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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보물찾기 (90 은영선) (2009.01.10)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보물찾기


90 은영선




나는 아무 영문 모르고 영문과에 입학해서 영문(영어문장) 모르고 졸업했다. 심지어 나는 연세대 영문과가 연극영화과였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


옛날에 어려서부터 영문과에 가기를 소망했던 문학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워즈워드의 시를 낭송하며 꼭 영문과에 가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런데 그녀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전액장학금을 주는 학교를 택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택한 학교에는 영문과가 없고 영문학과 국문학을 동시에 가르치는 문학과가 있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문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동시에 계속 문학에의 꿈을 키워 황순원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을 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늦은 결혼을 해 세 자녀를 두었다. 제비 새끼 같은 자식 키우랴, 청탁 받은 원고 써주랴, 학생들 가르치랴, 남편 내조하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세월은 살같이 흘러갔다. 어느새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며 다시금 그 옛날의 꿈이 생생해졌다. 그녀는 큰 딸아이에게 슬며시 영문과를 권해보았다. 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한 큰딸아이는 본인의 의지대로 의대에 진학해버렸다. 둘째인 아들은 어려서부터 공학도를 꿈꾸었으니 권해보았자 소용없을 터이고, 우유부단하고 귀가 얇은 막내만은 꼭 영문과에 보내리라 마음을 굳혀보았다. 드디어 막내의 입시! 3년간 알게 모르게 공들인 덕으로 막내는 영문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자 이렇게 해서 우리 엄마가 영문과에 보낸 막내가 바로 나다. 심리학도를 꿈꾸었던 나는 그렇게 영문 모르고 연세 대학교 영문과 90학번 새내기가 된 것이다.


교정도 예쁘고 대학생이 된 것도 신났지만 난 전공에 대해서 여전히 영문 모르는 것이 많았다. 영시 미시 모두, 아무리 배워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 뒤에 숨겨진 뜻을 찾으라는 가르침이었는데 그 숨겨진 뜻은 얼마나 꼭꼭 숨겨져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고… 영어학 시간에는 우리말 고전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고… 문학을 배운다기보다는 해석에 급급해서 사전만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영문과생이라 정말 기뻤던 건 노톤 앤솔로지를 왼쪽 팔에 끼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교정을 내려와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서 아! 내가 남보다 몇 배 좋은 베개를 가졌구나!… 할 때였다.


그나마 연극에 관심이 있던 나는 4학년이 되기를 기다렸다. 4학년 전공과목에는 내가 좋아하는 희곡수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희곡들! 3학년 때 그의 소네트들을 배우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재미있진 않았다. 운율이 기가 막히게 잘 맞긴 했지만 그의 수많은 비유들은 구태의연하게 느껴졌다. 그냥 말해도 될 것을 돌려 돌려 말하는 것이 옛스럽달까… 그런데 막상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배우면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의 희곡들은 모두가 시였다! 내가 대본으로 읽었던 것과 달리 그의 대사들은 모두가 시였던 것이다. 아니 셰익스피어 아저씨는 인생을 왜 이렇게 어렵게 사셨나 싶었다. 쉽게 말해도 될 것을 운 맞춰 비유로 얘기하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꼬!…


그렇게 내 대학생활은 영문 모르고 흘러간 것이다.


문학은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시대를 모르면 그 시대의 문학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대에 대한 이해 없이 그 시대의 문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대학시절의 내게 그것은 커다란 과제였다. 영어도 제대로 모르고 영미 두 나라의 역사도 잘 모르면서 영어로 쓰여진 그들의 문학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나는 국어도 모르고 우리의 역사도 제대로 모른다. 우리의 고전을 깊이 이해하지도, 역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고전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다. 오히려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을 저항시가 아닌 연애시로만 읽고 싶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진한 이별가이자 응원가로만 외우고 싶은 치기어림마저 갖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게 영문학은 남의 옷과 같은 존재였다. 문학을 배운다는 낭만도 언어의 벽에 갇혀 사라지고 영어가 이렇게 발전해왔구나 하는 재미도 사전에조차 없는 브로큰 잉글리쉬와 블랙 잉글리쉬까지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희미해져버렸다.


졸업 후 난 내가 하고 싶었던 연극이 과연 무엇인 지 알아내기 위해 극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런저런 행보 속에 1995년 KBS성우가 되었고 지금은 프리랜서 성우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졸업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난 내가 영문학을 공부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영문도 모르고 졸업해 놓고 이제 와서? … 그렇다. 우습게도 난 졸업 이후에야 내가 대학시절 배운 것의 실체를 조금씩, 조금씩 깨달을 수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고 아마 평생을 깨달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나이가 들면, 유치하게 느껴지던 트롯가사들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재미없던 셰익스피어의 비유들이 보석같이 느껴지고 그가 그 당시 어떻게 현대인인 내가 들어도 감탄할 만큼 더없이 적절한 비유들을 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희곡 속에서 어떻게 그 어려운 심리 묘사를 운율까지 맞추어가며 시로 읊을 수 있었는지도 세기의 불가사이라 할 수 있겠고 소네트들 속에서 그가 노래한 수많은 인생의 진리들이 이제야 하나둘 베일을 벗고 내 앞에 그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브로큰 잉글리쉬로 소설을 썼던 마크트웨인의 작품이 당시 얼마나 센세이션 했을지 그리고 그로 인해 미소설이 얼마나 대중과 가까워졌을지… 그렇게 오랜 세월 전에도 사람들은 지금과 똑같은 인생의 고민을 아름답게 노래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나는 그때 배운 모든 것이 신기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수없이 영화화되고 수없이 무대에 올려졌다. 그런데 이미 그토록 올려졌음에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감독과 연출가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영화나 연극을 만들고 싶어 하고 배우들은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그 캐릭터들을 창조해내고자 한다. 해석하고 또 해석해도 풀리지 않는 신비의 베일을 가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그리고 수많은 영문학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던 갖가지 인생들… 나는 영문학 속에서 인생을 배워야 했던 것이다.


뒤늦게 나는 내 안에서 영문학도의 흔적을 만나게 되면 참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감사한다. 그때 영문 모르고 영문학과에 입학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지금 내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꼭 그때로 돌아가지 않는다 해도,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영문학도인지도 모르겠다. 영문학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쁨을 계속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모르게 나를 키워준 나의 영문학. 오늘은 책꽂이에서 오래도록 잠자고 있던 노톤 앤솔로지를 꺼내 보고 싶다. 몇 페이지 뒤적이다 또 베개로 쓸지라도 한 번쯤 꺼내어 왼팔에 들어도 보고 얇은 종이소리를 내며 몇 장 펼쳐보고 싶다…








잘 다치던 시절, 그리운 나의 장미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