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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나와 연세대 영문과 (88 서일호) (2008.08.31)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나와 연세대 영문과


88 서일호




고3 때였습니다. ‘범생이’ 외모와는 달리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딴따라’ 기질이 꿈틀거렸던 저는 연극영화과 진학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려는 학교 방침에 따라 서울대 불문학과 지원을 제안 받았습니다. 결국 ‘블랙리스트’에 올라 교장 선생님과 개별 면담을 하게 됐습니다.


교장선생님 :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나: (대학에서는 영어와 인간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연극영화과 대학원 진학을 하자는 생각에서) “연세대 영문학과에 지원하겠습니다.”


교장선생님: “내가 연세대 영문학과를 나왔는데 교장선생님 하려고요? 입학하면 학과장에게 안부 좀 전해줘요.”


이렇게 저와 연세대 영문학과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선지원 후시험’이라 무척 불안했지만 다행히 ‘88 꿈나무’로 합격했고 수업내용도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잘 맞았다’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그만큼 좋았던 시절은 조선일보 뉴욕 연수특파원 시기(2004∼2005년)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유롭게 인간을 탐구하고 문화에 심취했던 그 시절 말입니다.


저희 88학번 남학생 5명(서일호, 한윤철, 조동진, 노인철, 김종민)과 여학생 5명(이문희, 정수희, 김은영, 김선민, 김보영)은 의기투합해서 한국어로는 ‘소리샘’, 영어로는 ‘YELL(Yonsei English Language & Literature)’이라는 노래패를 만들어 대학가요와 민중가요를 불렀습니다. 저희는 함께 노래하고 함께 공부하며 함께 인생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88학번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최종철 교수님 집에서 선후배들과 파티를 하다가 함께 동침했던 날이 기억나네요. 학교 안에 있는 교수님 거처였는데 저를 비롯한 학생들은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하게 된 것 같습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이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1992년 여름방학 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런던에서 버스를 타고 스트래드포드 어폰 에이븐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너무 아름다워서 시가 절로 흘러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냈는지 그 비밀의 정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연세대 영문학과를 다니면서 얻은 재산은 무엇보다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를 가르쳐주신 이상섭, 조신권, 손한, 임철규, 조성규, 조철현, 김태성, 김성균, 원한광, 원은혜, 서도륜, 최종철 등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모든 선배님들이 훌륭하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대학시절 제가 닮고 싶은 학과 선배는 김동길, 봉두완, 최인호 선배였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봉두완 선배의 ‘말 솜씨’와 최인호 선배의 ‘글 솜씨’였습니다. 저는 두 분의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1994년 저는 조선일보에 입사했고 ‘언론사’와 ‘동문’이라는 상황을 잘 활용해서 두 선배와는 좋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2년 주간조선에 근무하면서 봉두완 선배에게 ‘내 인생의 자장면’이라는 연재물의 원고를 청탁했습니다. 지금까지 먹었던 자장면에 대한 추억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을 소개하는 글인데, 처음에는 “요즘 너무 바쁘다”며 양해를 구하던 봉 선배님은 연세대 영문과 후배라는 말에 친필로 쓴 원고를 일찌감치 배달해주셨습니다. 내용도 봉 선배 기자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로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또 여러 번 조우하면서도 눈인사만 해오던 최인호 선배와의 끈은 2003년 ‘피카소 판화전’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함께 피카소 판화전을 감상하고 최 선배 원고를 받아 교정을 봤습니다. ‘감히 제가 최인호 선배 원고를 수정하다니.’ 최 선배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글자 몇 개를 고치면서 짜릿짜릿한 기분까지 느꼈습니다.


이 밖에도 5년 동안 제가 연재한 ‘스타클릭’이라는 코너를 통해서는 88학번 동기인 황현정 아나운서를 인터뷰 대상으로 만나 소중한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또, 대학시절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미래를 이야기하던 88학번 동기 임찬상은 영화 ‘효자동 이발사’로 충무로의 유망한 감독이 되었고. 저는 ‘스타클릭’이라는 코너를 통해 ‘효자동 이발사’의 남자주인공 송강호를 인터뷰하게 됐습니다.


모두가 훌륭한 동문들이지만 특히 김동길, 봉두완, 최인호, 유덕형, 차범석, 김우옥, 오혜령, 안종익, 차수웅, 공지영, 강은교, 조성관, 김운라, 황현정, 정세진 등 세상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많은 인재들을 탄생시킨 연세대 영문과, 계속해서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