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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47: 피부색의 진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9-04-15


네안데르탈로부터 얻은 유전자들 중에는 피부와 머리카락 색과 관련된 것들이 꽤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의 바이오뱅크 유전체 정보와 비교 분석해 보니 네인데르탈은 어두운 피부색과 밝은 피부색 유전자 구별없이 사피엔스에게 남겼습니다. 빨간 머리카락색은 네안데르탈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고, 직모 형질은 네안데르탈에서 온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의 피부색은 검푸른 갈색부터 거의 흰색까지 연속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며 그와 관련된 유전자,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 또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많은 부분 알려져 있습니다. 피부색 유전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수백여개 이상의 유전자가 관여하는 우울증, 조현증, 자폐증 등의 질환에 비하면 간단한 편입니다.


피부색은 피하조직의 멜라닌세포(melanocyte)가 색소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느냐로 결정됩니다. 색소 멜라닌은 멜라노솜(melanosome)이라는 세포소기관에서 만들어지며, 멜라닌세포에서 빠져나와 주변 피부세포 특히 케라틴세포(keratinocyte)로 이동합니다.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멜라닌세포는 수지상 돌기를 길게 늘려 세포 중앙에 잠잠히 있던 멜라노솜을 주변으로 퍼뜨려 자외선 흡수면을 늘립니다. 동시에 새로운 멜라노솜이 만들어지고 인접 케라틴세포에 멜라노솜을 제공하여 피부를 검게 합니다(tanning). 멜라노솜에 쌓이는 색소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멜라닌(eumelanin)으로 짙은 갈색을 나타내며 다른 하나는 페오멜라닌(pheomelanin)으로 밝은 노란색을 나타냅니다. 이 두 색소가 얼마만큼 어떤 비율로 만들어지는지가 피부색을 결정하며, 여기에는 두 멜라닌 색소 합성에 이르게 하는 세포막수용체의 활성화와 신호전달, 멜라노솜에서 일어나는 색소의 합성 반응과 양 조절, 그리고 멜라노솜의 성숙, 이동, 분산 등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상호작용하여 다양한 피부색을 만들어냅니다. 이중 10개 정도의 핵심 유전자에는 여러 변이형이 존재하며, 한 개인 더 크게 한 민족이 어떤 변이형을 어떤 조합으로 가지게 됐느냐는 자연선택의 결과물입니다. 멜라닌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경우 눈동자와 피부에 다양한 종류의 백색증(oculocutaneous albinism, OCA)이 나타납니다.

자외선은 파장에 따라 세 종류로 나눕니다.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높은 uvC는 오존층에서 흡수되어 대기권을 통과하지 못해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중간 파장의 ubB는 표피까지만 투과하여 화상을 입히며 세포에 직접적인 유전자 손상을 주어 피부암을 유발합니다. 그렇지만 표피층에 분포한 콜레스테롤 유도체에 에너지를 가하여 유효 바이타민 D를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자외선의 90%에 해당하는 낮은 에너지 uvA는 피부 깊숙이 진피까지 투과하여 피부를 노화시키고 주름지게 합니다. 간접적으로 이온화 반응을 일으켜 산화적 유전자 손상을 주기도 하며, 또 핵산 합성에 관여하는 바이타민 B 계열의 엽산(folic acid)을 파괴합니다. 엽산이 부족하면 DNA 복제와 세포분열에 문제가 생기며, 세포분열은 배아발생 초기 신경관(neural tube)을 만들 때 활발히 일어납니다. 따라서 엽산부족은 태아의 신경관 발달에 문제를 유발하여, 척추계통에 결함을 가진 아기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에도 정자생산에 문제가 생깁니다. 자외선은 해로운 측면과 이로운 측면 둘 다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해로운 측면이 더 강하기에 생명은 자외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생존의 존폐가 갈립니다. 자외선의 해로운 효과를 막자면 바이타민 D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뼈 생성과 면역력에 문제가 생기고, 자외선을 허용하자면 피부암 유발 및 자식생산에 문제가 생깁니다.


침팬지는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털이 있었기에 밝은 피부색을 가집니다. 200만년 전 우리의 조상이 ‘오래 달리기’를 하려고 땀샘을 만들면서 털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외선의 해로운 효과에 직접 노출되는 밝은 피부색을 어둡게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엽산의 파괴를 막아 건강한 자식생산에 직접적인 이득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죠. 피부암 방지효과가 어두운 피부색 진화에 일정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피부암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지 않고 또 자식을 낳고 난 후에 죽게 되면, 한 개인의 생식성공 적합도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자연선택 대상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학 연구에 의하면, 아프리카나 중앙 아메리카 등지에서 백색증의 발생 빈도는 1/5000 정도로 유럽이나 미국의 1/20000 보다 훨씬 높고, 이들의 피부암 발생률도 한참 높아 이른 나이에 사망합니다. 초기 호미닌이 접했던 환경을 고려하면 어두운 피부색 진화에 피부암 발생 억제가 무시할 수 없는 선택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봅니다.


