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Regarding Yonsei

88 이문희

나에게 있어 ‘연세’는 어떤 곳인가, 무엇이 나의 대학 시절을 표현할 적절한 사건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내가 좋아하는 3개의 단어를 떠올렸다. 지금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눠주는 이 말들은 돌이켜보면 연세가 나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이었던 듯하다.

CHANGE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1988년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르게 입시제도가 바뀌어 선지원/후시험 제도가 시행되는 해였다. 그 당시 나를 둘러싼 수식어는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생”이었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대신, 늘 안전지대에만 머물게 하는 보이지 않는 굴레였음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나의 모의고사 점수로 안전하게 지원할 수 있는 곳은 K대였다.

그러나 나는 일찌감치 ‘점수가 넘친다 해도 S대를 가지 않으리라, 특별한 사람들의 소중한 신념으로 세워진 연세를 선택하리라’고 마음먹었을 만큼 연세를 바라고 있었기에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19년의 인생 중 가장 치열한 고민 끝에 지원,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러나 합격보다 더욱 뿌듯함을 안겨주었던 것은 접수 번호 5번. 그 번호는 이제까지 안전한 길로만 다녀왔던 내 삶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숫자였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세상과의 싸움에 앞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 그 이후로 나는 변화를 시도하고, 다가오는 변화를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내공이 생겼다. 오늘의 기업 환경에서 “변화와 혁신”은 이제 더 이상 이슈조차 아닌 필수 요소가 되어 버렸다. 일정한 시기와 특정한 주제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닌, 날마다의 생활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격동의 시기에, 어제까지 내가 이룬 성과에 머물기보다, 오늘 내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가가 중요한 세대에 이제 나는 또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생각한다. “You must be the change you wish to see in the world.” 라는 간디의 말을 오늘도 내 마음에 가득 채워본다.

*^^* 뒷얘기 한 토막­입학 후 내가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접수번호 1번인 K양, 그녀는 지금도 저의 Role Model인 멋진 친구입니다 *^^*

CHALLENGE

입학 후 얼마 안 되어, 강의가 끝나자마자 남자 동기들이 우르르 사이좋게 교문을 빠져 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술을 마시진 않을 텐데 어디를 가는 걸까?’ 알고 보니 그곳은 다름 아닌 당구장. 태어나서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영화 속 불량한 사람들이 모이던 이미지가 전부인 그 곳. 그런데 문제는 그리 불량하지(?) 않은 친한 친구들조차 유쾌하게 그곳을 드나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친구의 권유로 드디어 그곳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그곳은… 생각보다 건전했다, 아니 좀더 솔직히 표현하건대, 깨끗한 초록 매트 위에 반짝이는 공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맑은 소리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 오는 까닭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여학생은 나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날 이후, 가까운 친구를 따라 몇 번을 더 다녀온 후 서서히 ‘나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매사에 열심이었던 나는, 구경꾼이 아니라 게임에 참여하는 Player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당구를 꽤나 한다는 동기를 ‘師父’로 모시고 그리 붐비지 않는, 친절한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 당구장을 ‘學習場’으로 정했다. 나는 전혀 Boyish한 여학생이 아니었다. 뾰족한 힐을 주로 신었고,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나 어깨가 봉긋하게 솟은 공주 풍의 옷을 즐겨 입었다. 그런 사람이 매일 강의 후 당구장으로 향했으니… 처음엔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던 사람들의 시선이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가벼워졌고, 전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즐거움이 내 안에 차올랐다. 그 당시 가격은 10분에 350원! 지금과의 가격 차이만큼이나 의식 차이도 많았던 시절. 나는 그렇게 내면의 소리에 솔직하게 반응함으로, 나도 모르게 관습과 고정관념의 틀을 벗는 學習을 시작했나 보다.

