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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Robert Frost의 (89 이원엽) (2008.11.29)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Robert Frost의 시


89 이원엽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From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는 쉬우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겨 줍니다. 제가 아직 어려운 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가 어려우면 그만큼 감동도 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쉬운 언어로 깊은 맛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여기 그가 쓴 「가지 않은 길」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는 시이어서 인용하기조차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이 시를 떠 올려 보는 것은 삶에 대한 선택의 제한성을 제대로 노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선택이 인생의 말년에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다시 시금석이 되어서 미래에 지금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될 것입니다.


어쩌다보니 벌써 불혹의 나이를 두해 남겨 둔 나이로 접어듭니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흐를 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제 자신의 나이만큼의 속도로 세상의 시간이 흘러간다고들 말합니다. 이제 저도 40km/h의 속도로 세상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고 했나요? 어떤 것에는 이제 눈길 하나 주지 못한 채 지나칠 수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데도 말이죠. 현재도 그렇지만 이 시점에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제 지나치면 다시는 생각조차도 못한 채 지나칠 과거의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문학 중에 시를 좋아했습니다. 몇 편의 시는 암송하기도 하고, 또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습작도 해 보고,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클럽활동은 역시 문예부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둘째, 고등학교 교과목 중에서 영어 성적이 가장 잘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필 고사가 대부분이었는데 그게 영어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영문과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처음 영문과 수업은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만 시를 접할 수 있다는 환상 하나로 버텨 나갔습니다. 역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었지만 말입니다.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시에 접근하면서도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재학 중에 영문과에서 개설된 영시 수업은 모두 수강을 하는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영시 하나 제대로 감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올 일입니다. 그러나 후에도 지속적으로 책과 시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그 무모함이 아니었을까합니다.


“시인은 미친 사람이다.”라고 어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미쳐야 되지 않을까요? 미친 사람이 쓴 시도 이해해야 하니까요. 우리와 같이 배운 동기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가슴으로 사랑할 줄은 알아도 차가운 머리로 기계소리 내는 애를 못 봤습니다. 사랑과 우정이 있는 대학 생활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동기들은 힘껏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시절은 저에게 추억만을 남겨 주는 때는 아니었습니다. 아픔마저도, 좌절마저도 시간이 흐른 후에 추억이 된다면 몰라도 말입니다. 방향타 없는 배처럼 떠돌던 시절이 또 하나의 대학시절입니다. 누가 뭐래도 또 하나의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진로와 학업을 놓고 몹시 고민했지만 답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참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사회에 진출하였습니다. 준비가 없었던 탓이었던지 직장 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교직은 대학 졸업 후 그리 많이 지나지 않은 해에 벌써 네 번째 직업입니다. 가지 않은 길보다 가 본 길이 더 많았던 것일까요? 아직도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많을 겁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만날 때마다 느끼는 기쁨 그리고 또 책임감. 한 해에도 수많은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 많은 아이들은 제가 만나야 할 ‘아직 가지 않은 길’입니다. 제가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세상으로 나가는 데 필요한 반듯한 지도 한 장 마련해 내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도 대학 시절의 열정만큼이나 시에 대한 열정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문학은 경험이며, 그 경험은 감동을 전제로 합니다. 시 한 편이 건네주는 감동의 숨결은 한 사람이 평생 살아갈 수 있는 영양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저는 그 힘을 믿습니다. 영문과에서 제가 받은 문학의 숨결을 제 학생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순간순간 기쁨 속에 머무를 때가 있습니다. 영원히 멈추고픈 그런 순간 말입니다. 영문과는 시가 있는 곳, 우정이 있는 곳, 그리고 신촌을 지날 때면 언제나 들르고 싶은 고향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한 편 더 떠올려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에 취해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즐거웠던 대학시절, 한 번 회상하면서도 아직 가지 않은 길을 향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몇 마일’, 꾸준히 힘내서 또 한 걸음 내디뎌야겠습니다.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by Robert Fr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