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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꼴찌에서 장원으로! (66 황우상) (2008.05.25)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꼴찌에서 장원으로! (66 황우상)


―과는 달랐지만 대학 때부터 평생지기인 친구 L군에게 보내는 회고담 하나―




66 황우상




사실 자네도 기억하겠지만, 학교 다닐 때의 나는 그저 평범하고 좋은 면이건 나쁜 면이건 별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지.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한 가지 내세울 것은 있다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방학에 들어가던 1969년 6월 21일, 토요일, 하늘은 맑고 초여름 기온은 꽤 높은 편이었지. 그 날이 바로 코리아 헤럴드사에서 주최하는 제4회 전국 영문 백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네.


시작 시간인 11시에 맞춰 가기 위하여 10시 조금 전에 하숙집을 나섰는데, 하숙비가 두 달치나 밀려 있던 가난한 하숙생이라 달랑 시내 왕복 버스비만 어떻게 챙겨 가지고 광화문행 버스를 탔었지. 행사장이라고 믿었던 경복궁에 도착하니 10시 40분 어름.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지, 그날 경복궁에는 그런 행사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아차, 백일장 응모 접수하는 사람이 장소를 가르쳐 주면서 무료입장권 한 장을 주었는데, 나는 그냥 고궁으로만 기억하고 궁 이름을 흘려들었던 모양. 그래서 경복궁 사무실 직원을 통하여 덕수궁에 연락을 해보니 덕수궁도 아니라네. 그렇다면 동물원(현재의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있는 창경원(현재의 창경궁)에서 백일장을 할 리는 없을 테니 답은 뻔하게(?) 비원일 수밖에(그때는 창덕궁을 비원이라고 불렀음).


하는 수 없이, 하숙집으로 돌아올 때 쓰려던 버스비로 창덕궁까지 갔는데, 아, 절망스럽게도 창덕궁도 아니라는 정문 근무자의 말씀! 시간은 벌써 11시 10분 전. 장소를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코리아 헤랄드사에 전화하는 수밖에 없는데, 주머니에 돈은 없고 어쩐다?? 이때 문득 보이는 길 건너편의 파출소. 그래, 민중의 지팡이에게 도움을 구해 보자.


후닥닥 파출소로 뛰어 들어가 다짜고짜 전화 좀 쓸 수 있겠느냐고 물었것다. 나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순경 한 분과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네.


“경비 전화 쓰시겠다는 말씀입니까?”(나중에 돌이켜 보니, 그 당시에는 중앙정보부―뒤에 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이 바뀌었음―소속의 학생들이 꽤 있었다는데, 그 순경도 내가 그런 부류의 학생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았네)


“아이고, 저야 학생인데 무슨 경비 전화를 쓰겠습니까? 돈이 없어 그러니 그저 일반 전화 한 번만 쓰게 해 주십시오.”


“일반 전화는 고장이 나서 우리도 못 쓰고 있습니다.”(이건 또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그럼 어떡합니까? 제가 워낙 사정이 급해서 그러니 어떻게 좀 도와주십시오.”(차마 노골적으로 전화 걸 돈 좀 달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더군)


잠시 생각을 해 보던 그 순경이 10원짜리 지폐(그때는 이런 지폐도 있었지) 한 장을 꺼내 주더군.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그 옆에 있던 구멍가게에서 동전으로 바꾼 다음 5원짜리 동전을 넣고(이제 생각해 보니 공중 전화비 참 쌌네!) 코리아 헤랄드사에 전화를 해서 문의를 했더니, 덕수궁에서 하는데 아직까지 안 가고 뭐하냐는 질책. 그때의 시간이 11시 3분 전쯤.


돈은 전화 걸고 남은 5원밖에 없지만 어쨌든 창덕궁 정문 바로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지. 그 당시 학생 버스비가 15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5원으로는 턱도 없으니 버스 차장 아가씨한테 사정이라도 해 볼 요량이었지. 그런데 마침 어떤 여대생이 옆구리에 생화학 책을 낀 채(지금도 그 책 이름이 뚜렷하게 기억나네) 버스를 기다리고 있길래,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을 걸었다네.


