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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한 56학번 신입생의 일기에서 (56 이상섭) (2008.05.03)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한 56학번 신입생의 일기에서


56 이상섭




다음은 필자가 1956년 연희대학교 문과대학 1학년 때 쓴 일기에서 뽑은 것이다. 꼭 반세기 전, 오늘의 대학 1학년생과 얼마나 다른지 또는 같은지 약간 암시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고교 시절부터 시작한 독서밖에 할 일이 없었다. 번역서가 거의 없어 영어로 읽는 수밖에 없었다. 한문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역을 시작했다. 지금도 많이 하는 일이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 19세의 나는 영어와 한자를 섞어 쓰고 맞춤법도 가끔 틀리게 썼지만 여기 그대로 옮긴다.




1956. 3. 2 金


二次銓衡




英文科 140番


「Silas Marner」, 「Ivanhoe」에서 몇 줄 解釋하라고 해서 문제없이 해치웠다.


獨逸語는 in 의 3, 4格 支配, von은 무슨 格을 지배하느냐고 물어서 담박에 대답했다. 신체검사를 마치니까 8日날 發表를 보러 오면 그만이라고 해서 집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3. 6 火 눈 ― 개임


Evans의 A Short history of English Literature 다 읽다. 힘들었다. 英語 성경을 보겠다.


Cather, Scott의 것은 좀 힘들어서 보지 않겠다.


조연현 등이 번역했다는 Woodbury의 「문학개론」은 읽다가 던졌다. 형편없는 번역이기 때문이다. ―




3. 8 木


二次發表.




3. 10 土 흐림 ― 눈


Sally를 끌고 산옆을 걸으려니 겨울철에 듣지 못하던 새 울을 소리를 들었다. 수없이 많은 봄새들 ― 아하 봄은 왔구나, 하였다. 종달새는 창공에 오르는지 벌써 오래다. 그 밖의 철새들은 언제 왔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첩첩한 눈에 사람들이 파묻혀 죽는다는 신문 기사는 3月 신문에 기재 되었었다. 春三月―눈은 인젠 밉살스럽다. 오늘도 눈이 나렸지만 눈은 내게 봄을 생각지 못하게 했다. 그냥 Bleak한 느낌만 주고 ―오늘도 변덕스럽게도 눈이 함박으로 쏟아지군 하다가 또 그치군 했다. 찬 눈 맞을 봄 새들을 가엾이 생각했다―.




3. 11 日 눈


지꿎은 날씨―눈이 또 나린 것이다. 그것도 많이 ―


봄새가 걱정이 되었다.


咸錫憲氏의 「聖書的 立場에서 본 朝鮮歷史」를 읽는다. 아주 좋았다. 내가 생각하던 것과 같은 点이 있기 때문에 더 좋은진 몰라도, 그 설명은 분명하고 뛰어난다.




3. 13 火 개임


낮에 朝鮮歷史 다 읽었다. 새로운 豫言的인 史書 ―나는 正히 여백에다 朝鮮 最大의 史書 ― 卽 豫言書라고 적어 놓았다.


오래간만에 능선을 타고 산에 올라갔었다. 형님과도 또 한번 ―이렇게 두 번을 올랐었다.


멀리 南海의 창랑을 굽어보며 날아온 철새들은 나뭇가지마다 지저귀었다. 오이려 남은 눈이 점점이 보이는 산의 북녘 기슭에 띄엄띄엄 놓여 있어 산골 목장에 누운 소때 같았다. 나는 그중 큰 소의 잔등 위에 올라 필설이 따를 수 없는 牧歌를 불렀다.




3. 15 木


A Bleak day! A Bleak day has something that attracts me. It places me in a pensive mood ―just a little ―I don’t like dark clouds ―But ―


「民主主義觀」이란 冊 거의 읽었다. 물론 내겐 그리 흥미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까다로운 번역물이라도 讀解할 수 있는 能力을 기르기 爲함이었다. 論旨를 把握하기란 쉽지 않다.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이 더 努力해야 된다는 말은 眞實이다. 정말 Law of Gravity가 scientific하게 適用되어야 할 것이다. 내려가기보담 올라오기가 힘드니까 ―. 글을 매디가 없이 곱게 써야 한다.




