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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1971년 그해 봄 (69 최명규) (2008.06.08)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1971년 그해 봄


69 최명규




1971년 1월말경 어느 날이었다. 3학년 진급을 눈앞에 둔 우리들은 제3회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영어연극 경연대회에 참가할 스탭과 캐스트로서 첫모임을 가졌다.


연출은 필자 최명규, 기획은 전용호, 배우들은 기획을 맡았던 전용호, 박세언, 이원기, 이미숙, 채희옥 등이었다. 2학년 2학기 과대표였던 김한일은 2학년초 ‘영어영문학과 문학의 밤’에서 극작과 연출을 맡았던 필자의 경력을 참작하여 필자를 연출로 추천했다. 필자는 2학년초의 영어연극 경연대회에 참가했던 급우들을 제외하고 공연 작품의 인물과 성격을 감안하여 다섯 명의 배우들을 선정했고, 선정된 배우들은 선뜻 그 캐스팅에 동의해 주었다.


공연작은 2학년 첫학기 현대영미희곡 담담 강사님이셨던 한상철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작품, The Pot Boiler였다. 작가는 당시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00년대초 미국 시카고에서 활발히 창작 활동을 벌였던 여성작가, Alice Gerstenberg였다. 그녀는 처음엔 소설가로 창작 생활을 시작했지만, 후반기엔 번안극 Alice in Wonderland, 단막극 Tuning In 등의 극작품으로 유명해졌으며, 중부지방 작가협회 회장, ‘시카고 극작가들의 극장’장을 맡기도 했다. 작품 경향은 대사를 통해 등장인물의 의식과 무의식 세계 혹은 인간의 본질적 성격을 다소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드러내보이는 게 특색이었다. The Pot Boiler는 단막극이면서도 극중의 극이 나오며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배우들이 극중의 극작가에게 총을 겨누는 가운데서 막이 내리는, 의외의 역설적 반전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첫모임에서 필자는 작품 사본을 한 부씩 나누어 주었고, 다음 주부터의 리딩을 출발 신호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연습 스케줄을 안내, 설명해 주었다.


배우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전용호는 일학년 때부터 문학은 물론 철학과 신학에 관심을 많이 보여 인문학적 탐구 정신이 강했고, 모든 면에서 재기가 돋보였던 친구였다. 박세언은 당시 복학생이었는데, 늘 마음씨가 좋은 형님 같으면서도 학업과 맡은 일에 충실한 면을 보였던 모범 학생이었다. 이원기는 언제나 인생의 의미를 심각하게 반추해 보는 듯 진지한 표정이었고, 굴다리 앞 막걸리집에서 신의 존재 여부에 관한 토론에 들어갈라치면 유무신론에 관한 특유의 박학다식함으로 주변을 놀래키는 친구였다. 채희옥은 항상 단정한 옷차림에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언행이 모범적이어서 누가 봐도 참한 며느리 감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미숙, 그녀는 입학 시 영문과 톱으로 들어왔고, 입학 후에도 한 학기를 제외하곤 줄곧 영문과 톱을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졸업시 전교 톱을 차지한 재원 중의 재원이었다. 물론 캐스팅을 할 때 여러 가지를 감안했고, 예나 지금이나 영문과에서 우수하지 않았던 급우들이 있었겠냐마는, 그처럼 훌륭한 급우들을 스탭과 배우로 선정하여 그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조 하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던 건 연출자였던 필자로서는 크나큰 행운이었다.


아무튼 두 달 가까이 배우들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대사 외우기, 연기 연습, 당시의 학내 피스코 미국인으로부터의 발음 교정 등등 스케줄대로 공연을 위해 막바지 연습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던 3월말경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우리들은 오전 연습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오후 연습을 위해 문과대학 다락방 강의실에 모여 쉬고 있을 때였다. 먼저 와 있던 이원기는 칠판에 있던 분필을 들고 강의실 입구 문을 향해 야구 피칭 연습을 하고 있었다. 와인드업, 스냅 동작을 거쳐 날아간 분필은 간혹 문 한복판을 정확하게 맞춰 보는 사람의 감탄과 웃음을 자아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원기가 마지막으로 분필 한 쪽을 힘차게 던지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면서 채희옥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동시에 날아가던 분필은 그녀의 눈을 정통으로 맞춰 버렸다. 그걸 보고 있던 우리들은 경악에 사로잡혔고, 채희옥은 아악, 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필자는 곧장 채희옥에게 달려갔고, 어깨를 잡으면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처음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고는 나의 부축을 받으면서 기꺼이 일어섰다. 그리곤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면서 눈을 떠 보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오른쪽 눈이 안 보여요. 오른쪽 눈이 안 보여요.” 하면서 다시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주변에 있던 모든 배우들이 대경실색했고, 필자는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겨우 열흘 정도밖에 안 남겨둔 공연도 큰 문제지만, 만약 연극 연습을 하다가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처녀가 눈이 멀게 되는 사고를 당한다면 이 연극팀의 최종 리드격인 필자로서는 그 도의적 책임감을 일생 동안 면할 수 없지 않겠는가. 필자는 눈앞의 현실을, 그녀의 비명을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았다.


