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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연세와 나의 인연 (87 김영숙) (2008.08.31)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연세와 나의 인연


87 김영숙



1. 5월 2*일 경영대학원 동기회




“김 과장님, 이○○ 사장님이랑 전○○ 부사장님이랑 두 분이 더 오실 수 있대. 저녁식사 두 분만 더 추가해 줘.” “네, 알았어요, 부장님. 30분 후에 뵙죠.”


“……”


“부사장님, 이번에 큰 따님이 이대 약대에 입학했다구요? 성공하셨네요.”


“하연이는 올해 입시죠? 부장님이 고3 같애요, 얼굴이 많이 핼쓱해 지셨어요.”


“김 과장, 그 집 간사장님 사업은 잘 돼? 요즘은 경기가 좀 나은가?”


“전 사장님, 사모님 가구점은 요즘 영업 좀 돼요? 베트남까지 출장 나가신 거 보면 파리 날리는 건 아닌가 본데요?


“김 사장은 아직도 발레 해? 일 년이 넘었나? 근데, 그 학원 김 사장 때문에 문 닫는 거 아니야? 골프채 장사하는 사람이 골프나 하지 왠 발레야, 발레는…”


“이 장군, 승진 축하해. 장군 되니까 역시 얼굴이 다른 걸.”




2달에 한 번씩 만나면서도 동기들은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로 1, 2차 합쳐 3∼4시간이 모임이 짧기만 하다. 졸업한 지 이제 5년, 함께 졸업한 25명의 동기 중 격월 동기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동기들이 13∼15명은 되고, 1년에 한번 있는 가족 동반 모임에는 식구 합쳐 35∼40명 정도, 이만하면 동기회 모임으로는 꽤 성공적인 모임이라고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2개월에 한 번 정기모임 외에도, 동네 별로 예고 없이 모이는 번개팅에, 그리고 골프회, 등산회 같은 부정기 모임까지 포함하면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나는 것 같다.




2. 5월 1*일 직장 동문 교직원 모임




“김 과장, 이게 얼마 만이야? 한 2년 만에 처음 나온 건가? 자주 좀 나오지?”


“네, 앞으로는 노력하겠습니다.”


“김 선배, 근데 영문과는 안 모입니까? 다른 과는 그래도 가끔 모이는 것 같던데. 저희 만난 게 한 2년 됐나요? 선배 바쁘면 그냥 후배들 보고 한번 자리 만들어라 한마디만 하면 되는 데 뭐 어렵습니까? 자주 좀 보게 해주십시오.”


그렇다, 내가 졸업해서 직장을 잡은 지 15년, 그동안 사내 동문회 모임은 연 2차례 정도 꾸준히 있어왔던 것 같은데, 영문과 선후배라고 모임을 가진 것은 겨우 두세 차례나 될까. 나 이후에 한참동안 영문과 후배들이 지원을 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영문과 후배들이 10명을 넘은 지금에 와서 보면 다 나의 무관심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문 관계가 끈끈하다는 고려대와 달리 연세대 동문회는 자유로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영문과는 더욱 그러하다. 졸업 15년 동안 영문과 총동문회라고 딱 한 번, 그나마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는 책임감에 밀려서 참석했고 그 전후로는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건 졸업 후 한 번도 동기회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영문 모르고 진학한 영문과여서 그런지 학교생활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늘 그냥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1학년 때 건강을 잃어서 학교를 5년 동안 다녔다는 점, 학교를 다니면서 교수님이나 동료 친구들과 같이 모일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점, 학업에 크게 흥미를 가지지 못했던 점, 진로에 대해 선배들과 깊이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여교수님이 한 분도 안 계셔서 여학생들에게 적절한 역할모델을 보여주지 못했던 점, 중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긴 4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교수님들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 등이 학교생활을 마치고 난 지금 내가 아쉬운 점들이다.


물론 그만큼 좋았던 일도 있었다. 수업이 아니어도 순수한 열정만으로 학생들에게 Ovid의 Metamorphoses를 읽어주시고 영문학에서의 신화적 유산의 의미를 자상하게 이야기해 주셨던 최종철 교수님,


수강신청 때 잠깐 찾아가 뵈면 바쁘신 가운데서도 30분씩 우리를 붙들어 놓고 Jane Austin의 Pride and Prejudice며 Bronte의 Wuthering Heights 등 우리가 꼭 읽어야할 책들을 하나하나 추천해 주시고 또 읽었는지를 확인하셨던 이상섭 교수님,


매 수업시간 시간을 넘치는 열정으로 가득 채우셨던, 풍성한 턱수염만큼이나 사랑이 넘치셨던 언더우드 교수님.


이렇게 멋진 스승님들께 직접 사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언제 돌이켜 생각해도 뿌듯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늘 소식을 주고받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역시 감사하고, 어느 곳에서든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것도 늘 고마운 점 중 하나다.




학교에 남아서 계속 교수님들과 또 우리 후배들을 대하는 나로서는 학교가, 또 영문과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가끔 고민하곤 한다. 학교하면 먼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말씀과 함께 진리 자유의 교훈은 언뜻 떠오르지만. 영어영문학과의 비전이나 교육목표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기억이 없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영문학을 교육하고 또 받아왔나, 우리는 어떤 영문인 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없고, 누구와도 이런 걸 주제로 이야기해 본 적도 없다. 이제 20년 동안 연세대학교 영어영문과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세 영문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TV에서 황현정 씨나 박선영 씨 얼굴을 보면 함께 수업 듣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반갑고, 최인호 선배나 공지영 선배의 신작 소식을 들으면 꼭 서점을 들러야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우리 학과가 앞으로도 더 커나가고 또 사회에서도 나름의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에 대한 뚜렷한 성찰과 함께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세우고 우리 모두 그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희전문학교 문과로부터 그 뿌리를 찾자면 91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영문학과가, 그 뿌리를 굳이 연희대학교 문과대학으로 스스로 한정할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90년의 역사를 한국에서 자리매김하는 시기였다면 앞으로 90년은 세계무대에서 우리 자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소망이다.


그러기 위해서 고마우신 은사님들께 외람되지만 작은 부탁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학생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셔서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학부생 대학원생 합하면 600명이 넘을 테니 그 이름을 기억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지도를 담당하시는 학생들 이름만이라도 기억해 주시면 안 될까요? 교수님께서 이름을 불러 주는 학생이라면 대학교 다닐 맛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