3. 26 月 흐림


진눈깨비가 나려서 구두속으로 얼음처럼 찬 물이 새어 올라 왔다. 아침 일찍 조흥은행 서대문지점으로 갔었다. 수월히 되지 않다가 결국은 내가 文科大學 맨 처음으로 갖다 낸 셈이다. 65300 Hwan.


大學校에 갔더니 姜雄朝 李鐘石 君이 와 있었다. 같이 집에 내려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永達이네 집에 갔다가 그들은 떠났다. 姜君은 文理大 史學科에 들어갔다고 기뻐서 돌아다니는 참이었다. 그는 무척 억센 努力家였다.


永達이와 같이 이야기 하다가 돌아왔다.




3. 27 화 개인날씨 ― 아침.


저 안산 능선위로 사람들이 三三五五 걸으며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화창한 봄에 「나는 기다리고 있을 테오 찬란한 슬픔의 봄을」하고 哀歌를 부른다면 그는 感傷病에 걸려 썩은 者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서도 그리 기쁜 노래가 안 나온다. 이 좋은 날씨가 내게 무슨 不安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나의 날카로운 第六感이 그것을 포촉하였다. 나는 恒常 不安感을 떨어버릴 수가 없다. 나는 나태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에든 沒頭하여 第六感의 活動을 쉬게 하는 수밖에 없다. 때때로 낭만的이 되려 하나 무슨 惡魔的인 것이 이것을 制止시킨다. 恒常 冷情하라는 것이다.


영미현대단편 5편 읽었다 The Garden Party, Araby 等




4. 2 月 비


비 오는 날 No-天 강당에서 우산 쓰고 개학식


흥미가 없었다. 大學校入學에 새삼스런 흥미가 없었다.




4. 4 水 개임


5 과목에 걸쳐서 시험을 보았다.


국어, 영어, 사회생활, 수학, 독일어(선택)


다 쉬워서 잘 했다고 생각된다.


긴장했던 때문인지 허리가 몹시 아팠다. 게다가 점심도 못 먹었었다. 또 게다가 집에 돌아오자 동섭이와 같이 똥을 퍼 날라야 했다.


불평이 좀 많았다. 밤에 일찍 잤다. (9시쯤)


4. 7 土 흐림


大學校에서의 첫 受業 ―開始날부터 休講까지 있었다. 感興은 없고 高校受業의 延長으로만 생각되었다.


테쓰를 읽는다.


學科敎材英語를 공부했다. T. Hardy의 短篇 The Son’s Veto이다.




4. 9 月 개임


오랜만에 맑은 날씨를 본다. ―좋다.


시간표에는 8시간을 수업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수업은 한 시간도 없은 셈이었다. 모두 들어와 閑談을 하고 나가군 했다. Family Happiness 읽느라고 한 시간은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종을 못 들었던 것이다.


Family Happiness, Oxford는 너무 單純한 이야기였다. 「테쓰. 순결한 여인」은 번역물이기 때문에 어색한 文章이 많았으나 比할 나위없이 아름다웠다. 自然묘사와 적당한 장소의 Reflexions가 얼마나 고운지!




4. 16 月


더욱이 영어는 흥미 없었다. 서양사람이 가르치는 것도 이군철氏가 가르치는 것도 ―오늘은 졸음까지 와서 날 괴롭혔다. 학문 같은 게 없다.


단지 난 大學의 숲을 사랑할 따름이다.


Cranford를 읽었다. 흥미진진. Humour는 잔잔한 미소같이 풍긴다. 아주 좋다. 그러나 英語가 좀 힘들다. 그래서 아깝게도 그 Humour의 맛을 完味할 수가 없다. 그리고 빨리 읽을수도 없고 사이도 없다.