호미닌은 옷을 걸치면서 해로운 자외선 영향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나면서 피부색 진화는 다른 선택압력에 놓이게 됩니다. 이렉투스, 네안데르탈, 사피엔스 모두 고위도 지역으로 진출할 때 바이타민 D 합성을 위한 자외선 조사량 특히 uvB 부족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위해 피부색을 엷게 해야 했습니다. 인류 진화역사에서 피부색 탈색을 위한 변이는 여러 번에 걸쳐 여러 유전자에 독립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유전자에 다양한 대립인자가 있는 것이죠. 멜라닌 합성을 위한 신호전달 수용체 MC1R이나 멜라닌 합성을 조절하는 SLC24A5 유전자 등 다수의 유전자에 밝은색이 나타나도록 변이가 생겼고, 이들 변이가 각 지역의 독특한 자외선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자연선택되어 인종별 다른 피부색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7년 현존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부색 유전자 기원을 추적한 논문이 사이언스에 발표되면서 밝은 피부색 진화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첫째, 유럽인들에게 흔한 밝은색 대립인자 SLC24A5는 동부 아프리카 사람들에서도 꽤 높은 빈도로 발견됩니다. 분자시계 계통분석에 의하면 이 유전자 변이는 3만 년 전 중동 지역 사피엔스에서 발생했고, 5000년 전 즈음 이들이 동아프리카로 이주하여 퍼뜨린 것으로 추정합니다. 동아프리카 주민들이 이 유전자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이유는, SLC24A5 대립인자 하나가 피부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유전자와 상호작용해야 하며 또 높은 자외선 환경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럽인들의 밝은 피부색과 특히 눈색깔에 관련된 HERC2와 OCA2 유전자도 그의 기원은 아프리카입니다. 이 변이는 90만년 전에 등장했고 아프리카를 벗어나 5만년 전 즈음 유라시아로 진출할 때 자연선택된 것입니다. OCA2의 돌연변이는 아프리카인에게 나타나는 백색종의 원인 중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셋째, 사하라 사막 이남 일부 민족은 피부색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어두운 색을 띠는데, 그 이유는 피부색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MFSD12 유전자의 변이 때문임이 드러났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돌연변이가 50만년 전에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사피엔스 이전 호모종은 덜 어두운 갈색 피부톤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검푸른 피부톤을 가지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적도지방 뜨거운 햇빛 조사량에 적응한 변이입니다. MFSD12의 변이는 멜라네시아인, 호주 원주민 그리고 일부 인도인들에게서도 발견되는데, 6만년 전 아프리카를 대규모로 떠난 사피엔스 중 남부 경로를 따라 간 사피엔스는 MFSD12 변이를 유지했지만, 유라시아로 진출한 사피엔스는 그 변이를 상실했을 것으로 봅니다(1).


2015년 네이처에 발표된 8500-2500년 전에 유라시아에 살았던 고대인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보면, 밝은 피부색 유전자 SLC24A5는 당시 고대인 특히 농경인에게 이미 퍼져있었습니다. 12000년 전부터 농경생활을 시작한 아나톨리아, 즉 터키 지역 농경인이 6000년 전에 유럽으로 이주하여 퍼트린 것으로 보입니다. 농경인과 다르게 스페인, 룩셈부르크, 헝가리 지역의 수렵채집인들은 검은 피부색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유럽인이 밝은 피부색을 가지게 된 것은 육식이 부족한 농경생활에 따른 바이타민 D 결핍 때문입니다. 한편, 현존하는 유럽인에 널리 퍼져있는 또 다른 옅은 피부색 유전자 SLC45A2는 고대 농경인에게는 없다가 나중에 집중 양성선택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유전자는 제4형 백색증(OCA-4)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흰 피부색 유전자 HERC2/OCA2는 농경인 뿐 아니라 고위도 북유럽 수렵채집인도 가지고 있음을 보아, 환경 조건에 따라 자연선택되는 패턴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2).


결론적으로 인종별로 구분되는 피부색 유전자는 없습니다. 주로 유럽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밝은 피부색을 나타나게 하는 유전적 변이 대부분은 사피엔스가 유럽에 정착하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를 떠나기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피부색 발현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171개 있으며, 이중 피부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는 15개에 불과합니다. 이들 피부색 유전자는 신체 형태나 두뇌 활성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이들은 멜라닌 색소의 양과 비율을 조절하여 주어진 환경에 맞게 자외선 흡수량을 조절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동물은 색깔에 매우 민감합니다. 색깔로 짝을 찾고,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합니다. 색깔로 친구와 적을 구별합니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색깔로 지능이나 능력까지 구별하려는 것은 동물성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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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icholas G. Crawford, et al. Loci associated with skin pigmentation identified in African populations. Science 17 Nov 2017: Vol. 358, Issue 6365, eaan8433. DOI: 10.1126/science.aan8433

2. Iain Mathieson, et al. Genome-wide patterns of selection in 230 ancient Eurasians. Nature volume 528, pages 499–503 (24 Decem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