“저, 저는 연세대학교 영문과 4학년 학생인데요, 혹시 버스표 가진 거 있으면 한 장 얻을 수 없을까요?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아, 이 천사 같은 여학생이 싱긋 웃더니만,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면서 버스표 한 장을 주는 게 아닌가! 고맙기는 한데, 덕수궁까지 가야 할 몸이라 변변하게 인사도 못하고 버스를 탔지. 유감스럽게도 그 여학생은 다른 버스를 타더군.


덕수궁 앞에 내리니 11시 5분 경. 헐레벌떡 대한문을 들어서는데, 벌써 응시 학생들은 빨리 모이라는 마이크 방송이 나오고 있더구만. 6월 하순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모임 장소인 중화전 앞으로 달려갔더니 다들 모여 있는데 내가 제일 꼴찌였지. 어쨌든 응시는 할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주위를 둘러보니, 고등학생부가 한 100여 명, 대학생 및 일반부가 한 80명 정도. 다들 내 눈에는 영어 도사들처럼 보이더라고.


주최측에서 제목을 알려 주는데, 대학 일반부는 “Seoul Today”, 고등학생부는 “My Weekend”. 80분 동안 최소 600자 이상을 써야 하고, 옆 사람과 상의는 할 수 있어도 사전을 보는 것은 안 된다는 규칙.


드디어 작문을 시작하려고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지. ‘오늘의 서울’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내용이 뭘까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우리 사회에서 많이 들리던 단어들이 떠오르더군.


‘인구 5백 만의 서울도 이제 국제적인 도시’, ‘연간 수출 목표 10억 불’, ‘시내 교통 체증을 확 줄인 청계천 고가도로’(아마 1969년 초쯤에 건설), ‘육이오의 폐허 위에 세운 고층 빌딩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서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생각났지.


‘공중 화장실 같은 공공시설 부족’, ‘늘어나는 차량에 좁은 도로’, ‘속도 경쟁을 벌이는 버스나 택시들’, ‘중심가의 빌딩과 대조적인 변두리의 판잣집들’.


이렇게 내용을 가다듬은 다음 작문을 하는데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가는지. 초안을 마치고 정서를 하는데, 시간 다 됐으니 빨리 제출하라며 원고 받아가는 사람이 옆에 앉아 독촉을 하는데 어찌나 진땀이 나던지. 제일 늦게 응시장에 도착한 사람이 결국 원고도 가장 꼴찌로 제출했으니, 아마 그때가 12시 40분쯤이었을 거야.


시상식은 오후 4시에 있다고 하여 근처의 벤치에 앉으니, 그때서야 갑자기 배도 고프고 기운이 빠지면서 몸이 축 처지더구만. 돈이 5원밖에 없으니 한 끼에 60원 내지 80원 하는 밥도 사 먹을 형편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신촌까지 걸어갈 일이 더 걱정이었지. 그런데 아마 하늘이 도왔는지 다른 과 친구 한 녀석이 어떤 여학생과 데이트를 하는 게 보이더라고. 그래서 얼른 옆으로 불러서 100원을 꾸었지(솔직히 말해서 갚지는 않았어). 그 돈으로 점심 사 먹고, 돌아 갈 버스비를 챙기니까 흐뭇하데. 백일장 결과는 나중 일이고 말이야.


드디어 오후 4시에 시상식이 있었지. 우선 고등부부터 발표를 하는데, 장려상 둘, 가작 하나, 장원까지를 모두 경기고등학교가 차지하더군. 역시 경기라고 생각했지. 하나 남은 가작은 서울고등학교에게 갔고.


