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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백양로 봄꽃을 떠올리는 설렘으로 (89 김인영) (2008.11.29)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백양로 봄꽃을 떠올리는 설렘으로


89 김인영




전혀 뜻밖의 전화를 받고, 기억 저편에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던 학부 시절을 떠 올리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었다. 연세 영문과 60주년을 기념하여 영문과 동문들의 회고담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신 분은 다름 아닌 최종철 교수님이었다. 그때 막 임용되셔서 학과에서 제일 젊으셨던 교수님께서 이제는 그때보다 많이 늙었어, 하시면서 웃으시는 핸드폰 저편 목소리에서 뜻밖의 반가움과 벌써 졸업한 지 15년이 다 되었구나 하는 놀라움, 그동안 이런저런 바쁜 일들로 내가 참 무심했구나 하는 죄송스러운 마음들, 많은 감정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쁜 일상의 와중에서, 이 원고를 쓴다는 것을 빌미로 잊혀져 가던 학부 시절의 경험들을 아름아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사실 지난 한 달간 나에게는 부담이면서 동시에 즐거운 설렘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많이 바랜 졸업 앨범을 꺼내놓고, 그때 배웠던 교수님들의 모습과, 함께 공부했던 학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혼자 상상해 보기도 한다. 가끔씩 만나게 되는 몇몇 89학번 동기들과는 애들 키우는 얘기, 세상 사는 얘기들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들 한창 애들 키우랴 사회 생활 하랴 바쁘다 보니 마음만 있을 뿐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항상 같이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가끔씩 마주치게 되는 연대 영문과 동문들에게서는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향기가 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는 건 참 신기한 느낌이다. 적지 않은 학생 수 때문에 같이 학교를 다녔어도 얼굴도 모르는 선후배도 꽤 있었지만 뜻밖에 만나게 되는 우리 과 동문들과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도 언제나 말이 통하고,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우리가 공유한 그 무언가가 바로 연대 영문과의 전통이고 고유한 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결코 쉽지 않게 느껴졌던 영미 소설들을 같이 읽으면서, 영미시를 같이 감상하면서, 또 희곡시간에는 영미 희곡들을 큰 소리로 읽고 구절구절 비판하기도 하면서, 또 쉽게 읽히지 않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같이 읽으면서 배우게 된 humanity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깊이들, 갓 들어간 학부 1, 2학년 시절 모자라는 영어 실력을 많이 보충하게 해 주었던 speech와 writing 수업을 통해 배우게 된 영어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들, 다양한 학과 행사들과 연고전을 경험하면서 가지게 된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한다는 젊은 열정과 삶에 대한 에너지들…. 이 모든 것들이 학부를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내 몸에 묻어나고 배게 된 캐릭터가 되었고, 이건 나만의 캐릭터가 아니라 대부분의 연대 영문과 동문들이 공유하게 되는 캐릭터였던 것 같다.


학부 시절, 끙끙거리며 같이 스터디라는 걸 하면서 읽어 내려가던 문학 작품들에 심취하기도 하고, 시험을 앞두곤 밤새 작품을 읽으며 가슴 뭉클하고 아련했던 기억들, 그러나 인생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던 20대 초에 막연하게 읽었던 그 작품들을 30대 중반을 훌쩍 넘어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그 강도와 깊이는 너무나 달라서 가끔은 그 다름에 혼자 짐짓 놀라기도 한다. 나중에 다시 읽게 되면 그땐 또 다르게 읽히겠구나 하면서, 내가 지금 보는 이 세상이 다가 아니겠구나 하는 것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철없던 학부시절 접하게 된 문학과의 만남이 내가 어떤 일을 하든 항상 나의 fundamental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문득 문득 깨닫게 되고, 그럴 때마다 인문관 앞 가파른 언덕길과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언더우드 상 앞 교정의 모습, 빼곡히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들었던 교실의 모습을 떠 올리게 된다.


책장에 꼽혀 있는 American Literature 책을 꺼내 펼치니 너덜해진 책갈피 사이로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하나 눈에 띈다. 학부시절 친구들과 떼를 지어 꺄르륵 웃으며 걸어 내려오던 백양로의 옛 모습이 창문너머로 보이는 정원 모습처럼, 지금인 양 머리 속에 그려진다.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