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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추억의 우물물을 길어 올리며 (91 이상배) (2009.02.07)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추억의 우물물을 길어 올리며


91 이상배




프로젝트가 착수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오후에 최종철 교수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0년 너머 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러나 또렷이 현실 앞에 마주하게 하는 목소리였다.


“네, 선생님. 건강은 좋으시죠?” 으레 하는 인사로 문안을 드렸다.


“그래. 상배도 잘 지내고 있지?”


인문관 강의실에서 들려주시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그날 오후 사무실에 앉아서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올리듯 나의 과거 학교생활을 반추해 보게 되었다.


캠퍼스를 머리에 그리자면 가장 먼저 인문관 언덕(골고다 언덕)에 핀 철쭉이 떠오른다. 4월이면 온통 캠퍼스가 꽃 무더기로 뒤덮이지만 유난히 인문관 언덕의 꽃들은 기억에 새롭다. 그곳에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점심식사 후 군것질을 하기도 하고 나른하게 햇살을 쬐면서 졸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캠퍼스는 꽃을 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곳이었나 보다.


동주 시비 언저리에 군데군데 봄의 전령사 모란이 피었고, 교육대학원 부근에는 몽실몽실 진달래가 떼 지어 피었다. 학교 울타리에는 온통 노랗게 개나리로 뒤덮였으며 청송대 뒤쪽으로 가면 이름 모를 풀꽃들도 한 자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 즈음이면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고 캠퍼스를 누비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도 서랍 깊은 곳에는 그때의 앳된 여자동기들과 투박하지만 순수함이 엿보였던 우리들의 한 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공수업을 마치고 나온 모양인지(혹은, 수업을 빼먹은 모양인지) 품 안에는 두터운 Norton Anthology가 들어 있다.


91년도에 입학한 우리 동기들을 보고 선배들은 종종 80년대의 막차를 달려와서 가까스로 잡아 탄 학번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 해 보니 91학번이라고는 해도 딱히 90년대가 갖는 특징을 온전히 갖고 있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80년대 학번이 가진 치열함과 현장정신을 소유하지도 못했다. 다만, 90년대 초 공산권 붕괴와 더불어 정신적 황망함을 토로하던 선배들 옆에서 기웃거리며 우리사회가 미처 성숙하지 못하던 시절의 사회적 혼돈으로 인해 다소 헤매고 정체성 찾기에 골몰하던 나날을 얼마 정도 보낸 기억이 있다.


나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교수님들에게 좀 더 다가가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해 그때는 교수님들이 마음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지금도 회사 생활을 하며 느끼지만 문학을 전공한 선배, 교수님들과 인생의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그들의 사색의 일면이라도 엿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가끔씩 회사 동료들은 이렇게 묻는다.


“어쩌다가 문학을 전공하고 이런 쪽 일을 하게 되셨나요?”


나는 현재 제조업종 관련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이공계 관련 공부를 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 때의 전공이 뭐 그리 대수일까만, 어떤 때는 내 주위에 늘상 함께 있던 ‘감수성 풍부한’ 그들(그녀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불쑥, “우린 정말 우리 인생을 후회 않게 살고 있는 걸까요?”라고 말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후회란 강물에 담갔다 건져 올리면 가벼워지고 말 소금자루 같은 거라네. 왜 그런 자루를 굳이 등에 지고 다닐까?” 정도의 애드리브를 날릴 수 있는 그이들의 감수성이 그립다.


공부로 치자면 나는 ‘불량학생’ 축에 속했다. 우선 전공서적을 읽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고, 굳이 따지자면 재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와 재수학원 시절의 그 습관으로 전공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재미가 있을 리가 있나… ‘문학’을 만나기 전에 ‘영어’라는 철문이 가로막고 있으니 이건 어찌 해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같다. 혹여 그 철문 너머에 다소곳이 앉아 볼을 붉히고 있을 그녀의 존재만이라도 알았다면 서투른 노력이나마 해 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본다. 지나고 나니 이런 핑계라도 대는 것일까?


아무튼 ‘문학 하는’ 재미를 못 접한 나는 그냥 무난하게(그리 무난하지만은 않았지만) 대학 4년을 마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한 가지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음악대학 교양과목을 수강할 때였다. 당시 수업은 오후 2시 정도에 시작하는 음악감상 관련 과목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어가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학내 집회는 점심시간 이후 약 2시 정도에 시작 되었다. 당시 연이은 대학생들의 분신으로 인해 시국은 혼란양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부지런히 집회장에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찌어찌 하여 문제의 그 음악감상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 감상할 작품 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해당 작품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마치신 교수님은 출석부를 훑어보다가 “영문과 전공인 사람이 좀 있네. 음… 이상배!” 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셰익스피어에 대해 물어 볼 것 같은데, 어쩌지… 그냥 대답하지 말까. 아냐, 수업 시작할 때 출석 불렀잖아…” 그러던 사이에 내 이름이 다시 불려지고 나도 모르게 “네!” 했다. 교수님 왈, “영문과니까 <한여름 밤의 꿈>은 읽어 봤겠지?” 나는 나도 모르게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기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작품 줄거리 대강 설명 해 줄래?” 하신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 졌다. <한여름 밤의 꿈>은 읽어 본 적이 없다. 다만 텔레비전에선가 본 기억은 대강 났다. 하지만 줄거리를 이야기할 수준은 못됐다. 난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자리에 앉아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교수님은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2시간짜리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그 과목은 낙제를 받았다. 그 사건 때문인지 절대출석 일수가 부족해서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 날의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덜미가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때 음악감상 교수님을 만나면 꼭 사과드리고 싶다. 더불어 나쁜 뜻은 없었음을, 다만 어린 나이에 자존심 구기기 싫어서 읽어 봤다고 나도 모르게 대답했음을, 작은 것에도 상처받기 싫어하는 젊은 영혼을 못 본 척 용서해 주실 수는 없었는지 작은 항의를(?) 전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느끼겠지만 학창시절의 시간은 대략 한 학기 단위나 일 년 단위로 흘러가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과거를 돌아보면 오 년이나 십 년 단위로 껑충껑충 시간이 흘러감을 느낀다.


최 교수님의 전화 한 통화로 이렇게 잠시나마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인터넷을 통해 본 교수님도 이젠 그 연륜의 무게가 느껴졌다. 다른 교수님들도 그만큼의 시간의 흔적을 머리에, 어깨에 지니고 계실 테다. 이렇듯 시간은 공평하게 때로는 원망스럽게도 우리 모두를 껴안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우리 영문과도 이제 60년의 세월을 살아 왔다고 한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많은 선배님들이 계시고, 내가 미처 인사 못한 많은 후배님들도 있다. 국내외 곳곳에서 자신의 삶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많은 동문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서라도 반가움을, 행복하시라는 인사를 전한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우리 열심히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