두고 그 장소를 기억해 찾아 먹습니다. 내재된 생리 시계의 태엽이 풀렸다 감겼다 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행동이라고 여겼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밝혀졌습니다. 비록 인간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새들도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