고등부에 비해서 대학 일반부는 장려상 둘에 장원 하나밖에 없었어. 사실 원고를 제출하면서 혼자 생각으로 장려상 정도는 되리라고 생각했었지. 학교 영작 시간에 에세이를 제출하면 교수님들이 내 에세이를 가지고 그 다음 시간에 강의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런데, 시상을 하면서, “장려상, 서울 공대 누구.” 그러더니 또 “장려상, 서울 공대 누구.” 이러는 거야. 아, 탈락인가보다 실망하고 있는데, 드디어 장원 발표를 하더군.


오늘의 그랑프리, 최고의 영광인 대상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시간을 끌더니, “대학 일반부 장원은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연세대학교 영문과 4학년 황우상!”을 부르는 거야. 그때의 그 황홀한 기분이라니. 부상으로는 상금이 거금 만원이었고(이걸로 두 달치 밀린 하숙비를 해결), 한 권으로 된 옥스포드 영어사전 등 책 종류만 한 아름이었지.


그야말로 꼴찌로 응시장에 도착해서, 꼴찌로 원고를 제출하고, 시상 호명도 꼴찌로 불려 나가서 장원을 했으니 재미있지?


그런데 마침 우리 과의 교수님 한 분이(죄송하게도 성함을 잊었음) 그 백일장에서 고등부 심사를 맡으셨다가, 내가 장원한 것을 보시고는 택시비로 쓰라며 500원을 주셨지 뭔가. 역시 장원은 좋은 것이여, 안 그래?


그런데 말이야, 이 영광의 전국 장원 사실이 우리 연세 춘추에는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네. 왜냐고? 바로 그 다음 주부터 여름 방학이어서 말이야. 방학이 끝난 후에 간단한 몇 줄짜리 기사가 실리기는 했지만, 원문이 없으니까 자못 서운하더군. 그렇지만 이 장원 사실은 평생 내 이력서의 상벌 난에 꼭 들어갔었지. 지금까지도 자랑스럽고.


아, 그 원문? 여기에 첨부했는데, 다시 보니 내가 정말 쓰긴 잘 썼더구만. 한 번 잘 읽어 보시라고.


그럼 이만 줄이네.






SEOUL TODAY


<Written on June 21, 1969 at the 4th Outdoor English Writing Contest sponsored by the Korea Herald>




They say that Seoul is recently developing so greatly with the hammer-sound of construction that it deserves being called “one of the most important international cities.” Yes, in my opinion, it is quite true; Seoul is “an international city.”


Then, what are the elements that made it possible? First of all, the great reconstruction after the Korean War is the main reason―many high buildings, elevated expressways and wide roads, increasing export and high GNP.


As all of the Korean people know, Seoul was destroyed to the bottom during the Korean War. And even the little boys and girls who were not born at that time can feel the wretchedness of our country if they see a picture of Seoul taken after the recovery of Seoul. But nowadays, almost all of the buildings and roads have been reconstructed. Moreover, many elevated expressways and wide roads have been built.


These are all the external aspects of reconstruction of Seoul. Then, how about the internal ones? To speak in a word, we can be proud of ourselves, because we can produce many good manufacturing materials. And also, we have increased exports to the sum of nearly one billion dollars a year. Consequently our GNP has increased very much.


However, in spite of all these matters, we must be able to see the ugly aspects of Seoul today under the shadows of the high buildings and elevated expressways.


We are proud of ourselves for the bigness of Seoul―I know that the population of Seoul is about five million. But, can we find any public restroom in the Seoul area?


Don’t you think it quite ridiculous that there is no public restroom even at the center of Seoul? Therefore, if anybody wants to make water on the way, he must depend on one of the coffee shops or on a great building with the cold eyes of the owner upon his back.


The next ugly aspect of Korea is that the mainroads, not to mention the others, are too narrow in spite of the increasing number of cars and buildings. Whenever we get on the bus, we often feel our hair stand on end because it seems that we are the victims of the bus race or car race.


Now, what is the next one? I think the houses at the rim of Seoul are just like the cottages in country. We must think about them as well as the high buildings at the center of Seoul.


Yes, it is very good for Seoul to be called “an international city.” But in making it so, we must think of the balance of the high buildings at the center and the ugly aspects under the shadows of them in Seou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