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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제5부 동창회의 성립과 현황 (2008.03.16)
작성일
2022.12.30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1장 창립 초기의 활동상황


1950년 9명의 1회졸업생을 배출한 우리 영문과 동문들은 2006년 현재 약 4500여 명에 이른다. 최초의 동문회는 1회졸업생을 배출한 지 근 사반세기가 지난 1974년 12월 20일에야 결성되었는데, 이는 1회 동문이 졸업한 1950년 5월 10일로부터 불과 보름 후에 불어닥친 한국전쟁의 참화와 그에따른 후유증, 1960년에 발생한 4·19 학생혁명과 잇달아 일어난 5·16 군사혁명 등 역사적 격동기와 60년대 및 70년대 초반의 개발연대를 거치며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동문들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창회4 조직의 필요성에 관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도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귀밑머리에 흰서리가 희끗하기 시작할 무렵의 동문들이 주로 모여 구체적인 논의 끝에 회칙을 만들고 상임위원을 선출하는 등 동창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면면들을 보면 지금은 고인이 된 이봉국(46입)을 필두로 조신권(54입), 안종익(55입), 봉두완(56입), 이상섭(56입), 손한(58입), 오혜령(61입) 동문 등이었다.


1. 상임위원회 구성


당시의 동창회가 우선적으로 구상하고 있던 주요 사업으로는 장학기금 모금과 장학금 수여, 동창회보 발간, 동문 주소록 작성 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정년퇴임하는 교수들의 기념논문집 발간 및 축하연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업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74년 12월 20일 영문과 동창회 창립총회가 명동 한일관에서 개최되었고, 이 자리에서 다음의 임원진을 중심으로 한 상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회장: 이봉국(46입)     부회장: 박병욱(54입), 오혜식(55입)

총무: 김태성(53입)     재  무: 조신권(54입)   

섭외: 안종익(55입)


2. 동창회 회보 발간


창립총회 이듬해인 1975년 12월 19일에는 제1회 상임위원회가 신촌에 있는 한식집 <조선옥>에서 있었다. 상임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영어영문학과 동창회의 발전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의견들을 개진하던 끝에 몇 가지 사항에 합의를 보았다. 우선 가능한 한 빨리 동창회주소록을 만들어 동문들의 동정을 파악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세대학교 영문과 동창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동창회보 발간이 절실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동창회보를 발간하는 일은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던 안종익 동문이 맡기로 하였고, 안 동문의 편집 방향에 따라 동문회보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1976년 3월경에 그 첫호가 발간되었다. 비록 1년에 한 번씩의 발행으로 3∼5쪽에 지나지 않는 분량이었으나 동문들 간의 소식을 전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큰 몫을 담당하였다. 동창회보에는 주로 동창회 소식, 기별소식, 동문들의 개인 동정 등을 세세하면서도 재미있게 전달하여 마치 한 가족의 정담을 엮어낸 것 같은 훈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창회보를 만들기 위하여 안종익 동문은 개인적 시간과 노력은 물론 재정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취재와 원고작성을 주로 했던 오혜령 동문의 노력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정년기념논문집 발행


1975년 12월 19일에는 상임위원회가 조선옥에서 개최되어 두 가지 사항을 결의하였다. 모교에서 20여 년간을 가르치다가 퇴임하는 권명수 교수와 고병려 교수의 정년기념논문집 출간을 지원하자는 것이 그 하나요, 또 하나는 이를 계기로 후학들을 위한 장학기금 모집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우선 정년기념논문집 발행을 위해 모교의 교수들과 협의하여 기념논문집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봉국, 박병욱, 오혜식, 김태성, 조신권, 안종익, 이상섭 동문 등을 위원으로 촉탁하는 한편, 논문집 증정을 겸한 축하연 개최 및 장학기금 설립을 위한 시범적 사업의 세목들을 논의하였다. 찬조해준 동창회 여러 동문들의 도움으로 1976년 8월 30일 예정대로 기념논문집을 출간하고 같은 날 무교동에 있었던 서린호텔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축하연에는 모교 교수 전원과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과 동문들 모두 합해서 100여 명이 모여서 성대하게 축하연을 해드렸고, 여동창회에서는 금지환을 기념품으로 증정하였다. 1976년 8월 30일까지의 모금액은 총 1,687,000원이었다. 장학기금을 위한 모금은 1977년까지 계속되어 일인당 적게는 5천원에서 많게는 20만 원까지 내었는데, 이는 당시의 물가수준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액수였다. 장학금 지급은 계획에 따라 공식적으로 집행되었는데, 그 정확한 기록이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 아쉽다.