물론 분필을 던졌던 이원기 또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당황한 마음에 어떻게 할 바를 몰라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다시 그녀의 눈을 떠 보게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울먹이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는 이제 연극이고 뭐고 그녀의 눈을 결코 멀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곧장 세브란스병원으로 데려갔다.


담당의사는 즉시 입원 절차를 밟게 했고 치료 경과를 봐야 알겠지만 실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참으로 막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두 달 여의 연극 연습은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고, 얼마나 나올지 모르는 치료비도 걱정이었지만, 어쩌면 앞날이 창창한 여대생의 눈이 멀 수도 있게 되었으니… 우리들은 할 말을 잃었고, 이원기는 자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필자는 또 연출자로서, 연극 연습의 총책임자로서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든 게 새롭고 경험이 부족했던 우리들, 젊은이들로서는 처음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어려운 장애물을 만났다고 해서 삶을 멈출 수 없듯, 공연을 열흘 앞으로 남겨둔 연극을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들은 채희옥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며 연극 연습은 다시 계속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이심전심으로 동의했다.


필자는 즉각 당시 과대표였던 김진숙과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녀는 채희옥의 대역으로 2학년 때 영어연극 경연대회에 나간 경험이 있는 이혜련을 추천했다. 필자는 곧바로 그녀를 독수리 다방에서 만나 2시간 가까이 작품의 스토리를 얘기해 주는 것은 물론 그녀가 맡아야 할 인물의 성격과 작품에 대해 상세히 해설해 주었다. 이혜련은 본래 필자가 이미숙이나 채희옥 못지않게 배우로 선정하고 싶었지만 보다 많은 급우들에게 연극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캐스팅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연극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판국에 그런 원칙을 고수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혜련은 다음날부터 당장 연습 장소에 나타나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연습에 열중해 주었다. 기대했던 대로 그녀는 작품에 대한 소화력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다른 배우들 못지않게 대사를 달달 외웠으며, 타고난 연기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었다.


물론 연습을 하는 동안 필자는 매일 채희옥의 병실에 들러 그녀를 위로했고 치료 경과를 담당의사에게 문의하곤 했다. 그동안 채희옥이 양쪽 눈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본인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실명을 하게 된다면 그녀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담당의사는 환자의 실명 염려는 안 해도 좋을 것 같다는 희소식을 필자에게 알려주었다. 게다가 채희옥은 치료비는 부모님께서 모두 부담하시겠다고 하셨으니 이원기 씨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를 전해 달라고 했다. 병실에서 만난 그녀의 오빠 또한 누구도 다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던, 불의의 사고였으니 채희옥이 운이 없었던 탓으로만 돌렸다. 넉넉한 마음씨를 보여줬던 그녀의 가족 앞에서 필자는 송구한 마음을 더욱 금할 길 없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배우들은 연습에만 한층 열중할 수 있었던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려움과 좌절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는 더욱 값지고 기쁜 일이 되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3개 학년 공연 작품 중에서 3학년 공연작이 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것 같다. 특히 남자로부터 배신당한 여자의 분노를 무척이나 실감나게 연기했던 이혜련과 담배라면 냄새도 맡지 못했으면서도 담배 피우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도 잘해 내는 등 몸을 아끼지 않고 성실하게 연기에 임해 준 여주인공, 이미숙에게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 주었다. 고 오화섭 교수님께서는 필자를 따로 불러 3학년 연극이 가장 잘 되었다고 등을 두드려 주시기도 하셨다.


공연이 끝나자 필자는 3개월여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인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연극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충만감을 느끼는 동시에 알 수 없는 허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