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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장미담장 (65 함계순) (2008.05.25)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장미담장 (65 함계순)




장미 가지가 늘어진 담장을 지나다니면서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하고 부러움이 온 뇌리에 가득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삼각지붕의 세련된 양옥집 담장에 가시 돋친 잎줄기들과 생생한 장미들이 뒤덮여 있는 것은 여간 정겹지가 않았다. 요즘처럼 장미가 흔하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이런 말을 하는 게 다소 이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붉은 벽돌 담 너머로 싱그럽게 피어나는 장미 줄기들을 늘어뜨린 길목이나 건물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무 울타리에 생글대는 웃음 같은 어여쁜 꽃송이들을 바라보면 더없이 잔잔한 희열이 솟아 나오고 솔바람에 은은한 향기가 코끝으로 전해 오면 언젠가는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꿈과 소망이 나도 모르게 나의 내부에 스며들었었다…


아무튼 그 시절 장미담장은 언제나 저쪽 편에서 나의 가난스런 현실을 잊게 해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행복의 상징이기도 했다.


세월과 함께 모든 생활 양상이 서구적으로 달라지고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마술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고 세상은 변해갔다. 이후로 나의 선망의 장미담장은 차차 텔레비전이라든가 넓은 아파트, 자가용 같은 것들로 바뀌어 갔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지고 쉬지 않고 경제성장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도 몇 번 이사를 했다. 두 번째로 이사 간 집은 내가 기억했던 그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고 화려한 가지들을 유감없이 담장에 드리우고 있던 나무가 많은 집이었다. 작은 연못과 마당에 잔디, 아기자기 조그만 꽃송이들이 층계 난간을 감고 있는 넝쿨, 등 … 이를테면 예전에 꿈꾸던 드림 하우스였다.


그러나 얼마간은 즐거웠던 그 정원은 출근을 하고 나면 집 볼 사람이 없어 문을 잠그고도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는 아파트에 대한 선망으로 빛을 잃게 되었다.


급기야 나는 바쁘다는 구실로 장미가 피어나도 기쁜 줄 모르게 되었고 자꾸만 번창하는 장미 가지들이 출입문을 막는다고 함부로 그 팔뚝 같은 가지들을 잘라대면서 그 당시엔 그게 얼마나 잔인한 가혹 행위인가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른이 되니 고운 장미를 보고 기뻐하던 어릴 때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모든 사물을 현실의 편익과 비교를 하고 그 선택에서 장미담장의 우선순위를 저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과 생각이 때묻어 가는 동안 이미 획득했거나 이루어진 일들에 대해 흡족해하기보다는 차차 일상적 관심이나 애착 같은 게 상대적으로 적어지며 그리고 그게 별거 아니란 생각마저 간혹씩 드는 것 같았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장미담장(선망의 대상)이 늘 손짓을 하며 난 아직도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변이된 장미담장들이 나를 부를는지는 아직도 미지의 꿈이지만…


어느 날 우연히 산에서 한 도사님을 만났다.


처음 가는 산길이어서 도사님에게 물었다.


“정상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한 두어 시간이면 됩니다…”


“길이 험한가요?”


“아니오, 아주 길이 잘 되어 있어요. 아무 염려 말고 다녀오시오.”


“그래도 혹 가다가 다 못 갈까봐서요…”


“그야 뭐, 가다가 다 못 가면 바로 거기가 정상 아닙니까?”


“네?”


그는 나에게 구태여 꼭 정상까지 가려는 이유를 의아하게 여긴다는 듯했다.


그야 내 입장에선 정상엘 가지 않으면 산에 꼭 안 간 것만 같은 어정쩡한 기분 때문이지만 일부러 의미를 두자면 정상이란 바로 모든 인고와 욕망의 극복지점이며 원하던 것을 갖게 되는, 말하자면 또 다른 장미담장에의 도달을 상징하는 것이다. 도사님은 그런 내 의중을 꿰뚫고 계셨는지 입을 꾹 다물고 하늘만 바라보신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의 정상엔 볼거리가 거의 없다. 밋밋한 민둥산이거나 거치른 돌짝에 풀 한 포기 없는 대머리의 좁다란 돌출 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때론 겨우 그것을 보려고 그렇게 힘들게 올라왔던 걸까 하고 실망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정상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지나쳐 온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장미담장처럼 정상이란 어쩌면 멀리서 바라보아야 더욱 아름답고 선망의 표적이 될 위치일 것만 같다. 그걸 소유하거나 딛게 되면 주변엔 아무 볼 것도 없는 고독한 높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바로 내 인생의 정상일는지도 알 수 없다. 아니면 내일의 어떤 자리가 정상일까? 아니면 십 년 전에 서있던 그 자리였을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태껏 정상에 올랐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다.


사실 난 아직 가져보지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해보지 못한 것과 이루지 못하고 만 것도 너무나 많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져본 기분을 말할 수는 없다. 또 그것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도사는 나 같은 속물들을 빗대어 세상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들이 있다. 하나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바보들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고 똑똑한 바보들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뿐이다.”라고.


아무래도 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으니 바보도 못되는 모양이다. 그저 별 뜻 없이 남을 따라 허우적대는 어설픈 헛똑똑이요 주변에 가득한 작은 행복에 마음껏 즐거워하지도 못하며 세상을 지옥으로 살아가는 많은 무리들 가운데 하나일 것 같다.


사실 바보가 되고 싶다. 되도록 완전하게 말이다. 장미담장 하나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천진무구한 바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