1981년에는 전형국 교수의 정년을 기념하는 논문집의 발행을 지원하였다. 50년대의 극히 불비한 상황에서 새로운 경향의 영어학과 영어교수법을 도입하여 많은 동학과 제자들을 깨우치고 정년퇴임하는 전형국 교수의 공로를 치하하는 뜻에서 논문집 발간에 소요되는 비용을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3,410,000원의 기금이 조성되었는데, 이 또한 당시의 물가수준에 비추어 상당한 액수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편집위원으로는 이상섭, 조철현, 손한, 김성균, 이성일 동문 등이 참여하였고, 예정대로 기념논문집이 발행되어 전형국 교수께 축하연과 함께 논문집을 증정하였다.



2장 재도약의 역사


1. 영문과 총동창회의 활성화


이처럼 1974년에 창립된 동창회는 1980년대 초까지 일련의 활동을 펼치며 동창회의 씨앗을 뿌리고 초석을 쌓은 바가 있다. 그러나 80년대 국내외의 정치, 경제, 사회적 격랑을 겪으며 동창회는 일시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그 후 1989년 안종익 동문(55입)이 2대 회장을 맡아 상당액의 장학기금을 모으고 특히 1987년 손한 동문(58학번)이 과대표로서 재상봉을 맞이하여 1,000만 원을 모금하고, 그 후 1991년 영문과 학과장과 동창회장을 맡으면서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였다. 손한 동문은 동창회의 항구적인 존립을 위해서는 우선 재정적인 기반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58학번을 기점으로 매년 재상봉을 기념하는 동문들로부터 학과 발전기금을 받아 적립하기 시작하였다. 손한 동문의 적극적인 모금활동에 힘입어 이후 약 10여 년간 약 1억 원의 기금이 조성되어 학부생의 장학금 지급의 기반이 성립된 것은 가위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학과발전기금 내지 장학기금의 성립은 그 자체로서 괄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동문들 상호 간의 교류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직은 동창회가 비교적 정적인 활동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손한 동문의 견인차가 1994년 재상봉기인 안병태(65입), 김영진(65입), 김동욱(68입) 동문 등의 전례 없는 활기찬 동력을 얻으면서 동창회 활동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들은 영문과가 연세대학교를 대표하는 학과 중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부제 등으로 학과로서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모과(母科)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소강상태에 빠진 동창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데 의기투합,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재도약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에 들어갔다. 특히 안병태, 김영진, 김동욱 세 동문은 모두 자신들이 창업한 기업들을 운영하며 재학시 배운 영어 실력과 사회에서 체득한 기업가적 조직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역동적인 동창회의 재조직과 발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몇 차례 모임을 가진 발기인 네 명이 각 동문에게 최초로 보낸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는 새로운 동창회의 탄생을 알리는 자못 의미심장한 선언문이었다.




연세대학교 영문과 총동창회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회 개최


안녕하십니까.

어두워만 보이던 이 땅에 다시 빛나는 계절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시는 일들이 두루 형통하기를 먼저 기원합니다.


