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Community

커뮤니티

"우리들의 60년"

제목
추억 속으로 - 축시 (2008.03.20)
작성일
2022.12.30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추억 속으로>


“기억 속의 스승들”과 “영문과가 배출한 인물들”을 끝으로 우리는 연세대 영문과의 60년 세월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마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문과가 어떻게 성립하였고 학제와 교과과정 및 교육내용은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학과 내지 학교의 안에서 행한 활동은 어떠했고 또 그 밖에서 이룬 업적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어 왔는지 되도록 빠짐없이, 그리고 적절한 비중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로써 60년사의 뼈대와 살은 묘사했으나 그 속에서 호흡해 온 정신과 정열에 대한 추억은 담아내지 못했다. 어찌 보면 ‘피상적’ 서술에 그친 것이다. “영문과 학생들의 문예활동” 등 몇몇 항목에서 여러 이름이 등장하지만 전체 동문의 숫자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할 뿐 아니라 각종 활동에 관한 객관적 서술에 그친 내용이었다. 이는 영문과 60년사의 편제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다. 편집진과 간행위원회는 60년사를 학과 성립과 발전 및 이에 연관된 인물들에 관한 ‘공식기록’ 부분, 그리고 동문들 개개인이 쓴 회고담을 주축으로 하는 ‘개인 이야기’―달리 말하자면 ‘개인사’―부분, 이렇게 두 파트로 대별하여 간행할 것에 합의했는 바, 지금까지의 내용은 ‘공식기록’에 해당하는 것이다.

‘개인사’의 주인공들은 물론 (원주캠퍼스를 포함한) 5000여 동문 모두다. 사실 60년사 내용 중 공식기록 부분보다 훨씬 많이 읽힐 것이 개인사 부분이요 따라서 이 부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간배열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그간 여러 차례의 준비 모임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우리들의 60년』은 영문과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되 결코 딱딱한 사실 나열에 경도하지 않고 숨결이 살아 있는 ‘재미있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개인사 부분이 공식기록 부분보다 부피에 있어 훨씬 더 크게 된 내력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개인사 주인공’들이 등장하게 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물론 좋겠지만, 글을 수집하는 과업이 편집진이나 간행위원회의 열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것이 난점이었던 것이다. 간행위원장은 2005년 3월초부터 모든 연락 가능한 동문들에게 60년사에 실릴 개인사 원고를 요청해 왔고, 1년이 넘는 모집기간과 몇 차례의 독촉 편지와 전화 끝에 현재 126개의 글이 모이게 되었다. 여기에 그간 학부와 대학원생들이 진행한 인터뷰 기사 35개를 포함하면 개인사 원고는 총 161개가 된다.

전체 동문 숫자에 비하면 아직 적은 감이 들지만 이제 이들의 글로써 개인사 부분을 가름하면서 사실에 감정을 더하고 뼈대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개인사에서 우리는 영문과를 거쳐 간 모든 동문들의 꿈과 현실, 기대와 좌절, 모험과 낭만과 성취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세 동문의 멋진 축시 3편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제 그 개인사 이야기들과 더불어 추억의 길에 들어서 보자.





축 시


『우리들의 60년』에 부쳐


51 김정숙



내 서소(書巢) 작은 둥지엔

지금도 기품있게 서 있는 몇 권의 양서(洋書)


머리가 하얗게 센 노신사 되었어도

날마다 정스레 눈 맞추어 준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어 든 길

1951년, 운무의 혼돈이 소용돌이칠수록

날파람 이고 허리를 감싸면

늑골 갈피마다 숨어있던 욕구가

치렁치렁 온몸에 감겨오던 그 전당

‘연세’, 추웠던 젊은 날의 격전지

너를 끼고 표표히 세상의 파고를 넘었더라

긴 그리움 뿌리쪽을 향한다


나무와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듯

낮선 언어를 골돌히 비벼

황토길 우리네 마음에 또 하나의

촛불을 밝히던

빨간 앵두알 소망(素望)


어엿! 뜻밖에 놀이가 끝나버린 아이처럼

울고 나은 기억

뮈에 울거냐

새봄엔 또 다른 청춘들이 새 잎을 준비하며

즐비하게 모여와

드높은 탑을 쌓아 올릴 것이니


신뢰에 빛나는 그 발자국 소리

물오른 내일을 가져오시라

지성의 오솔길에 푯대이거라

맑고 푸른 하늘 떠받쳐.






자랑스러운 역사 되어

­『우리들의  60년』 발간에 부쳐


57 김종희



나는 오늘 연세동산으로 갔다

내 젊음의 4년을 두고 온

나의 영원한 이상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속으로


봄볕은 빛나고 바람은 향긋했다

언더우드 동상이 서있는 교정에 올라

멀리 교문을 바라보니

백양로는 간데 없고 차길 양옆으로

두개의 아스팔트길 가득 메우며

젊은이들 밀려가고 밀려온다


50여 년 전

진리를 향한 가슴 벅찬 열망으로

영문과에 입학하여

문과대학 강의실을 오르내리며

도서관으로 식당으로

분주히 교정을 오가던 친구들

그때 우리들에게

영어 영문학을 강의하시던 교수님들

지금 교정에 나무들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듯

이제 연세영어영문과 60년사를 발간하여

그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으니

이는 연세영문인의 뿌리와 믿음이 되리

100년 200년……

끝없이 미래로 흐르는 시간과 함께

점점 그 뿌리와 믿음도 자라

결국은 자랑스러운 연세영문인의 역사 되어

영원을 흐르며 빛을 내리



 

르네상스의 깃발

­『우리들의  60년』 발간에 부쳐

58 안건일 



오천년을 부풀어온 겨레의 꿈이

무악 산 연희 골에 몸을 풀던 날

풍운에 싸인 조선의 해는 기울고 있었다


흥부네 자손 벌듯 권속은 늘어 가는데

밭뙈기에 목을 매고

하늘만 쳐다보던 아비의 한숨과

울타리를 넘어오는 이웃 집 떡메 치는 소리에

입 안 가득 군침이 고이는 자식들이 안쓰러워도

떡쌀이 없어

빈 쌀독에 우물물 퍼 담던 어미의 눈물을

끼니처럼 먹고 살던 어제


가난이 싫어, 가난이 싫어

한숨 서린 골짜기에 눈물이 싫어

고향 집 싸리문을 뛰쳐나온 자식은 외쳤다


나를 알리고

너를 배울 수 있다면

바다를 건너지 못할까

하늘을 날지 못할까

파란 눈, 노랑머리와도 친구하지 못할까  


가슴 열어 영어를 배우고 가르쳐 온

굽이굽이 60의 연륜 위에 서니

셰익스피어의 묘비 앞에

장미꽃이 아닌

무궁화, 도라지 꽃, 구절초를

웃으며 바칠 수 있는 여유로움 있구나


그의 발 닿는 곳에 샘이 흐르고

그의 손 닿는 곳에 꽃이 피니

그는 이제 연세의 자식만이 아니다

한국의 자식만이 아니다

세계가 그를 부르고 있지 않는가


고난의 탑을 돌로 쌓던 어제 그 자리

싸리문 밖 그 자리에

다시 밝아오는 조국을 본다

자랑스런 아들딸들아!


땅 끝 어느 골목, 후미진 응달에도

조용한 너의 힘

맑게 타는 불꽃은

새로운 ‘르네상스의 깃발’ 되어 펄럭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