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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이현주와 연세 영문과 (91 이현주) (2009.02.27)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이현주와 연세 영문과


91 이현주




영하 10도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90년 겨울, 대입 합격자 발표가 났다. 온 가족이 잔뜩 긴장한 채 전화기 옆에 둘러앉았다. 그러나 난 왠지 혼자 확인하고 싶어 방에 들어가 전화기를 들었다. ARS로 ‘이현주 님은 합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라는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수 년간의 긴장이 한 순간에 녹아 내렸다. 연세대 영문과와 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렇담 난 왜 연세 영문인이 되고자 했을까? 사실 그 동기는 영어를 좋아했다는 것 말고는 어떤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좀 막연했다. ‘연세대 영문과’가 주는 세련되고 깨끗한 이미지에 끌렸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영어가 아니라 영문학을 주로 배운다는 것조차도 모른 채 첫 수업을 맞았다. 영문인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왜 영문과를 택했냐고 물으면 “영문도 모르고 왔어요.”라고 한단다. 바로 내 얘기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고백하자면 난 영문과 4년을 그다지 즐겁게도 성실하게도 보낸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 영문인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분명 내 삶에 영향을 미쳐왔고 지금도 그렇다. 우선 외부에서 보는 연세 영문과 출신의 여자는 어떤 모습일까? 영어는 항상 따라다닌다. 요즘 같이 해외 유학파, 교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도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어김없이 “영어 잘 하시겠어요.”라는 응답이 나온다. 이건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는 자리에서도 안 빠지고 나오는 얘기다. 그래서 영문인들은 영문과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외부의 기대, 스트레스 때문에 영어 공부에 남보다는 애쓰고 그래서 대개는 영어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산다.


다음으로 떠 올리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문들이다. 자화자찬이 될지 모르나 사람들은 똑똑한 여자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내 주변의 동문들을 보면 그렇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통역, 언론, 금융, 학계 등 우리 동문들의 분야는 참으로 다양하다. 일단 사회생활을 하면 야무지게 자리매김해 나간다. 동문들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은 영문과라는 전공의 한계(?)일지 모른다. 문학 박사가 되지 않는 한 사회활동에서 바로 적용되는 학문이 아니다. 영문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동문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적성에 맞게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된다. 그래서 영문학과 관련이 멀어 보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취득해야 하는 금융과 같은 분야에서도 동문들이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지금은 출산으로 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외국계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고 곧 다시 일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나는 위에서 얘기한 연세 영문인의 모습에 상당히 부합된 길을 걸어온 셈.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나름대로 영어실력을 키워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외국계 회사에서 6년 이상 일했다. 유학파, 교포들 사이에서 이따금씩 아니 사실은 자주 언어의 부자유스러움을 느끼면서도 토종(?) 출신인 내가 그들과 대등하게 의사소통하고 일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영문과에 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현재 수준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가졌을지는 의문이다.


증권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은 적어도 경영학 전공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회계, 재무 등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향상시켜야 할 부분이 많지만, 영문학을 전공한 내가 이런 분야에 몸담을 수 있었던 건 말 그대로‘from the scratch,’ ABC부터 배워나갈 수 있게 한 초심자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한다. 어찌 보면 단순무식(?)한 것 같지만 얕은 지식보다는 백지에서 시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력기를 소개하려는 게 아니라, 실용성, 전문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게 오히려 나를 초심자의 자세로 돌아가게 해 기본에 충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여학생이 많은 연세대 영문과에 대해 속된 표현으로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시집 잘 가는 과. 현모양처의 가치를 저평가하려는 게 아니라,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후광에 편승하는 free rider의 이미지가 냉소적으로 담겨 있다. 여기서 여성의 전업주부로서의 삶과 사회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논의는 배제하고자 한다. 다만 내가 본 영문인들은, 거창하게 들리지 모르지만, 그와는 달리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한 frontier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연세 영문과와 나 이현주의 연결 고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 관련은 먼 듯했다. 그러나 연세 영문과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나를 오히려 초심자의 자세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가능하게 했으며,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 발전의 노력과 도전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