영문과 동창이 되시는 여러분과 자리를 함께하여 의견을 나누고자 소식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영문과 동창회는 존속해 왔습니다만, 여러 현실적 여건 관계로 구체적인 사업을 도모할 계기가 실제로는 조성되어 오지 못했습니다. 이에 몇몇 뜻있는 동문들이 그간 수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금년 봄 6월 25일경에 “창립총회”를 열기로 의견을 모으고, 이 행사를 위해 각 기의 대표분들과 “준비위원회”를 아래와 같이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분망하시리라 생각되지만, 부디 참석하셔서 좋은 의견을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래­


          일시: 4월 28일 (수), 오후 7:00

          장소: 강남구 신사동 삼원가든 (소망교회 옆, 전화: 544-5351)

          주요안건: 창립총회 일정 확정

                     동창회 명부 확인


                                            발기인: 안병태(65), 김영진(65)

                                                                             문경환(67), 김동욱(68)



이후 여러 차례의 준비모임을 거쳐 1999년 6월 25일 저녁 7시에 모교 동문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동창회 ‘재창립 총회’는 영문과 동창회의 새로운 시발을 알리는 용트림이었다. 대강당을 가득 매운 200여 명의 동창회는 마치 매년 초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모교 총동문회를 방불케 하였는데 제4대 동창회장으로 새로이 선출된 안건일 신임회장(58학번)의 서신은 그날의 열기가 어떠하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동창 여러분!


지난 6월 25일 모교 동문회관에서 열린 총동창회 모임은 명문사학(私學) 연대 영문과의 51년사(史)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우선 동문회관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217명의 기라성 같은 선후배들의 면면(面面)들도 그러하려니와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오신 전형국 교수님, 영문과의 영원한 젊은이 김동길 선배의 좌중을 휘어잡는 화술, 그리고 매끈한 말솜씨로 진행된 MBC 변창립 아나운서(78학번)의 사회는 모임을 더욱 빛나게 하였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회장단과 임원진, 그리고 기별 대표 및 이사가 새로이 구성되고 (별지참조) 앞으로 동창회를 더욱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들이 제시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1. 영문과 WEBSITE 구축

2. 영문과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범영문과적 추진회 구성

3. 재학생을 위한 장학기금조성 및 영문과 지원, 그리고 동문활동 활성화를 위한

  1억 원 기금조성 추진

4. 정지 상태에 있는 영문과50년사 발간 추진

5. 영문과 동창 주소록의 수정(UPDATE) 재발간

6. 선, 후배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등산, 골프 모임 추진

7. 경조사시 영문과 조기(弔旗) 및 화환 보내기 등


모임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특히 3,000여 만 원의 즉석 기금 모집에 호응해 주신 선후배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비록 참석하지 못하셨더라도 1억 원 기금 조성 목표를 위해 동창회의 앞날을 성원해 주신 3,500여 동창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립니다.


    연세대 영문과 동창회장 및 임원진 일동



별첨:

1. 고문명단


차범석(46학번)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김동길(47학번)  태평양 시대 위원장

김태성(53학번)  연세대 영문과 명예교수

신극범(54학번)  광주대학교 총장

오혜식(55학번)  이화외국어고등학교 교장

안종익(56학번)  (주)성광 대표이사

봉두완(56학번)  적십자사 부총재

원응순(57학번)  경희대 외국어대 학장

한중애(57학번)  전 녹양회 회장

배영애(57학번)  전 영문과 여학생회 대표

손   한(58학번)  영문과 전 동문회장, 일리노이대 교수


2. 회장단 및 임원진

회         장  안건일(58학번)  경희산업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차수웅(59학번)  우성해운 대표이사

차석부회장   조철현(59학번)  연세대 영문과 교수

차석부회장   김준철(62학번)  국제전기 대표이사

      〃        고승일(64학번)  세일림무역 대표이사

      〃        추애주(65학번)  연세대 여성학 교수

감         사   이창식(65학번)  흥은행 검사부장

총         무   안병태(65학번)  밴안마케팅 대표

부   총   무    김동욱(68학번)  웅진무역 대표

     〃         권영석(79학번)  PROMAX 이사

     〃         이석재(81학번)  연대 영문과 교수

재         무  김영진(65학번)  해영항공 대표

               채호진(85학번)  포항제철 대리

서         기   박지선(94학번)  모교 영문과 대학원 2년


이후, 영문과 동창회는 매년 동문회를 규모 있게 개최하면서 동문 상호 간의 친목과 정보교류를 도모하고 있으며 매 2년마다 새로운 동창회장 및 회장단을 선출하여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 나아가고 있다. 동창 제위의 끊임없는 관심과 협조로 우리 동창회는 건장하고 뜻있는 모임으로 계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2. 홈페이지 개설


