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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연세 영문과와의 인연 (90 허진영) (2009.02.07)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연세 영문과와의 인연


90 허진영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보면 선택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어떤 메뉴로 점심을 먹을 것인가 하는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진로선택이나 직업선택 그리고 배우자 선택까지 우리는 실로 무수히 많은 선택들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작고 사소한 선택은 잠시 동안만 영향을 미치지만, 크고 중요한 선택은 일생을 통하여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선택들을 잘 하는 경우도 있고, 잘못하여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인생만사는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도 있듯이 한때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나고 보면 잘못한 선택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때로는 우리의 의지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여건대로 살아가야 할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것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선택들을 통하여 인연을 맺어가며 인생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인생에서 비교적 중요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진로선택에서 수많은 대학과 학과들 중에서 연세대 영문학과를 선택하였고, 입학을 한 지도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사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나는 진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었다. 부모님께서는 강요하시지는 않았지만 법대를 가기를 바라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당시 재수를 하고 있는 터라 법대에 가면 또다시 고시공부에 매달려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있었고, 만약 고시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죄인을 상대하거나 복잡한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문학과를 가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고등학교 때 영어가 상당히 재미있었고 실제로 성적도 잘 나왔기 때문에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했다. 또한 영문학과를 가면 고시처럼 한 분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로가 다양할 것 같아 대학에 입학해서 진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상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적성을 잘 알기는 어려웠으며, 또한 대학에서 어떤 과목을 공부하며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당시 내 성적으로 지원 가능한 연세대 영문학과와 고려대 법학과에 지원서를 다 써 놓았다가 결국 연세대 영문학과에 지원서를 내었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신입생 때는 입시에 대한 해방감으로 대학생활의 자유와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스피취, 라이팅 수업시간에 생전 처음인 외국인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처음 몇 주 동안은 무슨 숙제를 내 주었는지 몰라서 수업이 끝난 후에 친구들끼리 모여 물어보던 일, 캠퍼스에 온갖 꽃들이 만발한 어느 화창한 봄날, 날씨가 너무 좋다며 교수님을 설득하여 청송대에서 야외수업을 하던 일 등이 생각난다. 그리고 영문과의 노래패 동아리인 YELL에 가입하여 가요와 팝송, 그리고 민중가요 등을 부르며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던 추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재학시절을 회고해 볼 때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 있는데, 이는 기숙사에서의 생활이다. 당시 나는 1학년 때부터 운 좋게도 처음으로 오픈한 무악학사에 1기생으로 입사할 수 있었는데, 이후 3년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학교로 등하교 하는 안산 언덕길은 계절 따라 바뀌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봄에는 온갖 꽃이 피고,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지며 아침, 저녁으로 뻐꾸기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기숙사에서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 빨갛게 물든 석양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가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안산에 올라가 조깅을 하고 약수터에서 마시는 약수의 시원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요즘에도 휴일날 시간이 있으면 가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안산에 올라가 산책도 하고, 약수도 마시곤 한다.


또한 단체생활인 기숙사생활을 통하여 전국 각지에서 온 다양한 전공의 우수한 친구와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도 참 행운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주로 같은 학과친구들만 만나지만, 기숙사에서는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저녁에는 기숙사 탁구장에서 친구들과 거의 매일 탁구를 치던 기억이 있는데, 탁구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서 일석삼조였다. 기숙사 룸메이트 등이 인연이 되어 현재까지도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나의 대학생활에서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신입생 시절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자유를 만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학생활을 보냈으나,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서서히 사회 현실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나는 영어가 좋아서 영문학과에 왔지만, 영어영문학과에서 배우는 영어학은 주로 언어학의 이론적인 측면이 강하고, 영문학은 당시의 생각으로는 복잡하고 급변하는 세상에서 다른 나라의 먼 옛날 문학작품을 공부한다는 것이 너무 한가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사회에서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요즘에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아 가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전공공부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분야의 학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사회분위기도 민주화 과정에서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이 노출되었고, 학내에서도 연일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인식하게 되고, 인간이 모여 있는 사회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선 내가 전에 영문학 외에 생각했던 법학을 접해 보기로 했다. 나는 헌법, 민법총칙 등 법학 관련 책을 사서 혼자 공부해 보았는데, 내가 전에 법학에 대하여 가졌던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상당히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며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좀더 공부하기 위하여 법학 관련 과목을 일반선택으로 수강하기도 하고 청강하기도 하면서 공부하였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 경제학을 공부하였으며, 국가 권력과 행정조직에 대하여도 알고 싶어 정치학과 행정학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연세와의 인연은 계속되어 나는 우연히 교직원이 되었다. 경영대학원에서 근무할 때 Global MBA과정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모든 강의가 영어로 이루어지고 학생들 중에는 외국인도 있어 영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영문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영어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 어학당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어학당에서의 수업은 이전의 대학 신입생 시절 외국인 선생님 수업을 회상하게 하였으며, 한 클래스의 학생 수도 열 명 남짓하여 분위기도 좋았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사회초년생들이었으며 나는 반대표를 맡게 되었고, 여기에서 또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어학당에서의 첫 수업시간에 옆에 앉은 여학생에게서 그동안 내가 찾던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 라는 운명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이다. 첫 눈에 반한 나는 온통 마음이 그 여학생(지금의 아내)에게로 가 있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또다시 차질을 빚고 말았다. 아내는 당시 세브란스병원 간호사였는데, 영어공부를 더 하기 위하여 어학당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나와 같은 날 졸업하여 졸업앨범에 같이 사진이 수록된 우리학교 간호학과 93학번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16년 전 나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선택함으로써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연인 배우자와 직업을 얻게 되었다. 비록 학교 다닐 때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해 부끄럽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얻었기에 후회는 없다. 재학 당시에는 인문학이 현실에서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서히 그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고, 크게 보면 사람과 인생에 대한 공부이므로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던지에 관계없이 든든한 거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재학시절에 못 다한 인문학 공부를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천천히 해 보기로 다짐하면서 올해로 6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갖는 우리 영어영문학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