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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후배들에게 (88 전성철) (2008.10.02)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후배들에게


88 전성철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흘러간 과거를 어떤 계기로 되돌아보곤 한다. 그런데 현재는 미래의 과거다. 과거의 좋은 추억이나 교훈을 기억할 필요는 있지만, 현재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에 과거가 되어 버릴 현재의 평도 달라진다.


난 어릴 때부터 일기를 많이 쓰곤 했다. 대부분은 다 사라지고 제주 집 어디엔가 좀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내 삶의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그런 감각을 놓친 시기는 삶에 지치기 시작했던 1999년 정도쯤이었다. 그 습관을 점차 잃다가 지금은 메모 습관으로 바뀌었다. 메모할 양이 많은 날이면, 내 생각을 사이사이에 적어 놓곤 한다. 나중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참고하기도 하고, 메모는 참 좋은 습관인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88년 신촌의 백양로는 ‘자유’였다. 어떻게 그 자유를 누릴지 몰랐었고, 그래서 군을 제대할 때까진 혼란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사랑…


1학년 때 나이가 나보다 많은 타 과 여학생을 첫 상대로 마음에 두었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랐던 기억이 난다… 농촌봉사활동(그때는 농활이라 했다) 가서 밤하늘을 보며, 써내려간 편지가 기억이 난다. 편지에 대한 답장을 지금 떠올리면… 사랑 그것 해 볼만 하다. 하하하. 언제 연락이 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결혼해서 미국 마이애미에 산다는 이야길 오래 전에 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점수 잘 받는 학생이 되기보다는 사람 좋아했던 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가는 편이였다. 수업도 중요하지만, 사람 모이는 곳을 그리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회, 학회 선배와 동료들과 어울리게 된다. 이때 읽었던 책이나 만났던 사람의 영향은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고, 사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시금석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가 살면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떤 책을 읽고, 그리고 어떤 환경에 내가 놓여 있느냐는 사람들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1학년 중간고사 직전, 서울대학에 있던 고향 선배가 주한 미군 철수를 외치면서 자살한 사건은 그 당시 충격으로 기억된다. 이 일로 말미암아 전혀 정치적일 수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는 내가 정치적으로 되어가던 시기로 생각되고, 언제나 ‘반체제’일 수밖에 없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비판과 논쟁듣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잘 다듬어지지 않은 나였기에 ‘실수’도 참 많이 했다. 물론 난 혁명가도, 운동가도 아니었지만 대의명분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정의나 인간애에 기초한 내 가치관, 사회관, 대인관은 이때 구체적으로 형성된 셈이다. 아직 신을 알지 못했던 시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나고 보면, 그때 느낀 자유는 내 또래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나만의 특권이었고,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를 가능케 한 모든 힘들에 대해서… 지금도 군대나 해외 유학, 집안 사정 등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도중에 휴학을 하고 학교를 떠난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비판에 대한 공포로 인해 군대로 피했다.


절망, 소심함, 의기소침 등은 개인 자신의 감정상태일 뿐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나쁜 감정이라 생각한다. 자유의지란 말이 있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위대한 사실은 우리를 있게 하신 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이나 어떤 좋지 않은 감정도 이겨낼 수 있는 ‘자유의지’를 누구나, 어느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았던 감정을 하나라도 떠올려 보아라. 그리고 그 좋았던 감정을 잃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해 보아라. 물론 힘든 일이다. 어쩌면 이런 노력 하나하나가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는 것이기에… 자연의 법칙은 우리가 누군가를 시기하고, 편안하게 지내려고만 하고, 비판을 하거나 받는데 익숙하고, 열등감에 쌓이게 하는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혹 성공하였다면 그런 감정을 가져온 원인을 생각하고 생각해서 그 감각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그 감각을 기억해내고 또 재연시키려고 노력하라.


나를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은 두려운 게 있다고 한다. 가난, 비판, 아픈 것,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늙는 것, 그리고 죽는 것… 가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돈을 찾기는 하지만, 평생 그럴 뿐 존경 받는 부자가 되질 못한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고 진정으로 간절한 꿈이 없기 때문이다. 됐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주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보다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입만을 원한다. 대부분 95% 이상의 사람들이 간절한 목표가 없다는 놀란 만한 사실은 수십 년 전 예일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에도 나타나 있다.


세상의 가치는 참 많다. 테레사 수녀님과 같이 희생과 봉사의 삶도 위대하고, 토마스 에디슨 같이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킨 점도 가치롭고, 종교적 신념이나, 아침에 일어나 사무실을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도 나에게는 가치롭고, 사무실에 우유를 배달해줘 내 아침끼니를 해결해주는 야쿠르트 아주머니도 가치롭다. 그런데 다 가치로운데, 난 가난이란 것은 사람의 영혼조차 파괴시키기에 내 주위 사람들이 가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난하면 인간이 누려야 할 당연한 가치로움이 그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가난의 정의는? 지나가는 고급 승용차를 보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시기한다면, 그는 지금 가난한 사람이다.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데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 뿐더러 가난한 사람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아직도 내 영혼을 파는 일을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아직 나 역시 가난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에겐 꿈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 때문에 감옥에 가기도 한다. 내가 아는 분은 신도 우리가 가난하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셨다. 부를 쌓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나누느냐가 문제라고…


아까도 내가 언급했듯이 내 대학생활은 똑똑한 사람들이 주위에 항상 있어 왔고, 지금도 잘난 사람이 많다. 그래서 늘 비판과 논쟁에 익숙해지면서도 두려워한다.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보아라. 그들이 사람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지…


비판은 인간의 본성에는 원래 없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두려움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내 실수에 지레 겁먹기도 하고, 침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식의 양에 대해 늘 자신 없어 하고, 내가 남과 다르면 늘 불안해한다. 열등감이 강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공식적인 자리에 늘 침묵을 지킨다. 발언을 하면 비판 받을 것 같아서…. 과거의 나의 모습이고, 지금도 모든 것을 다 극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늘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난 절대자를 믿어도 좋다고 본다. 다만 이런 두려움의 본질을 먼저 안다면 좋을 것 같다. 내 마음에 떠올려지는 것이기에 떠올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분야에 대해 많이 알아서 두려움이 덜하다고 생각한다면, 많은 지식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그 한계는 있다. 우리 인간이 안다면 얼마나 알 것인가? 난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으면서도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이것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막연한 낙관주의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신은 우리가 불행하게 살다가 아무 의미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사귀어라. 값진 배움은 바로 이런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을 주위에 가까이 함으로써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 빨리 해라. 청춘이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내가 18년 전 대학에서 느낀 그 자유는 이런 진리를 알게 하려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