2000년, 영문인의 활발한 교류 방안을 모색하던 중 영문과 총동창회 단독 홈페이지 필요성이 대두되어 동창회 총무간사인 권영석 동문(79입)이 전 영문인의 네트워크의 장으로 홈페이지 구축을 제안하였다. 연세대학교 전체 홈페이지가 1997년에 제작되어 과별 소개란이 있었으나 서버 용량부족, 광고 효과 미흡 등 효과적인 네트워킹 tool로는 부족하므로 독자적인 홈페이지 구축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모아져 기획팀을 꾸려 동문들과 교류를 위해 열린 게시판과 “반가운 영문인” 등의 코너를 만들고 총동창회 사업 추진 활성화를 위해 동문업체 배너광고와 동창회 공지란과 기금 현황 등의 메인 메뉴를 설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영문과 총동창회 홈페이지인 yonseienglish.net이다. 영문과 홈페이지에는 총동창회 활동 이외에도 모과(母科)와의 활발한 교류 및 일반 네티즌을 위한 English Doctor 등의 영어 Contents Menu도 새로이 구축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해 영어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동문들과 학과의 지원을 받은 바 있다.

영문과 홈페이지는 온라인을 통한 교류의 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으나 몇몇 동문들의 자원봉사로 유지하는 데서 오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2005년에는 홈페이지를 새롭게 개편하고 더 많은 운영자를 확보하여 영어 명구나 영시를 배달하는 코너를 신설하였으며, 동문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총동창회 공지사항을 우편 공지에서 점차 e-mail 공지로 전환하여 신속성은 높이되 비용은 절감하며, 동문과 석사 및 학사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Vision Team을 꾸려 선후배 사이의 교류를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후술할) 영문과 60년사 제작에 협조하는 등 활성화를 꾀했다.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지만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교류의 장으로써의 온라인 커뮤니티 특성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해외 동문들과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후배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 수 있고 영문인들만의 콘텐츠 구축과 세대차를 극복할 수 있는 화합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자랑스런 영문인’ 표창과 감사패 증정


활성화된 영문과 동창회가 우리의 역량과 자부심을 대내외에 선보임으로써 동문들간의 결속을 다지고자 마련한 방안 가운데 하나가 ‘자랑스런 영문인상’ 제정이다. 2000년부터 동창회에서는 매년 졸업한 동문들 가운데 우리나라와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큰 동문 한 사람을 “자랑스런 영문인”으로 선정하여 총동창회에서 시상(기념패 및 선물)해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선정된 분들은 아래와 같다.


2000년 전형국 동문(34입학) 모교교수

 차범석 동문(46입학) 예술원 회장

2001년  신극범 동문(53입학)    대전대학교 총장

2002년 김동길 동문(46입학)    연세대 교수, 태평양시대 위원장

2003년  봉두완 동문(56입학) IPU부의장, 국회외무위원장, 한국최초 방송 앵커맨.

2004년  안건일 동문(58입학) 12대 국회의원, 시인

2005년  유덕형 동문(59입학) 서울예술대 학장, 이사장


매년 정기적으로 수여되는 ‘자랑스런 영문인상’과는 별도로 영문과 동창회에서는 영문과의 이름을 빛내거나 동창회의 발전에 기여한 동문을 선정하여 수시로 감사패를 증정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이 감사패를 받은 분들은 다음과 같다.


