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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마리아브론 수도원의 밤나무 (69 조정태) (2008.06.08)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마리아브론 수도원의 밤나무


69 조정태




‘연세’하면 내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백양로의 끄트머리, 언더우드동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입구에 서 있는 키 큰 플라타나스 나무다. 영문과 2학년 때 동기생 최종철 군과 그 플라타나스 아래를 지나갈 때 그는 그 나무를 가리키며 헤르만 헤쎄의 『지와 사랑』에 나오는 마리아브론 수도원의 입구에 서 있던 밤나무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그 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마리아브론 수도원과 『지와 사랑』이 생각나곤 하였다.


나는 대학시절에 도스토예프스키와 헤르만 헤쎄의 작품에 심취하여 당시 번역되어 있는 작품들을 거의 모두 찾아 읽었었다. 데미안, 나르찌스와 골드문트, 수레바퀴 밑에서, 황야의 늑대, 싯달타, 유리알유희, 게르트루트 등 항상 감성과 지성 사이에서 구도자적인 자세로 인생을 탐구하고 모색해 가는 주인공들의 감미로우면서도 우수에 차고 또 고뇌에 찬 인생역정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 헤쎄의 작품들 속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인생의 참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만큼 헤르만 헤쎄의 작품세계에 경도했기에 그 나무는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는 것이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청송대와 숲길을 산책하고 페터카멘진트와도 같이 구름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기고 도서관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곤 했던 그 시절들은 나의 성장사에서 헤쎄의 『지와 사랑』에 나타나는 지성과 감성, 자기수련과 금욕으로 상징되는 나르찌스의 세계와 열정과 감성과 예술로 상징되는 골드문트의 세계 사이에 걸쳐 있었다고나 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막연한 동경과 모색, 진리와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구도자적 갈증과 사랑과 열정을 추구하는 젊음의 방황 가운데서 나를 이끌어준 것들은 당시 선생님들의 사랑과 배려였고 친구들의 우정이었다.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영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지 오래지 않았던 젊은 소장학자, 이상섭 교수님의 문학개론 강의시간은 늘 흥미진진하였고 문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게 해주었다. 당시 대학교회와 관련된 “신신클럽”이라는 작은 모임이 있었는데 이 모임에서 이상섭 교수님이 『실락원』과 『햄릿』에 대해 특강을 하신다는 말을 듣고 유인국 군과 함께 이 모임에 참석해서 정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강의실과 도서관을 주로 들락거리던 나르찌스적 대학생활에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한 것은 단연 연고전이었다. 노천극장에서의 사흘 간의 응원연습, 첫 연고전을 치르고 나서 종로로 시가행진을 한 뒤에 광화문 한복판과 지하도에서 춤을 추며 응원구호를 외치고 노래했던 것은 참 색다른 골드문트적인 체험이었다고 할까.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인가는 조신권 교수님이 특별히 영시를 가르쳐 주시기로 해서 최종철, 유인국, 강경화, 김승자, 안경원, 이미숙 등 당시의 학구파들과 함께 매주 한 차례씩 선생님 방에 모여서 Milton의 Paradise Lost를 과외(?)로 배울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어떤 때는 선생님 댁으로 우리를 초청해서 다과를 대접하면서까지 우리들에게 영시를 가르쳐 주셨던 것인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선생님의 각별한 제자사랑에 그저 감탄하고 감사할 뿐이다.


Paradise Lost를 배우게 된 첫 시간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길이 옳음을 밝힐 수 있도록” 노래하기를 기원하는 Milton의 유명한 Invocation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강렬한 인상은 지금도 내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 당시 우리는 Norton Anthology 등의 책을 통해 Yeats, Keats, Dylan Thomas, T. S. Eliot 등의 시를 선생님에게서 배웠다.


2학년 초에는 곧잘 같이 어울리던 유인국, 최종철과 함께 시와 음악의 밤 같은 행사를 한 번 만들어 보자고 겁 없이 얘기하던 끝에 결국에는 2학년 주관으로 상경관 강당에서 “시와 음악의 밤”을 열게 되었다. 유인국, 최종철, 김태종, 나, 넷이서 남성4중창으로 “켄터키 옛집”을 노래했고 이혜련, 이영수, 최종철, 나, 이렇게 넷이서 “Annie Laurie”와 “Swing Low, Sweet Chariot” 등 몇 곡을 불렀는데 나중에 이봉국 선생님으로부터 혼성4중창은 프로처럼 잘했는데 남성4중창은 더 연습해야 되겠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나와 유인국 등 몇 사람은 자작시낭송을 하였고(겹치기 출연이 많았던 셈이다) 영문과 동문이자 선배인 성찬경 시인이 특별출연하여 자작시 낭송을 해 주었고 안경원이 하기로 했던 피아노 독주는 안경원에게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아무런 광고도 없이 음대 기악과 학생을 대타로 내세우는 순발력(?)을 발휘했는데 그 당시의 매니저는 유인국이었다.


늘 구수한 목소리에 열강을 하시던 조성규 교수님의 영미소설시간, 애매하고 가려운 곳을 명쾌하게 긁어 주는 것만 같던 김태성 교수님의 고등영문법과 영작시간, 유영 교수님의 『실낙원』 강의와 John Donne의 벼룩을 노래한 시, 6∼7명의 학생을 상대로 늘 열심히 라틴어를 가르쳐 주시던 고병려 선생님, 해박한 지식과 달변, 상식적 사고의 틀을 뛰어넘는 강의로 우리를 반하게 만들었던 한태동 교수님의 기독교개론시간…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날로 보다 틀잡힌 대학생으로 자라갔던 셈이다.


시를 쓰는 일에 열중해서 한동안은 시인지망생이었던 동기들과 서로 습작들을 나누어 보며 서로의 시를 평하고 격려해 주곤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중에 강경화, 안경원 등은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영시공부를 같이 했던 위의 동기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교수가 되어 후학들을 가르쳤거나 지금도 가르치고 있고 나 자신도 비록 어줍잖지만 시를 사랑하고 시를 써 오면서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2학년 때 철학과 3학년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독서써클 “인간걱정회”(후에 “인간연구반”으로 바뀜)에 가입해서 당시 화제작이던 존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를 시작으로 해서 철학, 종교, 문학서적 등을 읽고 매월 독서토론모임을 가졌었는데 그 열기와 집념이 대단하였다. 작년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때 모임을 만들고 주도했던 철학과의 학구파 강대식, 김원쟁, 전희삼 선배들은 모두 목사님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영문학과에서 보낸 시간들, 아니 나의 대학시절은 청년기―남다른 방황과 고뇌,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그 마감이 늦게까지 미루어졌던―를 통해 인문적 교양과 지식을 얻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지평을 열어 주었던 하나의 도약대였다고 생각된다.


느지막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건설업체에서, 무역업체에서 일해 오는 동안 여러 가지 사회적, 인간적 시련과 훈련을 받고 인간관계에서도 성숙에로의 길을 걸어왔다고 볼 수 있다.


직장생활을 거쳐 개인사업을 해 오면서 늘 여러 형태로 English Communication을 해 온 셈인데 그런 점에서 나의 전공이 내 삶의 도구이자 창(Window)이 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영시와 영문학을 통해 배운 지식과 시에 대한 사랑은 지금도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를 꿈꾸게 하고 내 삶의 끝날까지 내 생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