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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석사 2023 홍자경 ‘다종적 접촉’이 촉발하는 공거(共居)의 윤리: 도시 탐조(探鳥)’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작성일
2023.03.23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본 연구는 자신의 생활권 안에서 새를 보는 도시 거주민들의 탐조가 비인간 타자에 대한 어떠한 윤리적 응답(response-ability)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지 분석하는 문화기술지다. 응답이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2021)가 제시한 포스트휴먼 윤리 개념으로, 이 세계가 온전한 설명도 예측도 불가능한 종간의 뒤얽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안에서 불완전하게나마 인간-비인간 타자들과 조우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개방성을 훈련하는 것, 이를 통해 관계 속에 놓인 모두가 서로에게 길들여진 주체로 변화되는 것을 포괄하는 윤리적 실천을 말한다. 최근 5년 사이 한국에서는 ‘야생조류’라는 범주를 넘나들며 다양한 종과 관계 맺는 ‘탐조’ 문화가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많은 도시민들이 자신의 생활권에서 새라는 타자와 조우하는 경험에 참여하고 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다종연구(multispecies studies)에서 잘 포착되지 않았던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회적·정치적 가치체계가 명확히 반영되지 않은 도심 동물들과의 ‘마주침’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자는 새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 종들과 관계 맺고 그들에게 응답하는 도시 탐조 활동이 도시를 어떻게 구체적인 다종적 ‘공거’의 장소로 재구성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한계를 고찰한다.


주요한 연구 참여자들은 도심지 내 공원에서 탐조를 하는 시민들과 조류 유리창 충돌 모니터링에 참여하는 시민들로, 연구는 두 그룹이 서로에게 새라는 타자의 안녕과 윤리적 관계에 대한 모색을 멈추지 않도록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들의 실천을 포괄적으로 '도시 탐조'라고 명명한다. 2021년 12월부터 2022년 6월 중순까지 약 7개월 간 참여관찰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연구자는 서울 내 공원과 대학 캠퍼스, 그리고 광주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 방문하고 탐조인들과 대화하며 탐조가 이루어지는 장소들의 지리적 특징, 새와 탐조인들의 지속적인 조우가 촉발하는 생태적 지식, 탐조 현장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응답과 긴장을 분석하였다.


주로 20-30대 청년, 그리고 50대 중년 여성으로 이루어진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 안에서 다양한 목적과 계기로 새와 조우한다. 그들은 일상에서 우연히 새와 마주치면서 탐조 문화에 입문하기도 하고, 각종 온라인 문화 컨텐츠를 통해 탐조 문화를 접한 후 탐조를 시작하기도 하는데, 이때 탐조는 단순히 ‘보는 것(watching)’의 범주를 넘어 새를 ‘존재’로서 인지하고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포괄하는 실천으로서 의미화된다. 탐조인들은 도시 안에서의 새의 삶과 죽음을 세밀하게 포착해가면서 그들의 삶/죽음을 결정짓는 도시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데, 이는 새들과의 정동적 마주침에 대한 응답의 윤리를 모색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 참여자들이 채택하는 응답의 방식 중 하나가 바로 ‘기록’이었다. 모니터링에서 새의 수를 세고 기록하는 연구 참여자들의 행위는 새들의 삶/죽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그들이 죽어가는 특정한 도심 속 구조를 가시화하고 이를 ‘삶이 지속되는 장소’로 변모시키려는 ‘공거’의 실천이다. 유리창으로 인한 새들의 죽음을 기록하여 공론화하고자 하는 연구 참여자들은 국가와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 있는’ 종을 선별적으로 드러내고 이들을 ‘공공재’로서 호명하는 전략을 선택했으며 이는 공공 건축물의 유리구조물에 충돌저감 조치를 의무화하는 법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만 인간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공공재로서 새가 의미화될 때, 혹은/그리고 그 새가 특정한 종의 얼굴로만 드러날 때, 도시 자원의 재분배에 비인간 거주자들을 포괄적으로 참여시키는 정치적 논의의 가능성은 축소된다.


또한 연구 참여자들의 응답은 다양한 종이 얽히는 탐조의 현장 속에서 좌절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들은 '새의 생명을 위협하는' 길고양이나 '생태계를 교란하는' 집비둘기와 같은 비인간 존재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비난하거나, 혹은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이처럼 연구 참여자들에게서 드러나는 종에 대한 가치의 위계화는 특정 종을 ‘소중한 타자(significant other)’(해러웨이, 2019)로 설정하고 배타적으로 관계 맺으려 하는 인간 행위자들의 실천이 ‘불확실한 종간의 얽힘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윤리’로 확장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연구자는 연구 참여자들의 불완전한 실천 속에서 종에 대한 윤리적 응답의 범주를 확장하고 다양한 종이 번성하는 곳으로 도시공간을 물질적, 담론적으로 재구성하는 커머닝(commoning)(우고 & 마테이, 2019)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새들이 죽는 유리 구조물을 찾아 점자 스티커를 붙이고 이를 공론화하는 연구 참여자들의 활동은 도시의 ‘공중’을 분배가 필요한 공간으로 재의미화하고 새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분배를 실질적으로 이루어내는 작업이 되었다. 또한 도심공원과 하천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연구 참여자들은 새가 의존하는 구체적인 지형 및 식물 종을 파악하여, 비인간 타자의 생존과 종간 상호관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지자체의 공원 설계 및 관리를 비판하고 그들의 지식에 기반한 공원 생태계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구는 한강에서 북상을 준비하는 철새들의 숫자를 기록으로 남기는 연구 참여자들의 사례에 주목하여, 이러한 실천이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중요한 생존공간이자 일상공간이 되고 있는 도시를 시간적, 공간적 차원에서 분배하기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음을 제안하였다.


궁극적으로 본 연구는 도시라는 특수하고 구체적인 장 속에서 촉발되고 생성되는 인간-비인간 관계와 윤리를 분석함으로써 다종연구의 논의에 기여한다. 도시 탐조는 새라는 특정한 범주의 비인간 존재와 관계 맺는 실천으로 시작하지만, 연구 참여자들은 결국 새들이 도시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종들과 관계 맺고 있는지 목도하게 됨으로써 윤리적 응답의 확장을 요청 받는다. 연구는 이처럼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종적 ‘트러블’(해러웨이, 2021)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부분적인 응답과 실패들이 적극적으로 조명될 때 구체적인 ‘인간-너머의-커머닝’의 실천 또한 모색될 수 있음을 최종적으로 제언한다.



핵심되는 말: 다종민족지, 포스트휴머니즘, 비판적 에코페미니즘, 도시 연구, 도시 생태, 응답-능력, 커먼즈, 커머닝, 공거, 도시 탐조


지도교수: 김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