2001년   손  한 동문(58입학)

2002년   김진우 동문(54입학)

2002년   안건일 동문(58입학)

2003년    차수웅 동문(59입학)

2005년   김준철 동문(62입학)




3장 장학활동 및 기금


1. 장학금 정기 지급


앞서 언급한 대로 손한 동문이 조성한 장학기금을 바탕으로 이를 제2금융권 등에서 효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1999년부터 학과장의 추천을 받아 매학기 1명의 대학원생에게 150∼2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는데 수혜 대학원생은 아래와 같다.(오른쪽 년도 표시는 지급년도)


박지선(94입) 1998∼1999년

박종우(94입) 2000∼2002년

김선아(98입) 2003년

한광택(96입) 2004년

정승재(96입) 2005년

박주현(00입)     2005∼2006년


장학금 지급과는 별도로 동창회에서는 대학원생들의 쾌적한 연구 활동을 위하여 영문과 연구실에 복사기 기증, 에어컨 설치 등을 하였다. 특히 고승일 현동창회장은 사재까지 들여 연구실에 컴퓨터 5대를 기증하고 어렵게 외국유학을 준비 중인 후배를 위한 후원금을 내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교육부로부터 BK21 연구기금을 받아내기 위한 영문과의 사업계획서 작성에 재정적 지원을 함으로써 모과(母科)에 상당한 물질적, 정신적 격려가 되었다. 영문과는 결국 교육부로부터 6억 8천만 원의 BK21 연구기금을 받는 성과를 얻어내었는데 이 기금은 대학원생들의 장학금 및 연구기금 등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2. 박성혜 장학금


영문과는 또한 뜻밖의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장학금을 87학번의 박성혜 동문과 그녀의 부친 박지룡 님으로부터 기증받게 되었다. 영어학자의 푸른 꿈을 안고 입학한 박 동문은 학부를 우수하게 마치고 대학원에 재학 중 불의의 지병을 얻게 되어 요절하고 말았다.

이에 사랑하는 딸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부친 박지룡 님께서는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2004년 12월에 1억 원의 거금을 동창회 장학금으로 기탁하였다. 이에 동창회에서는 그 이름을 연세대학교 영문과에 길이 남기기 위하여 “박성혜 장학금”으로 명명하고 금융권에서 운용한 수익금으로 2006년 2학기부터 재학생 1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이로써 영문과는 총 2억 2천여 만 원의 장학재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4장 영문과 60년사 간행


1. 간행위원회 구성


이 책의 앞부분에 언급되었듯이, 1917년 2월에 인가된 연희전문학교는 1944년 6월 1일 일제의 강압에 의해 폐교되어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4년제에서 3년제로 격하되었다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12월 5일에 연희전문학교로 다시 정식 개강하였다. 그 이듬해인 1946년 8월 15일 연희전문학교가 연희대학교로 승격되어 종합대학교로 인가되면서 곧바로 영문학과가 신설되었으니, 이것이 ‘영어영문학과’ 역사의 출발시점이다. 1950년 5월 10일 최초의 졸업생 9명을 배출한 이래로 지금까지 4,558명(남 1695명, 여 2,863명)의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면서 금년(2006)으로 어언 60년의 역사를 갖게 된 것이다. 이에 영문과 동창회에서는 창립 60년을 기리는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기획하게 되었고, 그 중의 하나로 영문과 60년사를 간행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60년사의 편찬은 50주년 기념인 1995년에 약 1200여 만 원의 기금을 조성하여 발간하기로 했던 것인데, 기금의 액수가 목하 사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데다 곧 이어 생긴 학부제의 소용돌이속에 ‘학과’가 없어지는 상황에서 편집자체가 무산되어 10여 년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를 너무나 아쉽게 여긴 영문과의 조철현(59입), 문경환(67입), 최종철(69입) 동문 교수들이 중단된 60년사 발간을 동창회에서 다시 간곡히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동창회에서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60년사 간행에 다시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몇 차례의 모임 끝에 60년사 간행위원회를 다음과 같이 구성하기로 결의하였다.


