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Community

커뮤니티

"우리들의 60년"

제목
대학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하는 그 시절 (87 김명희) (2008.08.31)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대학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하는 그 시절


87 김명희




졸업하고 캠퍼스를 떠난 뒤 한참을 지나서, 학생이 아닌 사회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교정을 다시 밟은 때가 기억난다. 현실 세계에 있다가 갑자기 이상적인 세상 어딘가에, 꿈도 아닌 현실도 아닌 중간 지점의 어떤 세상에 온 느낌이 들었다. 그 묘한 느낌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도대체 내 학생 시절이 어떠했기에!


대학 생활을 시작한 그 해는 여러 모로 어수선한 시기였다. ‘이한열’, 끊이지 않았던 최루 연기, 그리고 6·29선언. 단체적인 수업 거부가 이어지면서 갈등했던 그 시절들… 수업 거부를 인정해 주신 교수님도 계셨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며 결국 학점에 그대로 반영하는 교수님도 계셨다. 그렇게 내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저 막연한 기대로 영문학과에 들어오고 나서, 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지 못한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어와 문학이 어려워서이기도 했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학우들과 잘 친해지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아쉽다. 정말 좋은 시기들을 그냥 흘려보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인생에 대해 좀더 진지한 고민을 하며 준비할 시기에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험. 그렇다. 지금은 나와 상관이 거의 없는 단어, 시험이 생각난다. 시험은 늘 우리를 부담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족보도 구해보고, 열심히 준비도 해보지만 늘 피해 갈 길을 찾게 된다. 모 교수님은 잘 설득만 하면 기말 시험을 안 보고 report로 대체해 주신다는 소문이 있었다. 학기를 마감할 즈음, 우리는 뭔가를 준비해야 했다. 한마디로 하자면 ‘아부’인데, 어쨌든 작은 파티가 열렸다. 몇몇 학우들의 재능이 그 시간 빛을 발했다. 가야금 연주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다른 것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여러 가지 발표로 우리들도 즐겁고 특별히 교수님도 즐겁게 해 드렸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한 과목의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웠던 그 시절…


스피치 II 시간! 학점을 잘 준다고 소문이 난 교수님 반으로 수강 신청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반으로 학생들이 너무 많이 몰린 것이다. 몇 명은 다른 반으로 가야만 했다. 그때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난 10명도 채 안 되는 학생들이 듣는 반으로 옮겼다. 자신은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1교시 수업 시간 9시를 알리는 종이 치면 “Number One”으로 시작하는 매시간의 퀴즈는 교문에서부터 종합관까지의 그 긴 길을 달려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처음 수강 신청을 한 반에 있었다면 세 번의 발표로 끝났을 것을, 난 그 학기 일곱 번의 발표를 하고 스피치 수업을 마감했다. 학기 내내 쉽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벽돌.’ 영문학 개관 시간에 들고 다녀야 했던 벽돌이 지금도 책장 한 구석에 꽂혀 있다. 가방에 넣을 수 없을 만큼 두꺼워서 그 책을 따로 들고 다니는 것으로 영문학도임이 드러났던 그 책. 새삼 꺼내서 들쳐보고 싶다. 그때 어떤 작품들을 배웠던가!


고등학교 시절, 특활로 ‘영어 소설 읽기’를 하면서 번역이란 것에 관심을 갖고 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처음 생각과는 좀 달라서 조금 방황하며 보낸 시기들도 있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시보다는 소설 쪽이 좋아서 소설 과목을 좀더 수강하면서 재미있는 소설도 많이 읽고, 소설 속에서 영어 문체의 변화도 살펴보며 놀라기도 하고… 번역에 대한 관심으로 국문학을 부전공하면서 국문학과의 과목을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영어를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영문학과에 작은 기도 모임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영어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던 모임이었다. 또 학기를 시작할 때는 개강 예배도 드렸다. 함께해 주셨던 고소웅 교수님, 조신권 교수님이 생각난다. 영문학과의 커다란 규모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모임이었지만, 크리스천이었던 내게는 참 귀한 모임이었다. 좋은 선배와 후배를 만나고 또 교수님을 만났던…


뭔가를 배워서라기보다는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 시절을 돌아보며 새삼 감사하게 된다. 한 살 많은 오빠와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부모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장학금도 받으려 애써야 했고 아르바이트도 계속 해 가야 했지만, 수업 듣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이런저런 토론을 하면서 내가 배웠던 것들을 생각하면 그런 부담들은 너무 적은 것이었다. 가끔은 캠퍼스를 거닐며 그저 지금의 대학생들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들의 삶과 지금 현재 내 삶을 생각해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