1996년, 5년간의 MKT 경력을 뒤로 하고 Training 업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 회사의 교육 프로그램은 업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었다. 기업교육을 전혀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 기존의 틀과 무관하게 마음껏 그려낸 프로그램들이 뜻밖의 성과를 얻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06년, 이전에 더욱 높이 쌓인 경험들이 ‘도전 정신’의 가장 큰 장애물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적는 오늘은 계기로 내 안의 Challenge Spirit에 쌓인 먼지를 털어야겠다. Let me win, but if I cannot win, let me be brave in the attempt!

*^^* 뒷얘기 한 토막­제 당구 실력이 어떨까요? 불행히도 나를 가르치던 ‘師父’는 중간에 저를 포기했답니다. 문제는 내가 각(角)을 보는 눈이 심각하게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요? 나는 내가 원하는 것에 도전하여 후회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CHOICE

4학년 여름, 나는 졸업 후의 진로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20대의 시기에 많은 것을 경험하여 여유 있고 능력 있는 30대를 맞이하고자 뭔가 남다른 것을 배울 수 있는 Exciting한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때 교양 강좌를 통해 만난 한 여자 선배의 모습은 대기업을 향한 나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부속품의 하나일 뿐, 그 중에 더 중요한 부속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건만, 세상 모든 것이 가능하게 느껴졌던 그때의 나로서는 그 선배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었다. ‘뭔가, 나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겨질 뜻 깊은 일은 없을까…’

그러던 중 K선생님으로부터 3개 회사의 채용 정보를 전달 받았다. 잘 알려진 두 개의 이름과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이름 하나. 나는 앞의 두 회사를 먼저 방문하여 인터뷰를 하였고, 두 곳 모두 나의 결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나 지극히 평범한 업무인 탓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제의 그 이름 없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도대체 어떤 곳인지 설명이나 들어보자’ 하는 맘으로 방문한 그 곳은 정말 허름한 임시 사무실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담당자가 보여주는 홍보 비디오를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내릴 결정을 직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전혀 없었던 새로운 Concept의 Restaurant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 그 과정에 참여하면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도움이 될 값진 것을 얻을 것이라는 느낌에 나는 그리 오래 생각지 않고 이곳에서 사서 고생을 해보기로 결정하였다. 아직 중간고사도 치르지 않은 1991년 10월 15일, ‘도대체 그게 무슨 회사인데? 네가 레스토랑에서 뭘 하는 건데?’ 라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뒤로 하고 나는 첫 출근을 하였다.

올 가을이면 Restaurant Industry에서 일한 지 꼭 15년, 지금의 회사에서 일한 지는 13년이 된다. 입사 초기 동기 모임에서 저마다의 명함을 교환할 때 나는 내 일과 회사가 명함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음이 종종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높은 급여와 그 회사의 Benefit이 부러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부러움과 내 선택을 맞바꾸기 전에 나는 나의 선택에 충실하고 싶었고,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나는 내가 얼마나 감사할 만한 시간들을 보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선택의 연속인 인생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걸 얻게 되는 것을 우리는 성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뭔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얻게 되는 것, 우리는 그것이 행복임을 종종 잊곤 한다. 이제는 가족이 되어 버린 좋은 사람들, 그들과 함께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함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마음 다해 일해 온 지난 15년, 이것이야말로 연세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Choose your love, Love your Choice!

자신의 선택을 사랑하라는 귀한 가르침은 영미 희곡 시간에 배운 것이었다.

Change, Challenge, Choice…

내가 마음에 깊이 담고 있는 단어들을 학창 시절의 사건들에 짝지어 적어 보았다. 이 글이 후배들에게도 나름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우리보다 더 해박하고 똑똑한 후배들… 그들이 쌓아온 지식 위에 선배들의 지혜를 얹어 세상을 더욱 살기 좋게 만들어 갈 멋진 연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상의 시간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숙제를 주신 교수님께 늦은 감사를 드리며, 우리 연세의 진정한 설립자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Yonsei,

You are truly a special cradle of my life.

Along the Baekyangro I dreamed dreams.

Near there, I sang songs with my friends.

Someday I will tell these tales to my children.

Even though you forget my name,

I would always remembe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