간행위원장  차수웅(59)

편집위원장  조신권(54)  편집주간 문경환(67)  편집간사 최종철(69)

편집위원  김동길(46) 차범석(47) 이명근(47) 이정현(47) 임명진(49졸) 김형국(50)

  김우옥(53) 신극범(53) 김진우(54) 김형순(54) 김희정(54) 오혜식(55)

  안종익(56) 이상섭(56) 봉두완(56) 심재옥(56) 한상철(56) 안건일(58)

  임상순(59) 유덕형(59) 오혜령(60) 정용석(61) 이현화(62) 최인호(64)

  강은교(64) 안병태(65) 공지영(81) 조성관(83)

연대별 편집자  초창기­차범석, 50년대­이상섭, 60년대­임상순, 70년대­문경환,

  80년대­조성관, 90년대­황현정, 원주캠퍼스­황계정

후원회  수석부회장 고승일(64), 차석부회장 김영진(65), 차석부회장 안병태(65),

  총무부회장 김동욱(68), 운영부회장 전용준(71), 여동문회장 추애주(65),

  여동문차석부회장 우남희(67), 여동문차석부회장 구안숙(73),

  감사 문경환(67), 차석재무부회장 권영건(75), 차석운영부회장 권영석(79),

  총무/재무 최지현(85) 강주현(88), 각 기별 대표



2. 예산 및 기금 현황


간행위원회는 60년사 편찬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면서 필요 경비를 다음과 같이 예산하였다. 이는 커다란 줄기만을 염두에 둔 대략적인 예산으로, 결산 후 남은 금액은 동창회 기금으로 환원한다는 개념을 기본 방침으로 한 것이었다.

 

 회계기간 2004년 10월∼2007년 3월(30개월)

 예산내역 인건비         3천만 원    월 100만 원

     자료수집비     5백만 원       자료수집원 30여 명 고용

    회의비          1천만 원      모임식비 포함

     원고료, 집필비  2천 5백만 원    500매

     편집, 인쇄비    2천만 원       3,000부

    예비비         2천만 원             

        합계       1억 원


이러한 소요 예산은 동문들의 찬조금으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60년사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통사’에 해당하는 내용 그리고 동문들의 추억거리인 ‘야사’를 함께 아우르기로 하였다. 동문들의 추억거리와 재미있는 일화 및 잊을 수 없는 글들을 기별로 수집하여 가급적 많은 동문들이 글 쓰는 일에 동참케 하고 통사는 편집위원장인 조신권 동문이 집필하고 문경환 동문(67입, 모교 교수)이 보완하도록 결정하였다. 60년사의 성공적 사업완성을 위하여 동창생들이 앞 다투어 기금을 쾌척하였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60년사 기금 현황