4. 21 土 (개임)


文化史 또 休講해서 오늘도 1시간 受業. Cage at Cranford(단편)을 읽다. Cranford의 계속作品. Wordsworth의 Preface to Lyrical Ballads를 번역하였다. 나혼자 영어 공부하여야 하겠다. P.S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내가 지난번 新入生 시험에 1等이라고 ―아침에 張起元 理工大學長께서 오셔서 내가 數學 96点을 했다고 秀才的이라고 나의 素質을 집에서 아는가고 물으러 오셨었다는 것이다. 우스운 일인지, 슬픈 일인지, 기쁜 일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1等했다는 것은 물론 자랑스럽고 즐겁지만 내가 天才的으로 수학에 能하다는 말은 도리어 좀 슬펐다. 엉터리기 때문이다. 나는 기껏 80点이나 될까 했던 것이고 게다가 문제가 무척 쉬웠던 것이다. 수학은 확실히 내가 자신 없어 하는 바이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도리어 그 훌륭함을 인정하지만) 수학은 못한다. 결론이 이것이다. 학장은 나를 수학과 학생으로 만들려고 한다. ―소질을 살린다고! 나는 학장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만큼 열심한 교육가가 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수학에 대한 열심이 있기에 학생의 집을 새벽같이 찾아와 제자를 모으려는 것일까! 나는 그분의 열심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의 提案은 일축하는 수밖에 없다. 까닭 없는 슬픈 감정에 사로잡힌다.




5. 2 水 개임


아침으로 Vicar of Wakefield를 다 읽었다. 아주 좋았다. 大作佳篇이다. Wit이 넘치고 Humour가 가득한 愛情과 同情없이 읽을 수 없다. 읽어라 하고 권할 책이다.


The Red Badge of Courage를 읽으려다 힘들고 흥미 없어 그만두고 Oliver Twist를 읽으려 한다. 너무 지루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Humour를 즐긴다. 그것이 이 책에 가득하다. 동섭이 三角函數를 가르쳐주었다. 눈이 너무 피로한 것 같다. 잘 볼 수 없다. 다음엔 무슨 책을 또 볼 것인가?




5. 5 土 비


나는 일찌기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별로 슬퍼하거나 애석해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 일에는 처음으로 애석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신익희 씨가 급사한 것이다. 나는 얼마나 미래를 낙관하였던가? 나의 태도가 나쁜진 몰라도 나는 이승만과 그의 오합지졸이 깡그리 몰살되기를 바래서 신익희 씨가 대통령 되길 바랬던 것이다. 지금껏 나는 정치에 對해서는 일체 무관심했으나 최근 2, 3년간 그야말로 열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신익희 씨만 되면 속시원하게 이기붕, 김활란, 박마리아, 김태선, 이재학, 박영출, 황성수 등이 납작해질 것이고 따라서 나는 어떻게 무엇인진 몰라도 자유스럽게 될 것 같이 생각되었다.


자유당을 저주한다(정치에 관심을 크게 가진다. 후에 정치계에도 나설지 알 수 없다). 하루 종일 속이 답답하였다. 우리에겐 인젠 인물이 없다. 백치 이승만은 망국배일 뿐이다. 나는 악한의 포학 정치, 백치의 망국정치 곁에서 결코 자유할 수 없다. 자유당 옹호 하는 쓸개없는 놈들은 다 죽어 버려라! 이승만은 죽지도 말고 200살까지 살면서 세상사람이 배앝는 침을 얼굴에 받으며 백치로 남아 있어라!




6. 2 土


연대 체육회 文科大學 꽁찌. 날씨가 더운데다 체육회 자체도 심심해서 별맛 없었다.


밤에 延大劇公演 “사랑은 죽음과 함께”는 그야말로 Excellent였다. 作品 自體가 우선 좋았고 學生들의 演技로는 그 以上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有名치 못한 原作者 「파트릭」에게도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내가 劇作을 한다면 바로 그런 劇을 써야겠다.




