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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나에게 있어서의 영문학 (88 송효원) (2008.10.02)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나에게 있어서의 영문학


88 송효원




“안녕하세요. 송효원입니다.”


언제나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하게 되는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첫마디이다. 그러나 항상 이것은 시작일 뿐 나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전달해 주지 못한다. 그러면 바로 뒤이어 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한다. ‘그런데 어느 회사에 다니세요’ 혹은 ‘어떤 일을 하세요’ … 이제는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범주를 규정할 때 사용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물론 그 다음 또 다른 부가적인 질문들이 나온다. 언제부터 그 일을 하셨어요? 회사 위치가 어디에요? … 즉, 언제부터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직업을 위주로 한 범주로 분류되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다시 되짚어 보면 이것은 나에게 상당한 변화였던 것 같다. 한 10년 전 아니 7∼8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의 질문은 나의 대학 혹은 과에 대한 것이었다. 1988년에서 거의 10년 그러니까 1998년까지 나는 그렇게 분류되고 있었다. 어느 대학, 어느 과 졸업생.


그때마다 나는 조금은 남보다 많은 시간을 소모했었다. 지금도 인정을 하지만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학생이라는 많이 자유로울 수 있는 특혜 받은 위치가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거의 10년을 연세대학교를 다녔었다. 영문학과 학부 4년, 영문학과 대학원 2년 반 그리고 연세어학당 6개월, 그리고 후에 저녁에 경영대학원 2년 반. 교정을 거닐 수 있었던 10년 가까운 세월에 나는 항상 연세대학교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길다면 길었던 자유로웠던 시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그것을 많이 잊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이력서에서 점점 밀려가는 나의 학교이력과도 같은 것 같다. 이제는 쓰여 있어도 거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언젠가 문득 2006에서 1988을 빼 보았다. 18년 선배님들께는 우스운 이야기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놀라운 숫자였다. 이제 2년만 지나면 20년이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현재 1학년의 학생들에게 지금부터 20년 후를 상상해 보라고 하면 아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숫자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나의 저변에는 영문과라는 것이 깔려 있다는 것을 문득 문득 느끼게 된다. 한 1년 전에 출장을 갔을 때에 나는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으로 취급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본인이 가진 이상형에 대하여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얘기하였었다. 숫자에 능하고 줄낚시를 취미로 가질 수 있는 사람.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호기심을 보이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마치 점쟁이가 내뱉는 말처럼 들렸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다양한 뜻풀이가 계속되고 많은 사람들은 구체성을 띠고 싶어 했다. 급기야는 구체적인 인물에 대입하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가진 속성의 의미로 풀이될 수 있는 상당히 모호한 것이었다. 거의 1시간의 농담이 계속되었고 마지막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를 즐길 수 있었다. 거의 한밤이 되어서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학교 때 전공이 무엇이었느냐고? 그들이 가진 나의 현재의 모습, 혹은 그 이전의 직업을 가지고는 이런 재미있는 선문답을 이해하기 어려웠나보다.


내가 영문학이라고 했을 때 갑자기 사람들은 이해가 간다고 나름대로 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외국 사람들에게는 영문학을 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의 전공을 묻기 시작했다. 현재는 거의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만 참 다양한 전공을 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나에게 제일 재미있게 느껴졌던 전공은 라틴어, 라틴문학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 후 본사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빙그레 웃으며 “아, 네가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이구나.”라고 얘기를 하곤 했다. 그들에게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또 어떻게 해석이 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후 그들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도 나를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정형화된 구분을 가지고 나를 파악하다가 난관에 부딪치면 꼭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럼 전공이 무엇이었냐고. 그리고 내가 “영문학”이라는 대답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반응을 하곤 한다. 물론 많은 경우가 지나친 합리화일 것이고 그리고 또 많은 경우가 추가적인 정보로 인한 이해의 증가일 것이다. 여전히 영문학 대학원을 나오고 회사에 다니는 경우는 흔하지 않으니까 영문학 대학원에 대하여서는 좀더 많은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물론 영문학을 대학원까지 졸업했다는 것이 가끔 혹은 나에게서 발견되는 특이함을 설명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삶에서 발견되는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 영문학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나름대로 뿌듯함을 느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을 때 어떤 사람이 물은 적이 있다. 영문학 대학원을 나왔는데 계속 공부를 하지 않고 취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다. 대학 4년의 공부로는 영문학을 전공하였다고 얘기하기에 좀 부족한 것 같았다고. 물론 학부 때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던 이유도 크지만 그래도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좀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해 주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영문학은 내 삶을 이해하고 주변을 이해하는 데에 근간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언젠가 나는 다시 영문학 공부를 하고 싶다. 현재는 예전에 읽었던 혹은 읽으려고 사 모았던 책들이 책장의 장식품이 되고 있고 손에 들고 있는 책은 『해리포터』 정도이지만 예전의 묵직한 책들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여전히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