 인원 학 번 성 명  금 액   합계

 1 64 고승일     40,000,000

       40,000,000 

 2 59 차수웅     10,000,000

 3 62 김준철     10,000,000

 4 65 안병태     10,000,000

 5 65 김영진     10,000,000

              40,000,000

 8 71 전용준       7,000,000

 7 65 최병곤       6,000,000

 6 56 봉두완       5,000,000

 9 71 김태주       5,000,000

              16,000,000

 10 58 안건일       3,000,000

 11 68 김동욱       3,000,000

                6,000,000

 12 53 신극범       1,000,000

 13 54 김희정       1,000,000

 14 54 조신권       1,000,000

 15 55 오혜식       1,000,000

 16 55 안종익       1,000,000

 17 56 장정남       1,000,000


 18 58 황봉구       1,000,000

 19 67 김지명       1,000,000

 20 67 김재인       1,000,000

 21 79 대표 김수경   1,000,000  

 22 79 권영석       1,000,000

 23 79 원용호       1,000,000

 24 80 이웅섭       1,000,000

 25  YESS회       1,000,000

              14,000,000

 26 53 김영일          300,000

 27 56 이상섭          300,000

 28 61 김병연          300,000

 29 67 황명희          300,000

 30 67 곽문순          300,000

              1,500,000

 31 78 신경숙          200,000

 32 87 김영숙          200,000

 33  이보람 외 재학생        200,000

                 600,000

 34 49 유병린          100,000

 35 52 안종호          100,000

 36 56 황계정          100,000

 37 64 송권규          100,000

 38 76 이원표          100,000

 39 79 양석원          100,000

 40 81 이석구          100,000

 41 85 이진동          100,000

 42  정은혁          100,000

 43  고광윤          100,000

                1,000,000

 44 62 손영우           50,000

                     50,000

     총 합계 119,150,000


한 학과의 60년 역사를 통괄하는 책자의 편찬은 결코 수월한 작업이 아니다. 아마도 대개의 학과 동창회에서라면 언감생심일 것이다. 영문과 60년사가 세상의 빛을 보면서 과연 어떤 평을 받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시도가 없는 곳에는 그 어떤 성과도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독자 제위에게 맡기기로 하고, 지금으로서는 간행위원회와 편집진 그리고 후원위원회의 노력과 수고와 성원이 헛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리고 시행착오까지를 포함한 모든 결과물이 훗날 있게 될 80년사, 100년사 등으로 이어지는 튼튼한 초석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끝으로 초창기 동창회의 기틀을 다지고 정체된 동창회를 활성화시키며 선후배들의 뜻을 모아 동창회의 여러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역대 동창회장과 그들의 업적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영문과 동창회와 같은 큰 조직이 어느 한 개인의 헌신과 노력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역사기록의 한 켠에 이들의 이름을 남기는 것은 이들과 함께 일한 임원진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뒤에서 음으로 양으로 영문과 동창회의 발전에 관심을 보이고 활동에 참여한 모든 동창생들의 이름을 이들이 대변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제, 1대부터 7대에 이르는 동창회장들의 중요사업과 업적을 일별하면 아래와 같다.

초대 이봉국 회장(46입/1974∼1988)은 장학금 모금 및 수여, 동창회보 및 동문주소록, 그리고 정년교수기념논문집을 발간하였고 정년으로 퇴직하는 권명수, 고병려 교수를 위한 기념논문집 증정식을 겸한 축하연을 베풀었다.

제2대 안종익 회장(55입/1989∼1990)은 장학금 모금과 회원주소록을 정비하는 데 힘썼으며, 제3대 손한 회장(58입/1991∼1998)은 장학금 모금에 전력투구하여 연세대학교 내의 단일 학과로서는 최다액의 장학금을 조성하였으며 이는 이후 영문과 동창회가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초석이 되었다.

제4대 안건일 회장(58입/1999∼2000)은 앞서 언급한 CEO 후배 동문들과 함께 사업가적 수완을 발휘하여 동창회 재도약의 싹을 트게 하였다. 그리고 장학기금이나 60년사 출간을 위한 찬조금 등을 항상 앞서서 출연하였다. 이때 1회부터 94년에 입학한 전동창생을 망라한 260쪽의 총동창회 주소록을 처음으로 발간하였다.

제5대 차수웅 회장(59입/2001∼2002)은 장학기금 모금에 앞장섰고 동창회의 화합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영문과 60년사를 출간하는 간행위원장을 자임하여 이 기념비적인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중요한 일을 현재까지도 진행하고 있으며, 제6대 김준철 회장(62입/2003∼2004)은 장학기금 모금과 동창회의 화합 분위기 조성 및 영문과 60년사 출간 초대후원회장으로 출간비용을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제7대 고승일 회장(64입/2005∼현재)의 가장 큰 사업은 장학기금을 모금하는 일 외에도 금년(2006)으로 60돌이 되는 해에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펼치는 일과 영문과 60년사를 발간하는 일이다. 이 역사적인 사업을 마무리하는 데 꼭 필요한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 회장은 후원회장으로서 앞장서서 거액의 기부금을 쾌척하였다. 또한 그는 모교 학과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