6. 8 金 개임


오늘 英語, 獨語, 宗敎 三科目에 亘한 試驗이 있었다. 語學科들은 모두 解析問題였고 宗敎 역시 主觀的 問題라 맞고 틀리고 間에 생각 하기가 귀찮다. 모르는 것은 없었으니까 잘 한 것일 게다.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다. 재미있는 短篇이나 써볼까 한다. 책도 읽어야 하는데 ―Symposium이나 읽을까. 이제부터는 學校에서 빌려다 보아야 겠다.




6. 9 土 개임


Chapel 시간 끝나자 각대학별로 산에 송충이를 진멸하려 올라갔었다. 나는 우선 뱀 한 마리를 잡아 죽이는 것을 효시로 하여 수없이 잡았다. 모두 협력하였다. 여학생까지도 그 징그러운 벌레를 나무젓가락으로 잡아내렸다.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장문식, 양승권들과 같이 정당, 정치를 떠들어댔다.


밤에 Robinson Crusoe를 보다.


6. 26 火


침침한 하루 ―한문 한 시간만.


The Old Wives’ Tale


다 읽었다. (640 Pages) 대단히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Maupassant의 Une Vie에 뛰어난다고 생각한다. “정말” 같으니까.




7. 5 木


Cyrano de Bergerac 다 읽었다. 대단히 훌륭한 Romanticism. 佳篇이다.


종일 흐려 있으면서 비가 때때로 나렸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학공부밖에 하질 않는다. 한문, 독일어, 영어, 영어회화 ―7 가지중에 4과목이나 어학이다. 훌륭할씨고! 이학년에 공부 많이 하련다. 그러나 佛語, 日語는 꼭 해야겠다. 古典語도 分明히 하고. 國語古典도 좀 살펴보고 ―결국 나는 글자에 매이었다.




7. 7 土


La Gioconda 다 읽었다. 예술에 항복하느냐 덕성에 항복하느냐 ―힘든 문제였으나 무참한 덕성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다시 예술에게 항복한 Locio Settala는 강한 예술인이면서 약한 인간이다. 나는 무참히 부서져 버리는 맹목적 사랑같이 더 비극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Blindly shattered love! 이런 사랑은 運命的이다. Silvia는 이무리 봐도 비난할 곳이 없으면서도 어디인가 잘못된 곳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여자의 destined love밖에 비난할 수 없다. 암초에 부딪친 파도가 산산히 부서지듯이, 부딪쳐서 조각조각 부서지는 사랑은 모자라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상대자의 또 운명적 심경 때문이다.




10. 17 水 개임


운동 구경하느라고 늦게 왔다.


모드 UN 총회를 참관하러 온 노종호, 안병섭 양군을 만났다. 오래간만이었다.


오늘로 A Promise to Keep 번역을 탈고하였다. 20*10 원고지 592枚!


돈 6만환이나 착실히 된다. 자랑스러운 마음은 없다. 기쁘다면 짐을 벗어 놓았기 때문에 기쁠 뿐이다. 연희춘추에 Tagore’s 번역 「강가의 돌층계」가 났다. 역시 자랑스러운 마음은 없다. 신문 6면을 채웠다는 것일 뿐. ―나 한 일에 이처럼 무감각하기 시작하면, 이 다음에는 내내 불만할까 두렵다.




11. 5 月 개임


어젯밤에는 불행한 항가리 혁명 열사들에 대한 동정으로 잠을 못 이루었었다. 얼마나 큰 불행인가? 또 슬픔인가? 나는 비분에 차서 소련놈들을 잡아죽이는 별별 공상을 다하였다.


어젯밤 늦게야 잠이 들었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첫시간 Dustin의 집. 고운 여학생 둘도 함께 공부하는 ―아니, 모이는 ―.


시험 전에 걸리는 Ennui속에 초조하게 하루를 보냈다. Hungary로부터의 소식은 더욱 암담할 뿐 ―.


밤에 독일어 공부마 밤들거냐, ―


밤공기가 맑고 찬가 보다. 개 짖는 소리가 맑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