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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석사 2020 : 정택진 : 쪽방촌의 사회적 삶: 서울시 동자동 쪽방촌을 중심으로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초록

  본 연구는 서울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사회적 삶에 관한 에스노그라피로, ‘동자동 쪽방촌’이라는 환경(milieu) 속에서 주민들의 사회적 삶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며 그 효과는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서 ‘사회적 삶’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3장),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관계(4장), ‘사회’와 ‘우리’에 대한 표상(5장), 정치적 연대와 집합행동(6장)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며, ‘환경’이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3장), 무연고 사망자 장례(4장), 각종 단체의 무료 물품 지원(5장), 쪽방촌의 노후한 건물과 저렴쪽방 사업(6장)과 같이 주민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공식적·비공식적 개입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연구현장은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일대에 위치한 일명 ‘동자동 쪽방촌’으로, 연구자는 동자동 내에 위치한 주민자조조직을 중심으로 2019년 5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총 9개월간의 현장연구를 진행했다.

본론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2장에서는 동자동의 변화에 관해 고찰했다. 한국 전쟁 이후 피난민이 밀집하는 지역이었던 동자동은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도시 하층 노동 인구가 밀집하는 공간으로 변모했으며,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의 불안정 노동 인구가 흡수되면서 그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다. 이후 약 20년의 세월 동안 쪽방촌 주민들은 노령과 건강문제로 인해 ‘노동할 수 없는 인구’가 되었고, 이와 함께 기초생활수급, 무연고 장례, 무료 물품 지원 등의 개입이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3장에서는 주민 정영희의 이야기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이라는 매개 속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개인 삶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정영희는 가족이나 시설에 대한 의존을 거부한 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공하지 못하는 돌봄의 공백을 남편 홍인택과의 관계를 통해 채우고자 했다. 이러한 욕구는 빈민, 정신지체 장애인, 여성으로서 정영희가 겪어온 상실과 폭력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공하는 경제적 자원은 정영희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자 홍인택과의 관계를 지속하게 해주는 매개였지만, 이러한 경제적 매개는 매우 불안정해서 정영희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명의도용과 약물 거래 등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행위에 손을 뻗칠 수밖에 없었다.

4장에서는 주민 강영섭과 故최경철의 이야기를 통해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산 자와 망자 사이의 연결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무연고 장례 속에서 망자의 물질화된 몸(유골)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망자에 대한 애도와 기억의 시간을 빼앗고 망자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만들었으며 망자에게 ‘나쁜 죽음’이라는 낙인을 부여했다. 강영섭은 최경철의 장례를 무연고 장례가 아닌 일반 장례로 치르고 그의 유골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뿌림으로써 죽음 이후에도 그와의 연결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무연고자’라는 제도적 낙인을 회피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최경철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오롯이 감당하는 과정에서, 강영섭 자신의 건강과 경제적 상황은 서서히 파괴되었다.

5장에서는 동자동 쪽방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단체의 무료 물품 지원이 어떠한 지점에서 대립하는지 살피고, 여기에서 형성되는 ‘사회’와 ‘인정’의 모습은 무엇인지 살피고자 했다. 무료 물품 지원이 내포하는 자활과 자립의 서사는 주민들의 ‘의존’을 낙인화함으로써 지원 물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을 윤리적 ‘악’으로 격하했다. 또한, 물품 지원에 수반되는 줄서기는 주민들을 통제의 대상이자 순응적 주체로 만들어내는 정치적 효과를 내포했으며, 특정한 기준에 따라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경험은 주민들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때때로 주민들은 행정기관과 기업들의 실적을 증명하기 위한 ‘그림’과 ‘작품’이 되어야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은 돌려줌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공짜식사에서 마치 ‘거지’가 된 것과 같은 인격과 자존감의 손상을 느꼈다. 주민들은 줄 세우기와 공짜 식사를 거부하고 노동과 호혜를 통해 상호인정의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서로에게 인격과 체면을 부여하고자 했다.

6장에서는 동자동 9-20번지의 노후한 건물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 속에서 삶의 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몫이 부정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개발국가 시기 동자동의 빈민 거주 지역은 도시 하층 노동력의 저장소로서 암묵적으로 용인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에도 이 지역은 재개발 이익과 비용을 저울질하는 시장 논리 속에서 아무런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었다. 그 결과, 60년의 세월 동안 서서히 낡고 마모된 동자동의 노후한 환경은 주민들의 일상적 삶이 되었다. 2019년, 쪽방촌의 노후함이 서울시 저렴쪽방 사업을 불가능하게 하는 주된 위협으로 등장하면서 주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정치적 연대와 집합행동으로 나타나지 못했고, 주거권이라는 저항의 언어는 무력화되었다. 또한, 저렴쪽방을 둘러싼 서울시와 건물주의 설전 속에서 동자동 쪽방촌은 ‘삶의 공간’이 아닌 ‘노후한 건물’, 혹은 이익 창출을 위한 ‘부동산’으로 이야기되었고, 이 과정에서 노후함과 열악함을 견디며 쪽방촌을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 온 주민들의 역사는 고려되지 않았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혈연가족, 자립과 자활, 의존의 낙인화 등 빈곤에 대한 개입이 전제하는 규범과 삶의 형식 속에서 주민들은 ‘버려짐(abandonment)’을 경험했다. 때때로 이들은 인격 손상과 박탈감을 피하고 인정과 돌봄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이러한 개입 자체를 거부하거나,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또 다른 사회적 실천을 통해 삶의 온전함을 획득하고자 했다. 이는 빈곤의 문제가 물질적 측면을 넘어 빈곤에 대한 개입이 고려하지 못하는 사회적 삶의 측면, 즉 상호돌봄과 관계, 인정과 연대를 포함하는 포괄적 문제라는 점을 의미한다.

둘째, 본 논문이 기술하고자 한 주민들의 사회적 연결은 역설적으로 그 내부에 부분적인 자기파괴를 동반하는 ‘취약한’ 형태로 나타났다. 주민들이 보여주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회성, 산자와 망자 사이의 사회성, ‘사회’ 만들기의 과정, 정치적 연대와 집합행동은, 돌봄과 파괴, 책임과 자기소모, 환대와 타자화, 투쟁과 무력함 사이에서 주민들의 경제적·육체적·정신적 삶을 갉아먹고 ‘우리’로서의 느낌과 실천이 온전한 모습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취약한 연결 속에서 주민들의 일상적 삶은 서서히 파괴되었으며, 주민들은 세계 안에서의 위치와 존재 방식, 인격과 자존감, 사회적 관계와 연결, 필요와 욕망이 총체적·부분적으로 부정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셋째, 취약한 연결 속에서 주민들이 경험하는 ‘사람됨’의 부정, 상호돌봄과 사회적 관계의 박탈은 결코 온전한 형태의 ‘삶’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버려짐의 공간으로서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취약한 연결 속에서 만들어지는 파괴적 결과와 자기소모, 인격 손상과 무력함을 견뎌내는 일의 연속이자, 삶의 온전함을 획득하기 위한 시도와 실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수많은 개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쪽방촌 주민들이 경험하는 삶은 취약한 연결 속에 배태된 채 나타나는 ‘버려짐’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결론은, 제도화된 개입이 빈민의 사회적 삶 속에서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내며 빈민 당사자는 이를 어떠한 형태로 경험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통해 빈민/주민운동의 영역이 더욱 포괄적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생겨난 ‘사회적 버려짐의 공간(social zones of abandonment)’과 그 바깥 사이의 부분적인 연결은 타자와 사회적 버려짐에 대한 윤리적 응답의 가능성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